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새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K씨는 잔금 30%를 메울 방안을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일시적 2주택자인 K씨는 "기존 보유 주택을 팔아 잔금을 치를 계획이었는데 매도가 안 되고 있는 데다, 대출도 막혀 진퇴양난인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아파트 매매 거래를 한 매도인 A씨와 매수인 B씨 모두 잔금을 못 치를 위기에 놓였다. 매도인 A씨는 매수인 B씨로부터 계약금과 중도금을 받은 상태로 오는 3월 잔금을 받을 계획이었다. 그런데 최근 B씨가 내놓은 집이 팔리지 않고 있어 잔금을 치를 돈이 없다고 통보해왔다. A씨는 "B씨가 잔금을 못 치르면 나도 새로 이사갈 집의 잔금을 못 막는다"면서 "서로가 계약이 파기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연초 부동산 시장의 거래절벽 속 주택자금 문제로 시름하는 수요자들이 늘고 있다. 애초 예상과 달리 자금 확보에 빨간불이 켜졌기 때문이다. 특히 한층 강화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피한 분양 단지와 차주들도 1~2년 전과 달라진 대출 여건 탓에 예상치 못한 충격을 겪고 있다.
3일 은행권에서는 여러모로 주택 구입자들이 신규로 돈을 빌려 집을 사거나, 소위 '상급지 갈아타기'가 어려워지는 상황이 됐다는 진단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올해부터 공급하는 신규 분양 아파트 단지들은 대출자들의 원리금 상환액을 연소득의 대비 제한하는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규제를 적용하는 데다, 은행금리가 시장금리와 발맞춰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어서다.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평균 금리는 3.63%로 2014년 5월 이후 가장 높았다. 전년 말과 비교하면 1.04%p나 상승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1월말 현재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전월보다 1조1081억원 늘어 506조5127억원으로 집계됐다.
올해부터 강화한 DSR 규제를 적용하기 때문에 사실상 이전 분양 단지와 대출 차주들은 규제를 피한 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년 전과 현재 금리와 대출 조건과 환경이 달라지면서 자금 계획에 차질이 생겨 잔금을 치르지 못하거나 입주를 포기하는 등 충격파가 나타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얘기다. 소유권 보존 등기를 치르면서 기존 집단대출이 차주 단위 대출로 전환되는데, 이때 대출 체력이 드러난다.
윤지해 부동산114 연구원은 "현재 입주자들의 경우 강화한 DSR규제 적용 대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개인별로 소득 수준과 자산 여건, 신용도가 다르다보니 차주가 원하는 금액만큼 대출이 안 나오는 상황이 생기면서 잔금을 치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면서 "결국 입주(실거주)시기를 계획보다 더 미루면서 세입자의 보증금으로 잔금을 보전하는 방안을 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주택산업연구원이 한국주택협회·대한주택건설협회 회원사인 주택건설업체 500여곳을 대상으로 지난달 전국 아파트 미입주 사유를 조사한 결과, '잔금대출 미확보' 응답이 40.7%로 가장 많았다. 자신이 분양받은 아파트에 입주하지 못한 사람 10명 가운데 4명은 잔금대출을 받지 못해 들어가지 못했다는 얘기다. 그 다음으로 '기존주택 매각 지연'(35.2%), '세입자 미확보'(20.4%), '분양권 매도 지연'(1.9%) 등의 순이었다.
2년 전만해도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있고, 주택 가격이 강세를 보이면서 청약 시장에서는 '일단 당첨부터 되고 고민하라'는 뜻의 신조어 '선당후곰'도 생겨났다. 하지만 금리가 오르고 대출 및 부동산 규제가 강화하면서 자칫 후폭풍을 치를 수 있다는 경고음도 커지고 있다.
최근 인천 송도에 분양한 '송도 자이 더 스타'도 이런 우려감이 작용한 예다. 이 단지는 총 공급 물량의 35%가 미계약됐는데, 전 주택형 분양가가 9억원을 넘어 중도금 대출이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완판 실패 요인으로 꼽힌다. 분양가 9억원이 넘는 아파트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보증하는 중도금 집단대출이 안된다.
업계에서는 올해부터는 잔금대출도 개인별 DSR 산정에 포함되면서 대출 한도가 더욱 줄어들기 때문에 잔금을 확보하지 못한 사람들이 증가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잇따른다. 더구나 작년 2월 이후 분양한 분양가 상한제 적용 단지들의 경우 최소 2년~최대 5년의 실거주 의무가 적용된다. 입주시점에 전세 세입자를 받아 잔금을 해결하는 방식이 불가능해진다는 얘기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주택담보대출의 부족분에 대해서 신용대출을 끌어오면 됐지만 이제는 대출 총량을 관리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면서 "금리가 더 오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주택자금 계획을 촘촘하게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경회 SK증권 애널리스트는 "올해 들어 시장금리 상승세가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은행들의 대출금리는 추가로 상승하고 예대금리차도 더 확대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3월 대통령선거와 6월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실수요자 대출 규제 완화 및 양도세 중과 유예 가능성 등의 변수가 있기 때문에 선거 이후 주택 거래 시장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