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가상자산(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가 TV 광고에 나서면서 가상자산 관련 업체의 법적 지위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상 가상자산 투자 권유에 가까운 광고이지만, 가상자산의 법적 실체에 대한 규정이 없어 금융회사나 금융상품이 받는 엄격한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규제 사각지대’에 있는 가상화폐 거래소가 규제가 필요한 곳까지 진출하는 게 타당하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1위인 업비트는 지난달부터 TV광고를 시작했다. 업비트는 이 광고에서 가상화폐 투자를 바람, 바다, 산과 같은 자연의 가르침에 비유하며 ‘안전한 투자를 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유튜브 등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에 업로드 된 이 광고 영상에 대해 업비트는 ‘업비트 투자자 보호 센터 올바른 디지털 자산 투자 캠페인’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업비트의 이번 광고가 논란이 되고 있는 점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업비트가 독보적인 지위를 가진 1등 거래소라는 점이다. 윤창현 의원실(국민의힘)이 1일 공개한 자료에 다르면 8월 26일 기준 업비트의 거래량은 국내 전체 거래량의 83.3%에 달한다. 2등 회사 빗썸(11.7%)과 3등 코인원(3.1%) 등과 압도적인 격차다. 사실상 독과점적 지배력을 가진 회사가 대규모 광고 캠페인을 나서면서 가상자산 거래소가 TV 등 상업광고에 나서는 게 맞는 지 논란이 불붙은 것이다.
가상자산 거래소가 TV광고를 한 것은 업비트가 처음은 아니다. 앞서 빗썸과 코인원도 가상자산 붐이 일었었던 지난 2018년 TV광고를 선보인 바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시장점유율이 낮고, 국내 가상자산 거래 규모가 큰 편은 아니어서 당시 큰 논란이 일지는 않았다.
두 번째는 이번 광고가 사실상 가상자산에 대한 투자 권유 아니냐는 것이다. 업비트는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정보에 맞서 선제적으로 투자자를 보호하고, 현명한 투자 기준을 제시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된 것”이라며 이번 광고가 회사나 금융상품 홍보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가상자산 상품을 소개하고, 그것이 특정 업체의 투자자 보호 센터를 통해 안전하게 관리될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것은 사실상 투자 권유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한 국내 핀테크 업체 관계자는 “가상자산이 새로운 범주의 투자 상품이라는 점에서 보자면, 안전한 가상자산 투자 방법을 홍보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상의 투자 권유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압도적인 점유율을 갖고 있는 1위 업체가 투자자를 보호한다고 나서는 걸 지상파까지 포함한 대규모 광고로 홍보한다는 건 가상자산이 ‘양지의 투자 상품’이라는 걸 알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업비트의 광고를 계기로 가상자산 관련 업체들의 광고 마케팅이 많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구글이 지난 6월 가상화폐 거래소 광고 금지 조치를 해제하며 앞으로 유튜브 등을 통해 가상화폐 관련 광고는 더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가상자산이나 가상자산 거래소에 대한 광고는 규제를 받지 않는다. 반면 금융회사는 회사 자체 또는 금융상품과 관련된 광고를 할 때 금융당국이 규정한 ‘금융광고 규제 가이드라인’ 등 각종 업무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 또 전국은행연합회, 생명보험협회, 금융투자협회 등 업권 단위 조직이 정한 자율규제 기준도 준수해야 한다.
가상자산 거래소는 ‘금융소비자가 금융상품의 내용을 오해하지 아니하도록 명확하고 공정하게 전달하여야 한다’(금융투자회사의 영업 및 업무에 관한 규정 시행세칙)는 원칙에 따라 일반 금융회사가 지켜야 하는 여러 규제에서 빗겨나 있는 셈이다.
허위·과장 광고를 기본적으로 규제하는 표시광고법 정도가 가상자산 거래소가 받는 규제의 전부다. 방송광고의 경우 방송심의위원회에서 관리 감독을 하긴 하지만, 방송 광고에 적합한지를 심의하는 것에 그친다. 그리고 공정거래위원회가 관할하는 표시광고법 위반 여부는 사후적으로 신고 및 제소가 이뤄진 경우에만 공정위가 조사하는 방식이다.
결국 가상화폐거래소들이 홈페이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 온라인광고와 옥외광고를 통해 무분별한 허위 과장 광고를 하더라도 사후 규제만 가능할 뿐 사전 규제가 어려운 상황이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업비트 이슈는 ‘리딩방’ 등 유사투자자문 업체들이 ‘건전한 주식투자를 하는 방법’이라는 주제로 대규모 광고 캠페인을 전개하면서 업체명을 끼워 넣었다고 생각해 보면 된다”고 말했다.
가상자산의 법적 지위도 문제다. 한 금융회사 법무 담당 임원은 “가상자산이 금융투자 상품인지, 무형의 재화인지 등의 규정이 없다”며 “어떤 기준에서 광고 규제를 할지 판단 근거가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금융소비자 보호와도 동떨어진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당국은 25일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본격시행을 앞두고 지난 6월에는 새로운 금융광고 규제 가이드라인도 작성해 배포했다. 새 가이드라인을 통해 그동안 개별 금융업법에 있던 광고규제를 금소법으로 일원화하고, 상품광고뿐 아니라 업무광고에 대한 규제 방침도 넣었다. 업무광고란 특정 상품을 명시적으로 소개하지 않지만, 회사의 금융 서비스 및 거래로 간접 유인하는 광고를 의미한다. 금융업계 일각에서는 ‘업비트 광고의 경우 사실상 업무광고에 포함되는 거 아니냐’고 비판한다.
예탁결제원 등에 따르면 올해 4월 국내 가상화폐 하루 거래 규모는 약 24조원으로 유가증권 시장과 코스닥 시장을 합친 규모(약 19조원)를 넘어섰다. 금융당국이 가상화폐거래소를 규제하기 위해 올해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도 개정했지만, 이 법에도 광고 관련 규정은 없는 상황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가상화폐를 금융상품으로 볼 수 없고 금소법에도 적용할 수 없어 현재 광고 관련 규제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향후 가상화폐가 금융상품으로 완전히 인정받는다면 금소법을 통해 동일한 광고 규제를 받게될 것”이라고 밝혔다.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 관계자는 “올바른 투자 문화가 정착되길 희망하면서 기획한 광고일 뿐 투자를 권유하거나 상품을 소개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며 “방심위 심의를 거치고 (가상자산) 거래소 광고에 대한 규제 가이드라인이 있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