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농협금융지주가 2012년 신경분리(신용·경제 사업 분리) 이후 10년 만에 처음으로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단행한다. 앞서 가계부채 증가율이 급등해 4개월 간 대출 중단 사태를 빚었던 자회사 농협은행의 자본 적정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농협금융이 대규모 실탄을 확보하면서 비은행 계열사의 M&A(인수합병) 가능성이 커졌다는 시각도 있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금융은 지난 24일 이사회를 통해 총 1조1121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하기로 만장일치 의결했다. 이번 유상증자는 주주배정 방식으로 진행된다. 발행주식 전량을 소유한 농협중앙회가 출자금 전액을 부담하는 방식이다. 주금납입일은 내년 2월 3일이다.

NH농협금융지주. /조선DB

농협금융지주는 정부가 농협중앙회가 보유한 사업을 신용과 경제 부문으로 분리하는 작업을 단행해 2012년 3월 출범했다. 은행·보험·증권 등 금융산업을 통제할 수 있는 농협금융지주를 세워, 농협중앙회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독특한 형태다. 농협금융 관계자는 “그간 농협금융은 채권 발행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 왔다”며 “(농협중앙회가 농협금융에 자금을 대는 것은) 지주 설립 이래 처음”이라고 말했다.

농협금융이 이번에 확보할 재원은 농협은행의 자본 적정성을 개선하는 데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에서도 과잉 유동성으로 인한 금융시장의 위험 요인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가계대출이 빠르게 늘어난 은행에 추가 자본을 더 적립하도록 조치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올해 가계부채 증가율이 가장 가팔랐던 농협은행도 이런 상황에 대비해야 할 필요가 생긴 셈이다.

농협은행의 자본 적정성은 시중은행 대비 부진한 편이다. 농협은행의 대표 자본 적정성 지표인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의 경우 지난 3분기 기준 18.12%로 준수한 편이다. 기본자본비율과 보통주자본비율도 각각 15.91%, 15.45%로 꽤 개선된 편이다. 하지만 보수적으로 측정되는 지표인 ‘단순자기자본비율’(바젤Ⅲ 레버리지비율)을 살펴보면, 다른 시중은행에 비해 부족한 수준이다. 농협은행의 단순자기자본비율은 현재 4%대에 머물러 있는데, 5%를 유지하는 여타 시중은행과 비교해 차이가 있다. 단순자기자본비율은 우선주를 제외하고 순정자본인 보통주만을 자기자본으로 인정해 자기자본을 총자산으로 나눠 산출한다. 금융감독원은 농협은행에 이 지표를 안정권(5.5%) 수준으로 끌어올리도록 꾸준히 주문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농협은행은 단순자기자본비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매년 자금 조달 노력을 해왔다. 2015년 4000억원, 2018년 2000억원, 지난해 12월에는 1000억원의 유상증자를 실시했고, 올해 들어서는 3월과 8월 각각 3000억원과 2000억원의 유상증자를 단행한 바 있다. 내년 1조여원의 자금을 끌어오게 되면 단순자기자본비율은 4.5% 이상으로 높아질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2025년까지는 5%에 안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장기적으로 볼 때 농협금융 비은행 계열사의 M&A 가능성도 커졌다고 보고 있다. 현재 농협금융은 은행과 증권사가 주력이다. NH농협생명과 농협캐피탈 등도 올해 약진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비은행 부분의 안정적인 성장 지원과 경쟁력 강화는 여전히 중점 추진 과제다. 다만 농협금융은 이번 유상증자가 M&A 목적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유상증자안은 오는 28일 열리는 농협금융 주주총회에서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