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제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가운데, 이번 정부 은행권을 전방위로 옥좼던 가계대출 규제들을 완화해 숨통을 트이게 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특히 그가 내세운 은행 관련 주요 공약 중에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의 상한을 올리는 방안이 포함됐는데, 이것을 실효성 있게 추진하기 위해서 가계부채 총량 규제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손보는 일이 동반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10일 윤 당선인의 공약집에 드러난 금융 정책을 살펴보면, 각종 대출 규제를 완화할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들이 읽힌다. 윤 당선인은 청년·신혼부부 등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에 한해 LTV 상한을 80%로 올리겠다고 공약했다. 생애 최초가 아니더라도 지역과 관계 없이 LTV를 70%로 통일하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다만 다주택자에게는 여전히 빡빡한 기준이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LTV는 현재 투기 지역 여부, 매매가격, 주택 보유 수 등에 따라 차등 적용되고 있는데, 서울과 수도권 대부분 지역의 경우 LTV 최대 40~50%까지만 적용받을 수 있다. 윤 당선인이 타깃으로 한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의 경우 현재는 부부 합산 연소득이 1억원 이하, 집값이 9억원(조정 대상 지역 8억원) 이하면 10%포인트(p) 완화된다.
은행권에선 해당 공약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DSR 규제와 가계대출 총량 규제를 손보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 ‘연소득 대비 전체 금융대출의 원리금 상환액 비율’을 나타내는 DSR은 현재 총 대출액이 2억원을 넘으면 일정 규제가 적용된다. 더욱이 현 금융당국의 계획에 따르면, 오는 7월부터는 이 규제를 더욱 강화해 총 대출액 1억원부터로 적용 대상을 확대하기로 했다. LTV 규제가 완화돼도, DSR 규제를 풀지 않으면 기대출이 있는 차주 입장에선 LTV 완화 효과를 체감하기 어렵게 된다.
은행 등 금융사에 적용되는 가계대출 총량 규제도 LTV 완화 정책의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가계부채 증가율 목표를 4~5%로 잡았다. 통상 연도별로 점검해 오던 금융사별 가계대출 증가율도 올해부터는 분기별로 타이트하게 관리하기로 했다. 지난해의 경우, 이를 초과한 은행은 대출 중단까지 감행하기도 했다.
윤 후보의 당선이 은행업종에 미칠 영향에 대해 강승건 KB증권 연구원도 “LTV 규제 완화의 경우 은행의 가계대출 성장에는 긍정적”이라면서도 “다만 감독당국에서 추진하고 있는 가계대출 총량규제와 DSR 적용 확대의 완화 여부에 따라 실질적인 영향이 결정될 것으로 판단된다”고 언급했다.
가계 빚 관리는 여전한 숙제인 만큼, 건전성을 크게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총량 규제와 DSR 규제가 함께 완화될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선 당장 7월 예정된 DSR 강화 조치를 가장 먼저 손볼 수 있다는 시각이 제기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7월 DSR 규제 강화를) 아예 무효화하는 식의 과격한 변화는 아니더라도, 그대로 시행하기는 힘들지 않겠느냔 이야기가 나온다”며 “자세한 사항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사의 대출 영업에 걸림돌이 됐던 가계대출 총량 규제 역시 이전보다 느슨한 방향으로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 윤 당선인 본인은 물론, 윤석열 캠프의 정책본부장이었던 원희룡 전 제주지사, 금융책사를 맡아 온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 등은 모두 앞서 현 정부의 가계대출 총량 규제에 대해 부정적인 목소리를 낸 바 있다.
‘버블 파이터’를 자처한 고승범 금융위원장의 교체 가능성이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도 이런 정책 방향에 힘을 싣는다. 그는 정은보 금융감독원장과 함께 지난해 8월 취임한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금융수장으로, DSR·가계대출 총량 규제 등 주요 금융 정책에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었던 인물이다. 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은 임기가 3년으로 정해져 있으나, 통상 정권이 바뀌거나 새 정부가 출범하면 자진 사퇴하는 형식으로 재신임이 이뤄졌다.
이 밖에도 윤 당선인은 ▲'청년저축계좌’ 도입 ▲전세대출 원리금 상환액 및 월세 소득·세액 공제 확대 ▲수출기업 및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지원 강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피해자에 대한 금융지원 실시 ▲예대금리차 관리 등을 금융 관련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 중 청년저축계좌는 최근 논란이 일었던 ‘청년희망적금’과 유사한 저축 상품으로, 근로·사업소득이 있는 19~34세 청년이 매달 70만원 한도 안에서 일정액을 저축하면 정부가 월 10만~40만원씩을 보태 10년 만기로 1억원을 만들어 주는 자산 형성 지원 정책이다.
생애 최초 주택 구매자에게 3억원까지, 신혼부부에게 4억원까지 각각 3년간 저리로 주택담보대출을 제공하거나, 신혼부부가 아이를 낳으면 대출 기간을 5년까지 연장해주는 금융 정책도 약속했다. 취업준비생에게는 최대 1000만원 한도 내에서 취업준비금과 생활비를 저리로 빌려주고, 취업 후 장기 분할상환하도록 한다는 공약도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