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카드·생명·화재·증권 등 계열사 금융 서비스를 한 데 모은 초대형 애플리케이션(앱)을 내놓는다. 금융업계 일각에서는 삼성생명이 암 입원 보험금 미지급 건으로 기관경고 중징계를 당하면서 1년간 마이데이터 사업을 할 수 없게 된 데 따른 일종의 고육지책으로 본다. 다른 금융회사들은 모두 계열사나 심지어 타사 거래 자료까지 한데 모아 활용하는 마이데이터 사업(본인신용정보관리업)에서 공격적인 행보를 펼치고 있다.
삼성카드는 이르면 3월 중 자사를 비롯해 생명·화재·증권 같은 계열사 서비스를 한 곳에 모은 앱의 시험판을 내놓을 예정이다. 이 앱에는 현재 ‘모니모(Monimo)’라는 가칭이 붙어있다. 삼성그룹 금융 계열사들은 디자인과 로고, 정확한 일정을 정하는 막바지 논의 작업을 한창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데이터는 각 금융기관에 흩어진 개인 신용(금융)정보를 소비자가 한 곳에 모아 보여주고, 재무 현황·소비 습관을 분석해 맞춤 컨설팅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다. 지난해 12월 한달 간 시범 서비스를 거쳐, 올해 1월 14일부터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서비스를 의도대로 구축하면 금융사는 여러 금융 데이터에 기반해 맞춤형 금융상품을 소비자에게 추천할 수 있고, 소비자 역시 민감한 본인 금융 데이터를 직접 관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정교한 플랫폼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드는 막대한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 은행을 거느리지 않은 비(非)은행권 금융사들은 좀처럼 이 시장에 손을 뻗지 못했다. 다음달 모니모가 예정대로 출시된다면 비은행권 금융사가 마이데이터 앱과 유사한 통합 앱을 내놓는 첫 사례가 될 전망이다.
현재 삼성 금융 계열사 이용자를 전부 합치면 중복 가입자를 포함해 약 3200만명 정도다. 삼성화재와 삼성생명 가입자가 각각 1000만명 수준이고, 삼성생명이 820만명, 삼성증권은 400만명을 확보했다. 금융권에서는 이 가운데 중복 가입자를 제외하면 약 2000만명 정도가 삼성 금융 계열사 이용자인 것으로 보고 있다.
2000만명을 모니모 이용자로 확보할 경우, 삼성 금융 계열사들은 기존 금융지주 계열 통합 앱이나 빅테크 같은 선두 기업과 경쟁할 만한 기반을 갖추게 된다. 카카오페이 가입자는 약 2000만명, 네이버페이와 토스 가입자는 각각 1600만, 1200만명 정도다.
삼성카드·생명·화재·증권은 지난해 4월 이후 1년 여간 이들 이용자를 겨냥한 마이데이터 사업에 대비해 400억원이 넘는 자금을 쏟아가며 공동 플랫폼 구축에 열을 올렸다. 공시에 따르면 삼성화재가 174억원, 삼성생명과 삼성증권이 각각 143억원, 74억원을 관련 사업에 투입했고, 삼성카드는 통합 플랫폼 시스템을 구축·운영하기로 관계사들과 공동 협약을 맺었다.
그러나 지난 4일 삼성생명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암 입원 보험금 미지급 등과 관련해 중징계에 해당하는 최종 기관경고 통보를 받으면서 계획이 틀어졌다. 삼성생명이 금융당국 제재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마이데이터를 포함해 결과서 수령일로부터 1년간 금융당국 인·허가가 필요한 신사업에 진출할 수 없다. 삼성카드 같은 자회사 역시 같은 제한을 받는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지난 4일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종합검사 결과서 일부를 받았고, 모두 수령하면 이를 면밀히 검토해 제재 결과를 수용할지 이의를 제기할지 등을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부 금융권 전문가들은 이런 점을 들어 마이데이터 서비스 출시를 준비하던 삼성 계열 금융사들이 금융당국 제재에 발목을 잡히자, 부득이하게 비슷한 서비스부터 내놓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 아니냐는 평가를 내놨다. 모든 금융사가 경쟁적으로 마이데이터에 뛰어드는 가운데, 삼성생명 관련 징계로 타 금융사 정보를 앱에 연동할 방법이 없으니 아쉬운 대로 자사 통합 앱이라는 고육지책을 택했다는 분석이다.
한국금융소비자연맹 관계자는 “주요 금융사 가운데 마이데이터 사업 진출이 막힌 기업은 삼성카드가 유일하다”며 “이미 경쟁사들은 마이데이터 사업을 시작한 상황이기 때문에 삼성생명이 금융당국 제재를 받아 들이든,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하든 경쟁사보다 관련 사업 진입이 늦어지는 것은 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삼성카드는 통합 앱에 오픈뱅킹과 보험료 결제와 같은 통합 금융 서비스는 물론 내 차 시세 조회·신차 견적·부동산 시세 조회 같은 자동차·보험 서비스를 담아 차별화에 나설 예정이다. 계열사 별로 지급하는 리워드 포인트도 통합 운용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삼성카드 포인트나 삼성화재 포인트를 통합 앱에서 통용되는 포인트로 바꿔 삼성증권의 소액 주식 투자에 쓸 수 있게 하는 식이다.
삼성카드 관계자는 “이번 통합 앱은 마이데이터와 상관없이 디지털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지난해 초부터 추진했던 사업”이라며 “마이데이터 사업 진출 방안 역시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