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강화로 인한 은행권의 대출 죄기가 민간주택뿐 아니라 서민을 위한 공공주택 중도금 집단대출에도 불똥이 튀는 모양새다. 중도금 집단대출 협약 은행을 찾지 못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중도금 납부 기한을 미루는 일이 다반사고, 분양을 앞둔 곳에선 대출 은행 선정이 불투명하다고 안내하면서 청약 도전을 포기하겠다는 여론마저 일고 있다.

7일 은행권과 부동산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경기 화성능동 B-1, 화성봉담 A-2 구역 신혼희망타운에선 중도금 집단대출 협약 은행을 찾지 못해 납부 기한을 미루는 일이 발생했다. 능동의 경우 당초 6월 24일이던 1차 납부기한을 6개월가량 미루면서 최근 겨우 금융기관을 섭외하는 데 성공했으나, 당초 9월 3일에서 3개월 미뤄진 봉담은 아직 협약 은행을 찾지 못했다. 연기된 납부기한이 점점 다가오는 상황에서 수분양자들은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이다.

지난달 4일 서울 송파구 장지동 신규택지 지구인 성남 복정1지구 사전청약 접수처에서 시민들이 청약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LH 측은 은행권의 대출 규제를 이유로 들었다. LH 경기지역본부 측은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사유로 인해 이자후불제 중도금 대출은행 선정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며 “중도금 대금 납부 조건을 변경함을 안내해 드리니, 변경된 납부기한까지 고객님 자부담 등으로 분양대금을 납부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안내하고 있다.

곧 분양을 앞둔 지구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시흥장현 A-3 공공분양주택 등지에서는 향후 대출 협약이 어려울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예비청약자들 사이에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만일 청약 당첨 시 기한 내에 중도금 등을 치르지 못하면 향후 10년간 당첨 제한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에 해당 청약을 포기할 것이란 사례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LH 관계자는 “현재 중도금 집단대출의 주체인 은행(금융권)이 대출을 내줄지 말지 불투명한 상황이라는 것”이라면서 “공공주택기관으로서 최대한 중도금 집단대출을 해 드리고 싶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수분양자 자력으로 중도금을 마련해야 할 수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중도금 집단대출 불가’는 민간주택뿐 아니라, 서민 실수요자들이 찾는 공공주택에 마저 현실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공분을 사고 있다. 앞서 최근 분양에 나선 경기도 수원 힐스테이트 광교중앙역 더퍼스트의 시행사 측은 돌연 중도금 대출이 불가함을 공지하면서 논란이 됐고, 지난주 분양을 시작한 민간임대 수지구청역 롯데캐슬 하이브엘도 중도금 대출을 시행할 금융사를 찾지 못했다.

서울 시내 NH농협은행 대출 창구. /연합뉴스

은행들은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관리 강화 기조에 NH농협은행의 집단대출 취급 전면 중단으로 인한 ‘풍선효과’까지 더해지면서 물량이 큰 집단대출 시장에 들어가는 데 난색을 보이고 있다. 이른바 ‘박리다매’의 이점보다 저렴한 금리 제공·가계대출 폭증의 부담이 현재로선 더 크다고 보는 것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농협은행의 대출 중단 이후 실제로 타행으로 대출이 많이 몰렸다”며 “집단대출은 시차를 두고 서서히 움직이는 만큼 당장 지표에 집계되진 않지만, 이 부분에 대한 풍선효과도 조만간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과거에는 집단대출 사업장에 은행들이 열과 성을 다해 뛰어들었다면,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관리 강화 기조가 더해진 지금은 속도 조절이 더 급선무”라고 했다.

필수 대출을 막는다는 반발 등 부담이 잇따르는 만큼, 전면 집단대출 중단을 선언하는 은행은 쉽게 나오지 않을 것으로 은행권에선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연말이 될수록 은행들이 더욱 소극적으로 중도금 집단대출을 취급하는 식으로 대출을 조용히 옥죄나 갈 공산이 크다. 집단대출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은행 내 여신심사부 등 현업부서에서도 ‘새 집단대출은 부담스럽다’는 분위기가 짙다.

이 때문에 정치권과 은행권 등에서는 집단대출을 비롯한 전세자금 등을 총량 규제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가계부채 관리의 보완책으로 거론하고 있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그 방안이 금융위 차원에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지는 않다”면서도 “추가 보완책을 검토해 추석 이후에 발표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