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을 기는 예금금리와 팍팍해진 대출 탓에 좀 더 나은 상품을 찾아 주거래 은행을 떠나는 ‘갈아타기’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의 가계 부채 관리 압박에 시중은행들이 우대 금리를 낮추고 대출을 중단하는 상황에서 인터넷은행과 저축은행이 특별판매 예·적금 상품을 내놓자, 수요자들이 ‘금융 둥지’를 옮기는 현상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11월 23일 오후 서울의 한 시중은행 창구의 모습. /연합뉴스

◇은행 주담대 막자 핀테크 연계 신용대출 껑충

조선비즈가 대출중개·관리서비스 제공 핀테크 기업 핀다에 데이터 분석을 의뢰한 결과, 지난 8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핀다의 대출비교플랫폼을 통해 ‘주택 구입’을 위해 신용 대출을 실행한 건수는 직전 3개월(5월1일~7월31일) 대비 7.4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핀다 앱을 통한 연계 신용대출을 받은 차주의 대출 실행 목적(대환대출, 전월세보증금, 주택 구입, 자동차구입, 생활비, 사업자금, 기타, 투자) 수요 조사 결과를 분석한 것이다. 핀다의 대출비교플랫폼에 입점한 금융사는 49곳이다.

지난 8월부터 10월 말까지 핀다 전체 대출 건수는 직전 3개월 대비 평균 2배 증가한 반면, 주택 구입 목적 신용 대출은 7배 이상 늘며 급증했다. 최근 3개월간 핀다 앱을 통한 주택구입 목적 신용 대출 실행 건수는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7개월간 실행된 주택구입 목적 대출 실행 건수의 4.4배에 달했다.

주택구입 목적의 핀다 플랫폼 연계 신용대출 수요 급증 시점이 주요 시중 은행들이 가계대출 총량을 관리하기 위해 신규 주택담보대출을 중단하거나 신용대출 한도를 축소한 시점이라는 점에서 풍선효과가 나타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지난 8월 NH농협은행을 시작으로 시중은행과 인터넷은행 등에서 잇달아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을 조였다. NH농협은행과 하나은행은 신규 주택담보대출을 중단하고, 우리은행은 부동산담보대출에 대한 우대금리를 전면 축소했다. KB국민은행은 모기지 신용보험(MCI), 모기지 신용보증(MCG) 가입을 제한해 주담대 한도를 줄이고 타행 주담대 대환대출을 중단했다. 카카오뱅크는 1주택자 비대면 전세대출을 중단했다.

핀다 관계자는 “올해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대출이 막히자, 주택 마련 자금이 필요한 수요층이 핀테크 앱을 통한 연계 신용대출 상품으로 몰린 것으로 보인다”면서 “특히 고신용자들이 충분한 대출 한도를 받기 위해 선택의 폭이 넓은 대출 비교 서비스로 유입되는 현상도 두드러졌다”고 말했다.

시중은행에서 대출이 까다로워지자, 부족한 총알을 확보하려 플랫폼을 통해 저축은행, 카드, 캐피탈, P2P 등 연계 대출을 하는 경우가 늘었다는 얘기다.

같은 이유로 주거래은행 창구를 이용하던 800점대 이상의 고신용자도 유입됐다. 지난 9월 기준 신용점수 800점 이상인 핀다 사용자의 비중은 전체의 19%로, 지난 1년 중 가장 많았다. 고신용자의 유입이 늘어난 영향으로 핀다의 비교대출 서비스를 실행한 사용자의 9월 평균 신용점수는 775점으로 전년 동기보다 45점이나 상승했다. 신용대출 평균 승인 한도 금액도 전년 대비 13% 증가했다.

◇ “높은 금리 찾아 떠난다”… 예금통장 갈아타는 고객들

대출 이외에도 높은 예금 금리를 찾는 수요도 늘어났다.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직장인 박소진씨(29·가명)는 “대학생때부터 줄곧 한 은행(5대은행 중 한 곳)을 주거래해왔으나 최근 통장에 있던 목돈을 모두 토스뱅크 파킹통장 계좌로 옮겼다”고 말했다. 이유는 ‘이자율’ 때문이었다.

기존 수시입출금식 예금통장 이자는 연 0.1%인 반면, 토스뱅크 이자는 연 2%다. 박 씨는 “은행들이 대출에 적용하는 우대금리도 폐지하는 데다 예금 금리도 낮은데 실리 면에서 주거래 은행을 굳이 고집할 이유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출범한 토스뱅크가 내놓은 ‘연(年) 2% 수시입출금식 예금통장’에 사전 신청자만 170만명이 몰렸다. 현재 시중 수시입출금식 예금통장 중에서는 최고 금리로, 시장의 불만을 겨냥해 고객 몰이에는 성공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시중은행보다 금리가 높은 파킹통장(주차장에 잠시 주차하듯 목돈을 일시적으로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통장)이 인기를 끌면서 인터넷은행과 저축은행 등 업계 후발주자들도 앞다퉈 특별 예·적금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이달 케이뱅크는 스폰서로 참가한 그룹 야구단 ‘kt wiz’의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기념해 총 2021억원 한도가 소진될 때까지 케이뱅크의 정기예금 ‘코드K정기예금’ 1년 만기 상품에 연 2.1%(세전 기준) 금리를 적용하는 상품을 내놨다. 상상인저축은행은 이달 비대면 정기예금 ‘뱅뱅뱅 정기예금’ 상품 금리를 12개월 이상 거치 시 금리를 연 2.61%로 인상한다고 밝혔다. 현재 은행권 정기예금 상품 금리가 연 0.50%~1.82% 수준이다.

◇ “금리 인상기 후발주자 경쟁 치열”… 5대 시중은행은 ‘여유’

연내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이 큰 가운데, 금리 인상에 맞춰 유동자금을 흡수하려는 수신 경쟁도 치열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은행 입장에서는 금리가 낮을 때 수신 잔고를 채워야 예대율(전체 예수금 대비 전체 대출금 비율) 관리 비용도 줄일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발 양적완화 종료로 국내 금리 인상이 본격화하면 대출 및 예·적금 금리 민감도는 더 커질 것”이라면서 “금리 인상 국면에서 고객을 확보하고 수신(예금)을 미리 채워 여신(대출)을 확대하려는 인터넷은행과 저축은행 등 업계 후발주자들의 경쟁이 더 치열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신규 고객과 예수금 확보에 열을 올려 경쟁력을 키우려는 인터넷은행·저축은행들과 달리, 주요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 당분간 예·적금 금리 인상 가능성은 낮다는 입장이다. 가계대출 총량 관리와 금융규제 유연화 방안 등으로 예대율 관리가 비교적 잘 되고 있어서다.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올해 3분기 평균 예대율은 약 98.9%다. 예대율 기준치인 100%를 넘으면 은행은 추가 대출 등 영업이 제한될 수 있다. 다만 금융당국은 코로나19 영향으로 작년 3월부터는 예대율 기준치를 105%까지 완화해줬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인터넷은행과 저축은행들의 예·적금 특판상품 출시는 예수금 확보 등 여러 전략적 판단이 깔린 것인데, 시중은행 입장에서는 예수금 유지를 잘하고 있기 때문에 이자율을 높인 상품을 내놓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저축은행·인터넷은행의 예적금 금리와 차이가 더 크게 벌어지면서 고객 이탈 현상이 심화한다면 5대 은행도 이자율이 높은 예·적금 특판 상품을 내놓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현재로선 낮다”면서 “더구나 저축은행 등으로 목돈을 옮기는 고객 중에는 불안감에 예금자보호 지급 한도인 5000만원 선에 맞추는 경우도 많아 수요 이탈 충격도 미미할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한편, 가계 대출을 전면 중단했던 시중은행들이 대출 총량 관리에 여유가 생기자 닫아둔 대출 창구를 슬슬 열고 있다. NH농협은행은 내달부터 무주택자를 대상으로 신규 주택담보 대출을 재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나은행은 지난 23일 오후 6시부터 하나원큐아파트론과 하나원큐신용대출 등 비대면 모바일 대출과 신용 대출 상품을 다시 취급했다. 내달 1일부터는 주택·상가·오피스텔·토지 등 부동산 구입 자금 대출 판매도 재개한다. 그동안 은행들이 가계 대출 총량 관리를 위해 우대 금리를 축소하는 방식으로 대출 금리를 높여왔는데, 우대 금리도 되살아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