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범 금융위원장이 “전세대출 중단이 없도록 하겠다”고 발언한 직후 은행들의 정상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하나은행을 제외한 신한·우리·NH농협·KB국민은행이 전세대출 제한을 해제했다. 일부 지방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의 경우 다음 주 발표되는 금융당국의 대출 관리 방안을 좀 더 지켜본 뒤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15일 은행권에 따르면, 대부분 주요 은행들은 다음 주부터 전세대출 공급을 정상화한다. 금융당국이 올 4분기(10~12월) 취급되는 전세대출의 경우 총량 관리 한도에서 제외하겠다고 결정하면서다. 전날 오전 고 위원장에 이어 문재인 대통령까지 “연말 실수요자 전세대출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같은 날 오후 5대 시중은행의 여신 담당 부행장을 불러모아 대책을 논의한 결과다.

그래픽=손민균

◇ 주요 시중은행 즉각 전세대출 풀어… 하나은행은 대출 제한 유지

신한은행은 당초 대출모집인을 통한 전세대출 한도를 총 5000억원으로 제한하고 있었는데, 오는 18일부터 정상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점·월별 한도 관리를 시행 중이던 우리은행의 경우, 다음 주 중부터 전세대출 한도를 지점별로 추가 배정하기로 했다. 지난 8월 말부터 대부분의 부동산 신규 대출 영업을 아예 막았던 농협은행도 전세대출 상품에 대해서는 오는 18일부터 공급을 재개하기로 했다.

국민·하나은행은 최근 적용하기 시작한 전세금(임차보증금) 한도 축소 조치를 계속 유지하기로 했다. 이는 계약 갱신 시 보증금이 오른 만큼만 대출을 내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기존에 전세대출 없이 현금 등으로 보증금을 충당하고 있었던 이들이 보증금 증액 시 돈을 빌릴 수 있는 한도가 크게 줄게 된다.

만약 4억원이었던 전세 보증금이 재계약 때 2억원 늘어나 6억원이 됐을 경우를 가정해 보면, 기존에 대출이 없었던 A씨의 경우 2억원까지만 돈을 빌릴 수 있다. 이전에는 총 보증금의 80%인 4억8000만원까지도 가능했었다. 기존 보증금에 대출이 많이 껴 있던 사람이나 새로 전세계약을 맺은 사람의 경우 이전과 크게 달라지는 점은 없다. 수요자의 여력에 맞춰 필요한 만큼만 돈을 빌려주겠다는 취지의 조치여서, 은행들이 다시 한도를 늘려 과한 대출을 내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만 국민은행의 경우 우리은행처럼 지점별로 한도를 관리하고도 있었는데, 전세대출은 해당 한도에서 제외해 운용하는 방식으로 전세대출 여력을 더 늘리기로 했다.

유일하게 전세대출과 관련한 추가 조치를 내놓지 않은 하나은행은 오히려 더 강화한 대출 제한 조치를 내놨다. 오는 19일 저녁 6시부터 연말까지 전세대출·집단 잔금대출·서민금융상품 등을 제외한 신용대출과 부동산대출을 모두 중단하기로 한 것이다. 하나은행 측은 “부동산 구매나 주식 투자 등 실물자산으로 지나친 유동성이 유입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 마련된 방안”이라며 “일단 올 연말까지 이들 상품의 판매를 중단하고, 가계대출 증가세가 진정되는 현황을 보면서 재개 일정을 조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승범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투자자 교육 플랫폼 '알투플러스' 오픈 기념회에 참석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 고 위원장은 "10월과 11월, 12월 중 전세 대출에 대해서는 총량 관리를 하는 데 있어 유연하게 대응하도록 할 생각"이라며 "전세 대출 증가로 인해 가계대출 잔액 증가율 목표가 6%대로 증가하더라도 용인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 카뱅·부산·경남은행 “당국 내놓을 대출 관리 방안 지켜보자”

전세대출 제한 조치를 시행 중이던 일부 지방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도 빗장을 풀기 위한 검토에 착수했다. 지방은행 중에선 BNK부산·경남은행이 전세대출을 제한하고 있었다. 경남은행은 전세자금 신규 접수를, 부산은행은 전세대출에 대한 대환대출을 각각 지난 12일부터 중단했다. 인터넷전문은행 중에선 카카오뱅크가 일반 전월세보증금대출 신규 취급을 막은 바 있다.

이들은 일단 금융당국이 내놓을 구체적인 가계부채 보완 대책을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한 지방은행 관계자는 “통상 시중은행이 먼저 시행하면 지방은행은 따라가는 흐름”이라며 “일단 다음 주 중 금융당국에서 공식적으로 구체적인 대출 관리 방안을 내놓겠다고 했으니 이를 보고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전세대출을 총량에서 제외해주겠다곤 했으나, 그간 거론돼 온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포함이나 보증기관의 전세대출 보증 비율 축소, 임차보증금 증액분으로의 한도 제한 등의 전세대출 감축 방안이 추가로 포함될 수도 있어서다.

전세대출 공급량을 소폭 제한한 바 있던 외국계은행 SC제일은행은 일단 현 상황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SC제일은행의 경우 지난 8월 말 ‘퍼스트전세보증론’ 상품의 일부 금리 유형(3개월 CD금리 연동·신규코픽스 연동)의 공급을 잠정 중단한 바 있다. 이와 관련 SC제일은행 관계자는 “현재로선 잠정 중단 상태를 계속 유지할 것이며 다른 유형의 경우 정상 판매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 모집인을 통한 모든 대출을 전면 중단한 바 있던 IBK기업은행도 “(모집인대출을 통한 전세대출만 허용하는 방안과 관련해)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