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업계가 젊어지고 있다. 보험사는 통상 변화에 둔감하다는 이미지가 있었다. 그러나 요즘 보험사들은 이러한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40대 임원을 선출하거나 희망퇴직의 연령을 낮추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생명보험사 규모 1위 삼성생명(032830)은 지난 13일 정기 임원인사를 실시하고 부사장 4명과 상무 7명 등 총 11명을 승진시켰다. 부사장 승진자 중 가운데 박준규 글로벌사업팀장은 1975년생(만 46세)이다. 이어 삼성생명은 전무와 부사장 직급을 상무·부사장 2직급 체계로 바꿨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기존 연공서열을 타파하고 나이와 상관없이 경영진을 육성하기 위해 세대교체를 가속화 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롯데손해보험(000400)는 지난 28일 이사회를 통해 신임 대표이사 후보자로 이은호 전무를 추천했다. 이 후보자 역시 1974년생으로 올해 만 47세다. 롯데손보는 이 후보자 외에도 40대 임원을 발탁해왔다.
지난 2019년 취임한 최원진 전 대표이사는 당시 나이 만 46세였다. 이외에도 정영호 캐롯손해보험 대표(만 49세), 조지은 라이나생명 대표(만 46세)가 대표적인 40대 임원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점차 젊어지고 있는 임원들이 나오는 배경으로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점차 고객들이 비대면 및 온라인 업무를 선호하면서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임원들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디지털,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세대)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선 아무래도 이들을 이해할 수 있는 젊은 감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많은 보험사가 미래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디지털 사업에 힘을 기울이는 만큼, 보다 젊은 임원들을 뽑는 추세"라고 전했다.
보험사의 인력 구조 문제도 원인으로 지목됐다. 보험사의 경우 보통 회사들과 다르게 직원들이 고직급·고연령층이 많은 '역피라미드' 혹은 '항아리' 구조로 이뤄져 있어 이를 완화하기 위해 젊은 임원 층을 뽑고 있다는 것이다.
한 보험 관계자는 "20~30년 전 보험업이 호황일 때는 인력을 많이 뽑았으나, 최근에는 실적이 악화하며 채용 규모가 줄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보험업계 내에서는 '일하는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인력 구조를 보다 젊게 만들려고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세대교체를 위해 보험사들은 희망퇴직 제도를 실시하거나 이를 확대하고 있다. 희망퇴직 제도란 임금피크제(일정 연령에 도달한 직원에게 고용을 보장하는 대신 임금을 삭감하는 제도) 적용을 받는 40대, 50대 중에서 퇴직을 원하는 직원에 한해 2~3년치 월급 등을 주고 퇴직을 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교보생명의 경우 차장·부장급 근속연수 15년 이상인 직원을 대상으로 상시 특별퇴직을 받고 있다. 기존 희망퇴직 신청자는 기본급 36개월 등을 지급했으나, 이번에는 이를 48개월분으로 늘렸다. 신한라이프는 보통 만 55세 임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진행했으나, 이번엔 그 범위를 넓혔다. 대상자는 한국 나이와 근속연수 합이 60 이상인 직원 1000여명이다.
손해보험사의 경우도 비슷하다. KB손해보험의 경우 올해 6월 최대 36개월분의 급여에 해당하는 특별퇴직금을 지급했다. 전직지원금(최대 2400만원), 자녀학자금(최대 2명), 본인 및 배우자의 건강검진비(120만원) 등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주목할 점은 KB손보의 경우 이번 희망퇴직자의 대상을 30대(1983년 이전 출생자)까지 포함시킨 것이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보통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을 희망자로 받는 것과 비교하자면 이번 결정은 이례적"이라며 "세대 교체를 더욱 활발히 하겠다는 의미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보험사의 인력이 점차 젊어지고 있는 배경에 대해 점차 확대하는 디지털·모바일 시장이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관련 시장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서 이를 담당할 수 있는 전문 임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과거에는 생산의 3대 요소가 토지·노동·자본이었으나, 이젠 모바일이 추가됐다"며 "전체 소비의 40% 정도가 온라인으로 이뤄지는 만큼 이를 잘 이해하는 인력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40대 임원들 같은 경우는 50·60대 임원과 다르게 대학 때 코딩을 필수로 공부한 세대"라며 "요즘은 젊은 사람들의 감각이나 감성을 이해해야 성공적인 마케팅 또는 이윤 창출로 이어질 수 있기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른 배경으로는 점차 '성과주의'를 중요시하는 문화도 지목됐다. 나이와 직급보다는 능력과 성과에 따라 보상받을 수 있도록 해 성장 동력을 만들어낸다는 의미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젊은 임원들이 등장하는 것은 기존 연공서열을 완화함과 동시에 평가에 따라서 보상이 이뤄지도록 하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며 "금융사들 새로운 분위기와 조직 문화의 개선을 위해 좀 더 젊은 연령대가 의사결정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