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금융사로부터 예년보다 더 촘촘한 가계대출 공급 계획을 받아 관리하기로 한 가운데, 은행들도 내년도 대출 취급 계획 새판짜기에 돌입했다. 일찍이 대출을 엄격히 관리해 금융당국으로부터 '모범생' 낙점을 받은 신한은행의 가계대출 관리 방식을 참고할 것으로 보인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이번 주 중 내년도 가계대출 총량관리 계획 수립과 관련한 조율 작업에 착수한다. 5대 시중은행의 부행장들을 소집해 은행별로 세운 계획을 보고받고, 금융당국과의 협의를 통해 이달 중 계획표를 확정 짓는 방식이다.
◇ 금융당국, 시중은행 불러 내년도 대출 계획 논의
금융위원회가 세운 내년도 연간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는 올해(5~6%)보다 더 낮은 4~5% 수준이 될 전망이다. 금융위는 또 올 한해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를 잘 지킨 금융사들에는 내년도 총량을 더 주는 등 한도 차등 부여 방식도 검토 중이다. 지키지 못한 은행에는 2~3% 정도의 낮은 한도를 부여해, 일종의 페널티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이다.
차등 부여 방식이 시행되면 내년 넉넉한 한도를 받아들 것으로 예상되는 곳은 단연 신한은행이다. 신한은행은 올해 가계대출 총량 관리의 모범생으로 낙점받았다. 지난 8월 말 NH농협은행의 부동산 대출 중단 사태를 시작으로 여타 시중은행으로 대출 제한 조치가 이어지는 '대출 대란' 가운데서도, 신한은행은 정상적인 영업을 해 온 거의 유일한 시중은행이었다.
10월 말 기준 각 은행의 연간 대출 증가율은 ▲농협은행 7% ▲KB국민은행 5.5% ▲하나은행 5.4% ▲우리은행 4.6%를 기록했는데, 신한은행이 4.4%로 가장 낮았다. 여기에 전세대출이 당국의 총량 규제 대상에서 예외로 인정되면서, 신한은행의 대출 여력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신한은행이 연말 도미노 대출 중단 사태를 피해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예년보다 더욱더 철저해진 대출 한도 관리 방식이 있었다. 특히나 여기에는 진옥동 신한은행장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바젤Ⅲ 개편안 조기 도입으로 가계대출과 기업대출의 비중을 맞춰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는데, 대출 총량 예측에 실패한 탓에 지난해 12월 대부분의 가계 신용대출을 일시 중단해야만 했다.
대출 중단 사태는 곧 관련 전략을 짜는 은행의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과 같다는 것이 진 행장의 생각이었다. 대출 관리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라고 담당자들을 강도 높게 질책했다는 후문이다.
◇ '모범생' 신한의 전략은?… 보수적인 집단대출 취급 등
신한은행은 우선 집단대출을 보수적으로 취급하는 전략을 취했다. 집단대출은 대단지 아파트 입주민들의 중도금·잔금대출 등을 한꺼번에 내주는 것으로, 대규모 영업 거점을 형성하고 대출 자산을 쉽게 불릴 수 있어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렸다. 하지만 은행별로 총량 제한을 받는 요즘은 잔여 한도가 빡빡해지는 연말이 되면 집단대출이 불청객 취급을 받곤 한다.
올해 5대 시중은행이 취급한 집단대출 잔액을 살펴보면 신한은행이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집단대출 잔액은 ▲우리은행 ▲하나은행 ▲농협은행 ▲국민은행 순으로 가장 많은 취급액을 보였다. 월별로 살펴봐도 신한은행은 집단대출 월별 취급액을 25조원대를 넘지 않는 전략을 취했다. 대부분의 은행이 올해 들어 월별 30조원 넘는 집단대출을 꾸준히 취급해온 것과 다른 행보다.
신한은행은 연초부터 선제적으로 모기지신용보험(MCI)·모기지신용보증(MCG) 대출을 중단하기도 했다. MCI·MCG 주택담보대출과 동시에 가입하는 보험으로 이 대출이 중단되면 차주가 받을 수 있는 대출한도는 줄어들게 된다. 국민은행과 하나은행, IBK기업은행 등이 총량 한도 관리가 어려워진 10월에서야 이런 조처를 한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이다.
타행보다 다소 높은 대출금리 산정도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은행연합회 소비자포털에서 5대 시중은행의 일반 신용대출 평균 금리를 살펴보면, 올해 들어 신한은행은 대부분 하나은행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금리를 보였다. 지난 9월에는 일반 신용대출 평균금리가 연 3.55%로 가장 높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연초부터 월별로 촘촘히 대출 한도를 관리했던 신한은행 방식을 여타 시중은행이 내년도 대출 공급 계획을 세울 때도 참고할 거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