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급증하는 가계부채를 잡기 위해 제2금융권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기준치를 현재 60%에서 50%로 크게 낮췄다. 여기에 올해 들어 빠르게 늘어난 카드론도 DSR 규제에 포함하기로 했다. 다중채무자의 카드론 이용을 제한해 시중은행과 제2금융권을 전부 아우르는 ‘상환능력 중심 대출 관행’ 체계를 만든다는 구상에 따른 조치다. 이전에는 시중은행 대비 비교적 넉넉했던 제2금융권 대출 한도가 대폭 줄어들 것으로 보이면서 카드론과 저축은행 중금리 대출이 상징하는 ‘빚투(빚내서 투자)’, ‘영끌(영혼을 끌어모아 투자)’ 행렬에도 제동이 걸렸다.
금융위원회는 26일 올해 4월부터 시행한 가계부채 관리방안의 후속 보완과제 및 추가 대응방안을 발표하면서 지금까지 DSR 산정에 적용하지 않았던 카드론도 포함하는 등 제2금융권에 대한 DSR 기준을 강화했다. 시중은행 대출 수요가 제2금융권으로 쏠리는 이른바 ‘풍선효과’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현재 제2금융권은 차주단위 DSR 기준을 60%로 적용받고 있다. 이 기준치는 내년 1월부터 50%로 낮아진다. 금융회사별로 적용되는 평균 DSR 규제도 강화한다. 보험은 70%에서 50%로, 상호금융은 160%에서 110%로, 카드사는 60%로 50%로, 캐피탈사는 90%에서 65%로, 저축은행은 90%에서 65%로 크게 줄었다.
특히 카드사 카드론 이용자들은 제2금융권 금융 소비자 가운데 이번 규제로 가장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됐다. 카드론의 경우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리스크에 대한 선제적이고 강력한 관리를 강조하면서 내년 7월로 유예됐던 차주단위 DSR 적용 방침이 내년 1월로 조기 적용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그동안 카드론은 저소득층 서민들이 주로 이용한다는 이유로 차주단위 DSR 규제에서 제외됐다”며 “그러나 원칙적으로 차주의 상환부담과 관련 있는 모든 대출을 DSR 산정 시 포함할 필요가 있다는 데 동의했고, 현재 카드론 증가세는 새로운 가계부채 뇌관이 될 수 있어 차주단위 DSR에 일찍 포함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연소득 4000만원에 기존에 주택담보대출 1억8000만원, 신용대출 2500만원을 보유 중인 차주가 카드론(장기카드대출) 800만원을 신청하는 경우 현재는 신청금액인 800만원 이내에서 카드론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차주단위 DSR 50%가 적용되면 대출 가능액은 636만원으로 줄어든다.
금융당국은 카드론 다중채무자 관련 가이드라인도 내년 1월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5개 이상 카드사에서 카드론 대출을 보유한 다중채무자는 카드론을 받을 수 없게 되고, 다중채무 규모에 따라 이용한도도 줄어든다.
한 전업카드사 관계자는 “1금융이 아닌 카드론까지 찾는 차주들을 보면 다른 곳에 이미 대출이 많은 중저신용자가 대부분”이라며 “카드론 관련 DSR 규제가 강화되면 중저신용자들은 P2P나 대부업, 사금융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크고 카드사들도 취급액이나 수익성에 타격이 상당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금융당국은 “취약차주 대상 정책자금대출, 긴급자금 마련 목적의 300만원 이하 소액 신용대출이나 서민금융상품은 앞으로도 DSR 산정에서 계속 제외될 것”이라며 “취약계층의 금융 접근성에 어려움이 없도록, 정책서민금융상품이나 중금리대출 같은 서민 금융을 계속 확대 공급해 취약계층이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리는 상황을 막겠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은 이외에도 상호금융권 비(非)조합원 대출관리를 위한 예대율을 정비해 내년 7월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예대율 산정시 조합원 및 비조합원 대출 가중치를 차등화해 ‘상호금융 원정 대출’ 수요를 조인 것이다.
그동안 금융당국이 시중은행 대출을 조이자, 지방 상호금융·새마을금고·신용협동조합·우체국 같은 비(非)은행예금취급기관에는 대출 행렬이 이어졌다. 일부 부동산 커뮤니티와 대출 관련 익명 게시판에서는 ‘대출 잘 해주는’ 지방 원정 대출에 대한 문의까지 줄을 이었다.
금융당국은 “상호금융은 원래 지역 농어업 종사자끼리 상호부조를 한다는 목적에 따라 설립한 기관인데, 최근 비조합원 대출이 급증하면서 ‘관계형 금융’이라는 정체성이 약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며 “비조합원이 상호금융 대출을 받아 관계형 금융이 아닌 부동산 투자자금으로 활용하는 사례까지 발생해 예대율에 차등을 둘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저축은행과 상호금융 등 제2금융권 금융기관들은 이번 DSR 규제 강화로 소득이 적은 저신용자의 대출 한도가 줄어들고 제도권 금융 이탈이 가속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금융소비자연맹 관계자는 “시중은행과 저축은행 사이 DSR 차이가 좁아지면서, 시중은행에서 대출이 막힌 고신용자가 저축은행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며 “소상공인을 포함해 일부 저신용자들은 카드론 대출로 물건 대금을 갚거나 생활 자금을 충당했는데, 이번 규제로 이들의 자금난이 심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