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서류./pxfuel

최근 보험사들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일환으로, 종이문서를 전자문서로 전환하는 ‘페이퍼리스’ 시스템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약관 등 구조가 복잡한 보험상품 특성상 매년 보험 관련 서류에 수억 장의 종이가 낭비되고 있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실손보험의 경우 지난해 1억건이 넘는 청구가 이뤄졌다. 실손보험금 청구를 위해 발행되는 진료비 영수증만 최소 4억장이다. A4용지 1만장 생산에 30년산 원목 1그루가 필요한데, 매년 30년산 원목 4만 그루가 배어지고 있는 것이다.

18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NH농협생명은 이번 주부터 ‘QR코드’를 이용해 고객에게 약관 전달을 시작했다. QR코드를 이용한 약관 교부는 청약서에 인쇄된 QR코드로 고객이 직접 다운로드하는 온·오프라인이 융합된 방법이다. 고객은 청약서에 인쇄된 QR코드를 통해 자신이 가입한 보험 약관을 다운로드할 수 있다.

보험사의 기존 약관 교부방법은 금융소비자 보호법률에 따라 ▲서면교부 ▲우편 또는 전자우편 ▲휴대전화 문자메세지 또는 이에 준하는 전자적 의사표시에 의해서만 가능했다. 이번에 NH농협생명의 QR코드를 이용한 약관 전달방식은 전자적 의사표시에 해당한다는 금융당국의 해석을 받았다.

페이퍼리스 시스템이 구축된 교보생명 고객플라자 창구 모습./교보생명 제공

현대해상은 지난 5일 별도의 기기 없이 고객이 직접 스마트폰으로 지문을 촬영해 보험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지문인증 전자서명’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에 앞서 지난 2017년 ‘휴대폰 직접서명’ 전자청약 시스템을 도입했으나, 계약자와 피보험자가 다른 계약의 경우에는 전자청약이 불가능했다.

지문인증 전자서명 시스템은 기존 10단계의 서면 청약 절차를 4단계로 축소했다. 기존 서면 계약체결 시 고객이 최대 15회 자필서명을 해야 했다면, 지문인증 전자서명은 한 번의 전자서명만으로 보험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현대해상은 이를 통해 연간 약 1370만 장의 종이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교보생명은 지난 6월 고객이 직접 방문해 업무를 보는 전국 고객프라자 창구에서 종이가 필요 없는 페이퍼리스 전자문서 업무 환경을 도입했다. 기존 종이서류 작성은 터치모니터를 활용한 전자작성으로, 처리결과 영수증은 알림톡 자동발송으로 대체된다. 증빙서는 자동 이미지로 보관된다.

미래에셋생명도 지난해 말 보험업계 최초로 문서 편철을 모두 폐지, 고객프라자와 지점 등 고객이 내방해 업무를 보는 창구에 페이퍼리스 업무 환경을 구축했다. 보험과 대출 등 업무 문서를 모두 전자문서로 전환하고, 전자증명서와 전자위임장을 통해 모바일에서 서류를 주고받을 수 있다.

실손보험 가입자 10명 중 3명이 실손보험 청구 절차가 복잡해 청구를 포기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보험사들의 이 같은 시스템 구축만으로는 종이 낭비를 막기에는 한계가 있다. 보험업계에선 완전한 페이퍼리스 환경 구축을 위해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도입이 필요하다고 촉구한다. 현재 실손보험 청구를 위해서는 보험계약자가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증빙서류를 일일이 보험사에 제출해야 한다.

지난해 손해보험사 기준 전체 실손보험 보험금 청구건수 7944만4000건 중에 전산청구가 이뤄진 건은 9만1000건으로 0.11% 비중이다. 나머지 7935만3000여건은 우편, 팩스 등 종이서류를 발급받아 이뤄졌다.

실손보험 청구간소화법은 의료계가 환자 의료기록 유출과 정보 악용 등을 이유로 반발하며 국회에서 표류 중인 상황이다. 관련 보험업법 개정안은 20대 2개에 이어, 21대 국회에서도 5개 발의된 상태다.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가 이뤄지면 보험계약자가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모든 서류를 일일이 보험사에 전송할 필요 없이, 병원에서 보험사에 전자문서를 직접 전달한다.

정성희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실손보험은 전 국민의 약 75%가 가입하고 있고, 연간 청구건이 1억건 이상인 점을 고려해 볼 때, 실손보험의 청구전산화는 사회적 편익을 높이는 방향으로 적극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