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시중은행에 이어 제2금융권에도 신용대출 한도를 연소득 이내로 제한하라고 요청하면서 저축은행들이 대책 마련에 나섰다. 법정 대출 금리 상한선이 지난달부터 4%포인트(p) 낮아진 상황에서 전체 대출 한도마저 묶일 경우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저축은행중앙회는 금융당국 요청에 따라 신용대출 한도를 연소득 수준으로 줄이는 내용을 검토해 해당 공문을 각 저축은행에 발송할 예정이다. 저축은행중앙회 관계자는 "금융당국 요청으로 신용대출 한도를 축소하는 내용과 관련 가이드라인 등을 정리하고 있다"면서 "늦어도 내일까지 개별 저축은행에 전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2금융권 신용대출 한도는 연봉의 120~180% 수준이었다. 이 한도가 100% 수준으로 줄어들면 이전 각 저축은행은 신용대출 총액을 최소 20%에서 최대 절반 가까이 줄여야 한다. 저축은행들은 23일 오후 현재 중앙회에서 대출 축소 관련 공문은 아직 받지 못했지만, 개별 은행 차원에서 대출 축소에 따른 수익성 변화 같은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 수위권인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아직 중앙회에서 대출 축소 요청 관련 공문이 내려오지 않은 상황이지만, 대형 저축은행들은 연초부터 금융당국 가이드라인에 맞춰 대출 수위를 조절하고 있었다"며 "시중은행처럼 신용대출상품 판매를 전면적으로 중단하는 방안 대신 대출 심사에서 '컷오프(거절)' 기준을 높이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6월 말 기준 저축은행 총여신 잔액은 88조1349억원으로, 한 달 만에 3조235억원이 늘었다.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놓고 보면 저축은행업권에서 취급한 가계대출은 전년 대비 5조3000억원이 뛰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배 이상 빠른 속도다.
그러자 금융당국은 연초 시중은행에 가계대출 증가율을 연간 5∼6%로, 저축은행에 21% 이내로 억제하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그럼에도 좀처럼 가계대출 잔액이 줄지 않자 이번 달부터는 금융감독원이 주요 저축은행을 상대로 가계부채와 관련한 통계를 정리해 매주 한 차례씩 제출하라고 주문했다. 현재 저축은행들은 이 조치에 맞춰 금융당국에 매주 신규 지급 대출액과 건수를 포함해 고소득자 신용대출 비중,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비중을 보고하고 있다.
또 다른 저축은행 관계자는 이번 규제 강화에 대해 "저축은행은 시중은행과 달리 취급하는 상품 수가 적기 때문에 신용대출상품 판매 자체를 중단하기는 어렵다"며 "수익성을 유지하려면 대출 한도를 줄이는 방안과 롤오버(대출 기한 연장)를 중지하는 식으로 자금을 운용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주요 저축은행 대부분은 여신(與信) 금리를 조절하거나, 수신 규모를 줄이는 방안은 아직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대표적인 서민금융기관인 저축은행이 신용대출 심사를 대폭 강화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실수요자인 신용등급 6등급 이하 저(低)신용자들은 당분간 저축은행에서 대출을 받기가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고신용자 가운데 직장 재직기간이 1년 이하거나 이직이 잦아 시중은행 대출을 이용하기 어려운 신청자 역시 저축은행 신용대출 한도가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금융개발원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풍선효과 차단을 위해 대출 규제를 진행하는 것에는 공감하지만, 이미 지난 7월에 법정 대출 상한금리가 낮아진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대출 규제를 강화하면 저축은행은 수익성이나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고신용자를 상대로 한 중금리 대출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며 "실수요자 불편을 가중시키는 관치금융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