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선불상품권 사업인 머지포인트가 갑작스레 서비스를 사실상 중단하다시피 하면서 발생한 이른바 ‘머지포인트 사태’에 대해 정치권과 금융당국, 관련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수백억원에 달하는 피해 규모도 규모거니와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 등의 법제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머지포인트를 운영하는 머지플러스 앞. /연합뉴스

2018년 9월 시작된 머지포인트는 모바일 상품권을 구매하면 인터넷 쇼핑몰, 대형 마트, 편의점, 각종 프랜차이즈를 최대 20% 할인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다. 여러 업종에서 이용할 수 있다 해서 ‘머지(merge·결합)’란 명칭을 붙였다. 비슷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는 선불상품권 서비스보다 할인율이 높아 ‘뽐뿌’, ‘여성시대’ 등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입소문을 탔다.

선불 상품권 업체 차이머니의 경우 통상적인 할인율이 최대 3.5%이고, 일 단위로 바뀌는 30개 브랜드에서만 대규모 할인 혜택이 주어진다. 다날이 만든 페이코인은 편의점에서 15% 할인 혜택을 주지만, 결제 수단이 다날이 발생한 가상자산이다. 다날의 가상자산을 사들여야 이 서비스를 쓸 수 있는 구조다.

이와는 다르게 머지포인트를 쓰려면 5만원 이상 단위로 판매하는 상품권을 구매해야 했다. 처음에는 5만원 단위였는데, 재작년에는 10만원 작년 하반기부터는 20만원 또는 50만원 단위로도 포인트를 판매했다. 10만원어치를 쓸 수 있는 포인트가 든 상품권을 8만원에 사는 식이다. 할인율이 일반적인 선불상품권 업체보다 월등히 높았지만, 별다른 수익원이 없어 2020년까지 서비스를 운용했던 머지홀딩스(현재는 머지플러스라는 다른 회사로 서비스 이관)는 136억원 순손실을 봤고, 부채도 321억원에 달했다.

/머지플러스

급기야 금감원이 전자금융법 위반 소지가 있는지 실태조사에 나서고, 몇몇 유통업체들이 제휴 관계를 끊으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몇몇 영세 식당을 남기고 서비스를 모두 중단했다.

금감원은 머지포인트를 운영하는 머지플러스가 선불전자지급수단 발행업자(선불업자)에 해당되는 데 등록을 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현행 전자금융거래법은 선불충전금 발행 잔액이 30억원을 넘고, 충전금을 2개 이상 업종에서 사용할 수 있다면 선불업자로 본다. 이렇게 되자 많게는 백만원 단위로 저장한 포인트를 그나마 남아있는 영세 식당에서 소진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드는 ‘머지 런(merge run)’이 발생했다.

지난 2006년 영국 선불판매업체 페어파크 운영 중단 당시 돈을 날린 피해자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해외에서 이렇게 선불상품권 업체가 갑작스레 서비스를 중단하고, 소비자가 예치금을 찾아가지 못한 사례로는 지난 2006년 영국 유통업체 페어파크(Farepak)가 있다. 이 회사는 크리스마스 용품이나 상품권을 크리스마스 몇 달 전에 선구매하고, 대금을 납입하는 대신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는 ‘크리스마스 절약 클럽’ 서비스를 운영해왔다.

페어파크 사태는 일종의 연쇄부도였다. 시작은 같은 서비스를 운영하는 ‘패밀리 햄퍼스’라는 회사가 2006년 2월 부도를 낸 것이었다. 돈줄이 마른 유통회사들이 페어파크를 운영하는 EHR(European Home Retail)에 대금 지급을 미리 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따라 자금 압박을 받게 된 EHR은 7월 은행으로부터 융통되지 않아 페어파크 서비스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페어파크가 가입자들에게 환불할 의무가 없었고, 이를 강제할 규정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11만2000명에 달하는 페어파크 가입자들이 모두 피해를 봤다. 이들은 몇 년 뒤 납입금의 절반만 돌려받을 수 있었다.

영국 법개정위원회(Law Commission)은 2016년 발간한 보고서에서 “유통업체의 선불금 지급 불능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는 유통업체의 부도보다 불공평한 관행 때문에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또 “소비자들에게 정보가 제공되지 않아 소비자들이 본인이 사들인 선불상품권이 휴짓조각이 된다는 사실에 격렬하게 반응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가입자들이 선불사업자에 대해 가진 채권에 대한 변제 순위를 좀 더 선순위로 조정하고, 페어파크 등의 업체에 대해서는 소비자가 미리 계약한 물품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2020년 독일 대표 핀테크 업체 와이어카드는 대규모 분식회계로 매출을 부풀렸다는 것이 적발됐다. /프랑크푸르트로이터연합뉴스

핀테크 산업에서의 사기는 좀 더 빈번하게 일어난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020년 독일 와이어카드 분식회계 사건이다. 이 회사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나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은행을 거치지 않고도 대금을 결제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다. 페이팔과 유사하다. 원래 포르노와 도박사이트 등 음지에서 알음알음 쓰이던 서비스였는데, 2002년 KPMG 컨설턴트였던 마르쿠스 브라운 전 최고경영자(CEO)가 합류하면서 급성장했다.

2004년부터 2018년까지 매출은 50배, 영업이익은 70배 폭증했다. 2018년 독일 주가지수 닥스(DAX)30 지수에서 코메르츠방크를 대체했고, 독일 금융주 중 시가총액이 가장 컸다. 승승장구하던 와이어카드는 지난해 6월 매출 가운데 상당수가 계열사 간 가공 거래를 통해 꾸며진 것이 드러나면서 갑작스레 무너지게 됐다. 재무제표에 기록된 현금도 실제로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더 큰 문제는 와이어카드의 시스템을 이용하는 모바일 금융 서비스도 영업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영국의 경우 가입자가 130만명에 달했던 간편결제 서비스 커브(Curve)를 비롯해 금융서비스 플랫폼 애나(Anna), 중저신용자 대부업체 포킷(Pockit), 대부업체 모스(Morses) 등 영향을 받는 업체는 업종을 가리지 않았다. 급기야 영국 금융감독청(FCA)이 나서 정상적인 거래가 가능하도록 조치하면서 이들 회사들의 영업이 정상화됐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회자되는 스타트업 사기나 부정 사건에서 핀테크 업체도 여럿 포함돼 있다. 지난 2008년 마이클 리버티가 창업한 모지도(Mozido)는 동남아시아, 인도, 아프리카 등에서 은행을 이용할 수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휴대폰 기반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비전을 내세워 큰 관심을 끌었다. 리버티는 3억1400만달러(3700억원)의 투자금을 모았고, 2014년 기업 가치는 23억달러(2조7000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2018년 매출이 허위로 꾸며진 것이었고, 투자금 가운데 상당액이 모지도의 자회사를 거쳐 리버티 개인 계좌로 빠져나갔다는 것이 드러났다.

P2P 대출(개인 간 대출) 스타트업 렌딩클럽의 경우 지난 2016년 공동 창업자인 르노 라플랑셰 최고경영자(CEO)가 규정에 따르지 않고 2200만달러(260억원)을 대출해 준 것이 적발돼 자리에서 물러났다. 렌딩클럽이 공표한 대출 심사 규정에 벗어나서 묻지마 대출을 해줬다는 얘기다. 라플랑셰 전 CEO는 실형을 살지는 않았지만, 20만달러의 벌금을 내고 향후 3년간 금융권 취업을 금지당했다.

국내에서도 가상자산과 관련된 사기가 최근 기승을 부리고 있다. 패션킹이란 회사는 자사 온라인 웹사이트에서 판매하는 가상 의류 아이템을 구매하고, 3~5일 뒤 다른 투자자들에게 되팔면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며 투자자들을 유인했다. 지난 7월 패션킹은 아이템을 되판 수익은 자체적으로 발행한 암호화폐로만 가지고 갈 수 있다고 공고했다. 해당 암호화폐 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했음은 물론이다.

결국 패션킹의 가상 자산에 투자한 사람들은 원금을 대부분 날리게 됐다. 지난해부터 몽키레전드, 드래곤스타, 호텔킹 등 가상 캐릭터나 아이템을 구매하면 대박을 낼 수 있다며 투자자를 모집한 뒤 거래를 정지시키는 등의 수법의 금융사기가 반복해서 발생하고 있다.

한편 고승범 금융위원장 내정자는 머지포인트 사태와 관련해 “디지털 환경에서 새롭게 등장한 소비자 보호 이슈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금융회사의 불완전판매 등으로 금융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한 관리・감독 및 제도정비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