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분양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잔금을 치러야 하는 상황에서 은행들이 대출을 승인해주지 않아 ‘보금자리론’ 마저 받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보금자리론 자격이 되는데도 최근 이런 통보를 받은 예비 입주자들은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이다.
금융당국은 무주택 실수요자를 대상으로 하는 보금자리론의 한도는 넉넉하게 관리하고 있어 공급이 막히는 일은 없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그러나 신규 입주 아파트에 적용되는 ‘후취담보’ 건의 경우 은행의 협약이 필수적이라, 대출 총량을 관리해야 하는 은행들이 거절하면 보금자리론을 받을 길이 없다. 일종의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셈이다.
29일 금융권과 부동산업계 등에 따르면, 경기 광주시에 있는 공공분양 A 아파트는 최근 모든 시중은행들로부터 “보금자리론과 관련해 집단대출 승인을 내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A 아파트 입주예정자협의회가 선임한 법무법인이 그나마 긍정적이었던 한 은행과 막판까지 협의를 거듭했으나 “가계대출 총량 규제에 따라 은행 본점에서 대출 승인을 거부했다”고 알려온 것이다.
오는 11월 30일 입주를 앞두고 보금자리론을 통해 마지막 잔금을 치르기로 자금 계획을 세워뒀던 A 아파트 1030여세대 대부분에는 날벼락인 상황이다. 특히 이 아파트는 청약 당시 소득·자산 제한 등이 있어 말 그대로 신혼부부, 다자녀 가정 등 무주택 ‘서민’들이 많이 당첨됐던 곳이라고 한다. 한 입주 예정자는 “1억5000만원에 달하는 잔금을 현금으로 충당하게 생겼는데, 이를 두달 만에 어떻게 구하느냐”며 “2년 전 청약에 당첨됐을 때 세워둔 자금 계획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됐다”고 토로했다.
보금자리론은 특히 2030 젊은 층이 첫 ‘내 집 마련’을 위해 거의 필수적으로 이용하는 정책금융 상품이다. 주택금융공사(주금공)가 취급하는 보금자리론은 집값 시세 6억원 이하, 연소득 7000만원(신혼부부 8500만원) 이하에 제공되는 고정금리의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이다. 만기는 최대 40년, 최대한도는 3억6000만원 규모다. 실수요자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담보인정비율(LTV)이 다른 주담대에 비해 느슨한 최대 70%까지 적용된다. 은행 주담대가 LTV 40%(투기과열지구 기준)라는 점과 비교하면 큰 규모다.
주금공은 현재 보금자리론 자체는 정상 운용 중이며, 무주택 실수요자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한도도 넉넉하게 관리 중이라는 입장이다. 문제는 신규 입주 아파트다. 신규 입주 아파트나 토지 등기 미정리 등의 사유로 담보를 취득할 수 없는 경우인 후취담보 건은 은행 지점에서 대출 취급 시 리스크를 안고 가야 하므로 은행이 사업장 상황을 총체적으로 고려해 취급 여부를 결정한다.
주금공에 채권이 이관될 때까지 해당 취급 분은 은행의 가계부채 상승분에 포함되기 때문에 대출 총량을 관리하라는 금융당국 기조에 맞추기 위해 거절하는 사례가 속출하는 것이다. 주금공 관계자는 “신규 입주 아파트가 협약 은행을 구하지 못하면 보금자리론을 받을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보금자리론이 막히면 금리가 높고 한도가 낮은 일반 주담대 상품을 이용해야 하는데, 은행들이 집단대출을 꺼리는 분위기가 강해 이마저도 어렵다. 현재 NH농협은행이 집단대출을 비롯한 모든 부동산 관련 대출을 막았고, 대출 규모가 가장 큰 KB국민은행은 이날부터 집단대출 한도를 축소해 운영하기로 했다. 나머지 은행들도 본점에서 집단대출 승인을 거절하거나 보수적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2금융권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다. 유사한 사례는 경기 광주뿐 아니라 현재 신규 입주를 앞둔 전국 곳곳에서 잇따르고 있다.
이번 가계대출 규제로 실수요 피해가 없도록 하겠다는 금융당국이 이런 ‘사각지대’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전날 보금자리론 등 정책금융상품에 대출 수요가 쏠려 향후 중단될 우려에 대해 “보금자리론 등 실수요자 보호 방안을 주택금융공사와 함께 고민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당국이나 주금공은 보금자리론 자체의 문제가 아닌 집단대출을 꺼리는 은행의 문제로, 은행은 총량을 규제하는 금융당국의 문제로 바라보고 있다”며 “책임 미루기만 하고 있으니, 결국 피해를 보는 건 서민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