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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one left behind(누구도 소외되지 않아야 한다).' 2015년 제70차 세계연합(UN) 총회장. 한자리에 모인 전 세계 192개 회원국 대표들은 2016∼2030년까지 15년 동안 UN이 추진할 새로운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로 '포용적 금융(Financial Inclusion)'을 꼽았다. 올해는 딱 그 중간 지점에 서 있는 해다.
포용적 금융이라는 단어는 다소 낯설다. 그러나 그 원류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결국 제도권 금융에서는 돈을 빌릴 수 없는 빈민들을 위한 소액 금융을 일컫는다. 7년 전 UN은 다가올 15년간 중요 과제로 포용적 금융을 꼽았지만, 정작 그동안 글로벌 금융산업의 공익성은 퇴보했다.
세계에서 100만달러(약 12억원) 이상 자산을 보유한 백만장자는 매년 늘어 지난해 5610만명을 기록했다. 성인 인구 대비 백만장자 비율은 처음으로 1%를 넘어섰다. 동시에 1일 생활비 1.9달러(약 2300원) 이하로 살아가는 극빈층 역시 백만장자 수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불어났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한 2020년 한 해 동안 전 세계 극빈층은 약 1억1400만명이 증가한 7억2900만명으로 조사됐다. 조사 이래 극빈층이 가장 많이 증가한 해였다.
포용적 금융은 다가오는 대선에서도 주요 쟁점이다. 코로나 이후 다시 서민 중심 금융의 중요성이 불거지면서 주요 대선 후보들이 관련 정책을 속도감 있게 내놓고 있다. 조선비즈는 다른 국가들이 먼저 밟은 포용적 금융의 나아갈 길을 살펴보려 한다. 이를 통해 제도권 금융에서 소외된 금융 취약계층을 배려하는 미래금융의 모습도 들여다본다.
1968년 미국 켄터키주(州). 켄터키주는 면적은 우리나라만 하지만 인구는 고작 440만명이다. 유명한 것은 세계 3대 경마 대회로 꼽히는 '켄터키 더비'와 끝없이 펼쳐진 담배 농장뿐. 19세기 이래 켄터키는 '말과 담배의 주'였다.20세기 중반 이후, 목축업과 농업에 지친 젊은이들은 차차 이웃한 버지니아주와 뉴욕시, 보스턴처럼 성장해가던 대도시를 찾아 떠났다. 일손이 부족해진 켄터키주 경제는 해마다 어려워졌다.결국 버번 위스키를 숙성하는 배럴(통나무통) 수가 켄터키 인구 수보다 많아질 지경에 이르자, 1968년 '켄터키 하이랜드 투자회사(Kentucky Highlands Investment)'는 빈곤과의 전쟁(War on poverty)을 선포했다.이들은 켄터키주 안에서 저소득층이 많이 거주하는 빈곤 지역을 상대로 당시로선 파격적인 벤처캐피털 전략을 구사했다. 지역 빈곤문제를 해결하려는 다양한 사회적기업에 자금을 투자했다. 극장·커뮤니티 센터·직업훈련학교도 새로 지었다. 마을에는 수도와 하수도 처리시설을 설치했다. 돈이 떨어진 농가에는 초저금리로 대출을 지원했다.그 결과, 켄터키 남동부 일대에서만 새 일자리 약 2만5000개가 창출됐다. 빈곤과 실업률은 크게 떨어졌고, 811개가 넘는 기업이 생겨났다.
금융선진국이라 알려진 외국에서는 1990년대 중반에 완성된 형태의 포용적 금융 관련 사업이 자리를 잡았다. 아직 국내에서는 미소금융(저신용·저소득층 대상 소액 대출) 사업도 제대로 시행되기 전이다.
형태를 갖추기 전, 초기 포용적 금융은 빈부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도입됐다. 이에 주로 미국·영국·프랑스 같은 선진국에서 먼저 발전했다.
그중에서도 신자유주의로 심각한 빈곤 문제를 겪던 미국은 도시 재건과 금융 소외계층 지원을 위해 '커뮤니티 금융' 방식을 택했다. 여느 국가들보다 주와 도시별 자치 행정력이 높고, 절대적인 국토 면적도 넓어 제도권 금융으로만 빈부 격차 문제를 다루기에는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켄터키 하이랜드 투자회사 같은 초기 포용적 금융 조직들은 1960년대를 전후해 빠르게 늘었다. 이런 커뮤니티 금융 조직 대부분이 금융서비스를 포기한 최하 빈곤층이 사는 곳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졌다.
당시 켄터키뿐 아니라 오하이오, 아이다호, 테네시 같은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에서는 제도권 금융기관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돈을 빌리려면 오로지 전당포와 사채업자들을 찾아가는 방법뿐이었다. 사람들은 돈을 맡길 곳이 없어서 침대 밑에 숨기는 등 집안에 현금을 둘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해 강도들의 침입으로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사회 리더들은 알음알음 돈을 모아 신용협동조합 형태로 켄터키 하이랜드 투자회사 같은 벤처캐피털을 차렸다.
자생적으로 발달한 커뮤니티 금융이 도시 재생의 불씨를 살리자, 1990년대 중반 빌 클린턴 행정부는 결단을 내렸다.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지역사회의 사회·경제적 정의를 실현한다는 명분으로 '커뮤니티 개발금융기관(CDFI: Community Development Financial Institution)'을 지원하는 CDFI 펀드를 설립했다.
'100개의 도시에 100개의 은행(100 Banks for 100 Cities)'을 만들자는 구호도 걸었다. 마을 단위 조합과 주요 은행, 정부를 포함해 미국 내 1000여개 금융기관이 참여한 이 펀드는 정부 출연금만 1000억달러(약 119조원)에 달했다. 사실상 은행의 역할을 하나의 큰 공공 펀드가 대신하는 셈이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정부 재원이 들어갈 수 있다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적 금융에 투자하는 민간 투자자들에게는 세제 혜택도 줬다. 미국 연방 정부는 신시장 세액공제 제도를 이용해 지역개발사업에 투자하는 민간 투자자에게 7년간 투자 총액의 39%에 해당하는 세제 혜택을 준다.
이 제도를 시행하자 최근 14년간 총 380억달러의 민간 재원이 CDFI로 새로 들어왔다. 미국 재무부 조사에 따르면 정부의 마중물 투자와 공익적 민간 투자가 맞물리면서 약 20배쯤 시너지 효과가 생겨난 것으로 집계됐다.
모인 돈은 주 정부와 지방 정부를 거쳐 중간지원 조직에 해당하는 CDFI에 모인다. 그리고 지역 NGO(비정부기구), 시민사회단체를 매개로 지역사회 빈곤층 당사자에게 흘러들어 간다.
클리포드 로젠탈 전(前) CDFI 연합 의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체로 도심지역에서 금융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인구비율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수의 사람들이 은행 문턱을 아예 넘지 못하고 있고(un-banked), 한 달에 한 번 정도 거래를 하는 사람들 숫자(under-banked)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로젠탈 의장에 따르면 여전히 미국 전체 인구의 약 8%가 은행 문턱을 아예 넘지 못하는 상태에 놓여 있다. 미국 국민 중 29%가 한 달에 한 번 정도 은행 거래를 한다.
그는 "정치·사회적 이유로 풀뿌리 단계에서 시작된 기금은 자금지원 종류나 상품 유형을 다양화하고 비정부기구 펀딩을 통해 사회문제 개선에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2008년 금융위기 시기도 잘 헤쳐나왔다"고 평가했다.
CDFI 기금은 정부가 사회적 경제 활성화를 위해 주도한 사업으로 이상적인 사례라는 평을 받는다. 하지만 완벽하다고 만은 볼 수 없다. 집권 정당에 따라 사업이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CDFI는 클린턴 행정부에서 빛을 발했지만, 이후 부시 행정부로 정권이 넘어가자 예산이 대거 삭감돼 존폐 위기를 맞았다. 다시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서자 특별기금이 투입되면서, 설립 이래 가장 많은 예산을 받았다가, 트럼프 행정부 집권 이후 예산의 90%가 삭감되는 수모를 겪었다.
현 바이든 행정부는 CDFI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포용적 금융을 지원한다는 대선 공약에 맞춰 CDFI 관련 정책 자금을 2021년 2억7000만달러에서 올해 3억3000만달러로 늘렸다. 미국 내에서 부의 양극화를 초래하는 자본주의, 특히 금융 주도 자본주의에 대한 성찰이 요구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서민금융진흥원 관계자는 "코로나 확산 이후 미국 내에서 유동성이 대거 풀렸지만, 여전히 서민층이나 중소기업의 자금 수요가 매우 높은 데 비하면 신용이나 담보 여력이 없는 자금 수요자에게 제공하는 기존 금융 서비스의 한계치는 분명하다"며 "CDFI는 이런 기존 은행을 대신해 지역 사회에서 행정기관과 상호작용을 하거나, 일부 분야에서는 행정기관을 대신하면서 공동체의 생명줄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