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KB금융지주 계열 저축은행인 KB저축은행에 가계대출 관리를 소홀히 했다며 무더기 징계를 내리자, 저축은행 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번 징계는 지난달 금융당국이 저축은행을 포함한 제2금융권에 신용대출 한도를 연소득 수준까지 제한할 것을 요청한 이후 처음으로 내려진 대출 관리 징계다. 일부 저축은행들은 KB저축은행이 징계를 받자, 다음 순번이 되는 사례를 피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대출 상품을 판매 중단하는 강수를 뒀다.

9일 저축은행 업계에 따르면 강원도 춘천 기반 CK저축은행은 이달 들어 신용대출·전세자금대출·주택담보대출 상품 판매를 모두 중단했다. 현재 CK저축은행 홈페이지에는 비대면 대출 상품인 예적금담보대출만 취급한다고 나와있다. 이전 이름이 강원저축은행이었던 CK저축은행은 올해 4월 최대주주 특수관계자인 임원에게 보수규정이나 성과평가를 넘어선 임금을 지급하고, '묻지마' 법인카드 사용을 용인해 금융당국으로부터 경영유의 조치를 받았다. 이 때문에 저축은행 업계에서는 당국의 '요주의' 관리 대상으로 꼽혔다.

한국투자저축은행도 7일부터 임대아파트담보대출 상품 '홈전세론2' 판매를 중단했다. 이 상품은 연 3.72~8.49%의 고정금리 대출로 최대 3억원까지 빌려주는 상품이다. 한국투자저축은행은 지난해 부동산PF 대출을 2019년보다 34.3%나 늘려 건전성 관리 여부가 도마에 올랐다.

업계 3위권 대형 저축은행으로 꼽히는 페퍼저축은행은 신용대출 일부 상품 판매를 잠정 중단했다. 페퍼저축은행은 페퍼다이렉트론(6.9%~19.4%), 페퍼다이렉트론2(6.9%~19.9%), 페퍼루300(6.9%~8.0%) 같은 신용대출 상품을 취급하고 있다. 페퍼저축은행은 지난주 토스, 핀다 같은 핀테크 플랫폼에서 대출 상품 판매를 일시 중단할 정도로 강하게 대출 총량을 관리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금융정보통계시스템에 따르면 페퍼저축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해 1분기 1조7407억9000만원에서 올해 1분기 2조3751억1900만원으로 약 36% 급증했다.

페퍼저축은행 관계자는 "전략적 차원에서 일시적으로 일부 상품 판매를 중단했다가, 이번 주부터 다시 판매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은행 앞 대출 상품 관련 현수막의 모습. /연합뉴스

별도로 대출상품 판매 중단을 고지하지 않는 일부 저축은행들 가운데 전세자금 상품에 대한 안내를 지우는 방식으로 대출 조절에 나선 곳도 있다. 저축은행 업계에 따르면 이달 들어 저축은행 79곳 가운데 최소 저축은행 6곳이 전세대출 상품 안내를 내렸다. 일부 저축은행들은 전화나 비대면 채널을 통한 대출을 멈추고, 현장 지점을 직접 방문해야만 대출 상담에 들어서는 방식으로 수요 조절에 나섰다.

앞서 금융당국은 저축은행에 가계대출 증가율을 지난해와 같은 수준인 21% 이내로 관리하라고 주문했다. 이번에 경영 유의사항 4건, 개선사항 1건을 통보받은 KB저축은행은 지난해 7월 출시한 가계신용대출 상품 한도를 임의로 올리고, 금리를 할인하는 방식으로 대출을 크게 늘린 점이 적발됐다. 금융당국은 특히 KB저축은행이 상품위원회의 검토를 거치지 않고 소관 본부장 전결로 대출 한도와 금리를 변경한 점을 지적했다. 당국은 이런 식으로 리스크 관리에 둔감한 대출 방식이 가계대출 건전성 악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평가했다.

저축은행들은 올해 초만 하더라도 중금리 대출을 강화해 가계대출을 크게 늘리겠다는 전략을 일제히 선보였다. 실제로 징계를 받을 정도로 공격적인 대출영업을 펼친 KB저축은행은 올해 이전보다 훨씬 좋은 실적을 올렸다. KB저축은행의 올해 1분기 순이익은 전년동기 대비 88.2% 증가한 64억원을 기록했다. 저축은행 업계 순위도 4대 금융지주계열 저축은행 가운데 선두로 올라섰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무분별한 대출영업 방식이 퍼지기 전에 KB저축은행을 대출 규제의 본보기로 삼아 제동을 걸면서, 저축은행 업계는 4분기 이후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금융개발원 관계자는 "저축은행들 대부분이 올해 상반기에 신용대출과 전세대출을 포함해 가계대출을 한꺼번에 늘린 탓에 이미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 한도가 거의 다 찼을 것"이라며 "시중에 아직 대출 수요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부 저축은행들은 연채 채권을 매각해 대출 잔액을 줄이는 방식으로 증가율을 관리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