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인터넷전문은행 전성시대다.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들이 소매(리테일) 금융 시장을 중심으로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자산규모는 아직 시중은행에 못 미치지만, 비대면 서비스를 통해 금융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다. 대형 시중은행들은 인터넷은행들의 급성장에 위기감을 느끼며 디지털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인터넷은행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과 향후 시중은행의 대응 전략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수면 아래 거대 고래

작지 않았다. 덩치만 놓고 본다면 오히려 강했다. 지난 9일 유가증권 시장에 상장한 카카오뱅크가 금융지주 1위인 KB금융 시가총액을 훌쩍 넘어서면서 금융권에 충격을 줬다. 인터넷은행이 금융권의 ‘메기’를 넘어 ‘고래’가 됐다는 평가다. 케이뱅크도 올해 첫 분기 흑자를 달성하며 정상궤도로 진입했다. 다음 달 공식 출범하는 인터넷은행 3호인 토스뱅크도 낮은 금리를 앞세워 고객몰이에 나선다.

서정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인터넷은행이 편의성과 수수료 경쟁력으로 소비자 요구를 충족시키며 금융권 메기 이상의 역할을 했다”며 “카카오뱅크 시총 규모에서 볼 수 있듯이 인터넷은행은 시장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한 성공적 모델”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2017년 인터넷은행 출범 당시만 하더라도 금융권에선 인터넷은행에 대한 관심이 없고 지분 투자 수준에 머물렀다. 인터넷은행에 뛰어드는 기업들의 자본력이 부족했고, 은행업 경험이 없어 고객들의 외면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인터넷은행 서비스는 100% 모바일 앱으로 운영되며 오프라인 점포가 없다.

하지만 업계 예상과 달리 비대면 채널이 활성화된 지금은 오히려 점포가 없는 것이 강점이 됐다. 오프라인 점포가 없으면 판관비 등 비용을 줄이고 그만큼 상품경쟁력을 강화해 고객에게 혜택을 줄 수 있다. 인터넷은행은 이를 통해 시중은행 대비 높은 예금금리와 낮은 송금 수수료 등을 무기로 내세울 수 있었다.

◇ 카카오뱅크, 인건비 줄이는 대신 비대면 상품에 투자

인터넷은행 시장을 주도한 맏형은 카카오뱅크다. 우선 비대면 신용대출이 입소문을 타며 고객들을 끌어모았다. 스마트폰에서 앱 클릭 몇 번만으로 금리와 한도를 조회해서 대출을 받는 데까지 단 몇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카카오뱅크는 비용 효율성 측면에서 강점을 증명했다. 일반 은행과 비교해 점포·인력 유지비용이 거의 들지 않기 때문이다.

카카오뱅크 판교오피스./카카오뱅크 제공

지난해 기준으로 카카오뱅크의 판관비에서 인건비 비중은 46%를 기록했다. 이는 4대 시중은행 평균인 64%보다 적은 수치다. 대신 인프라 비용(IT시스템, 광고 등)은 24%로 시중은행 평균인 17%를 웃돌았다.

카카오뱅크는 시중은행과 비교해 인건비를 아끼면서, 이를 사업 인프라에 투자하며 수신상품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저금리 비대면 상품을 통해 전체 가계 신용대출 시장의 6% 수준까지 올라섰다.

카카오뱅크가 경쟁력 있는 비대면 시스템과 상품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마케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면 이처럼 빠른 성장세를 달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브랜드와 이모티콘 캐릭터, 카카오톡과 연계된 송금기능 등이 고객선호도에 영향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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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뱅크는 카카오톡을 활용해 계좌번호 없이 송금할 수 있는 간편송금 서비스를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했다. 또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를 마케팅에 활용하며 젊은 세대를 고객을 끌어모았다. 라이언 등 카카오 프렌즈가 새겨진 체크카드를 출시하면서 출시 1년 만에 체크카드 발급 수가 500만장을 넘겼다.

구경회 SK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카카오뱅크의 빠른 성장은 플랫폼 경쟁력을 보유한 카카오톡을 이용한 사업모델이기 때문”이라며 “설립 초기부터 빠른 증자와 적극적인 인프라 투자를 통해 외형을 확장하고 핵심 사업부문에 집중하는 전략을 펼쳤다”고 분석했다.

출범한 지 4년이 흐른 카카오뱅크는 지난 6월 말 기준 전체 이용자 1671만명을 확보했다. 계좌 개설 고객은 1671만명, 수신은 26조6259억원, 여신은 23조1265억원이다. 국내 주요 지방은행을 넘어서는 자산 규모다. 월간 활성 사용자(MAU)는 1403만명으로 국내 은행 앱 중 가장 많다.

카카오뱅크 공모주 일반 청약이 시작된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KB증권 여의도 영업점에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연합뉴스

시장은 이에 호응했다. 지난 9일 카카오뱅크는 상장 이틀 만에 시총 40조원을 돌파하며 9위로 올라섰다. 리딩 금융지주인 KB금융(22조원)과 신한금융(20조원)의 시총을 합친 것과 맞먹는 수준이다. 투자자들은 카카오뱅크가 단순한 금융주가 아닌 플랫폼주, 테크주라고 봤다.

구 연구원은 “카카오뱅크는 높은 성장률과 언택트 금융, 카카오톡이란 프리미엄으로 국내 은행주 역사상 가장 높은 가치를 받는 것이 적절하다”라고 평가했다.

◇ 케이뱅크, 업비트 업고 흑자전환… 토스뱅크 9월 출범

출범 후 대주주 적격성 문제로 1년 넘게 영업을 사실상 중단하는 등 어려웠던 KT 계열의 케이뱅크는 올해 대규모 유상증자를 하고, 2분기에 흑자 전환했다.

케이뱅크는 가상화폐거래소 업계 1위인 업비트와의 제휴전략이 ‘신의 한 수’로 평가받는다. 케이뱅크는 지난해 선제적으로 업비트와 손잡고 원화 입금 서비스를 시작했다. 연초부터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투자 열풍이 맞물리면서 여수신 증대 효과를 봤다.

케이뱅크 사옥 앞에 놓여진 새 CI/케이뱅크 제공

올해 6월 말 기준으로 케이뱅크의 여신과 수신은 각각 5조900억원, 11조290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 6개월 동안 2조1000억원, 7조5400억원씩 증가한 수치다. 올 상반기에만 이용자 수가 400만명 늘었고, 6월말 기준 고객 수는 619만명이다. 케이뱅크가 상반기 업비트로부터 받은 수수료는 172억5500만원 규모다.

그러나 최근 가상화폐 급등락이 심해지면서 장기적으로 거래소 제휴 사업 모델만을 가져가기에는 위험도가 높다. 정부도 거래소들을 대상으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거래소들은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에 따라 9월 24일까지 정부에 자금세탁방지 등 요건을 갖추고 신고하지 않으면 더는 영업을 할 수 없다.

서울 강남구 업비트 라운지의 전광판에 가상화폐 거래 상황이 표시돼 있다./연합뉴스

금융위원회가 지난 6월 15일부터 한 달 동안 가상화폐 거래소 25곳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진행한 결과 특금법 이행을 위한 신고 요건을 갖춘 거래소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업비트 등 은행 실명 계좌를 발급받은 4대 거래소도 안전하지 않은 것이다.

이에 케이뱅크는 올 하반기 대출상품 확대, 앱 개편, BC카드 등 KT 계열사들과 시너지 강화 등을 통해 서비스 자체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토스뱅크 내부 전경./토스뱅크 제공

오는 9월 출범하는 토스뱅크도 빠른 성장이 기대된다. 카카오톡과 연계된 카카오뱅크처럼 방대한 이용자를 확보한 토스 플랫폼을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토스 사용자는 2000만명을 돌파했고, MAU는 1100만명이다.

앞서 출범한 토스증권도 기존 토스 앱 사용자들을 흡수하며 출범 70여일 만에 신규 개설계좌가 300만개를 넘었다.

토스뱅크는 인터넷은행 후발주자인 만큼 공격적 영업이 예상된다. 토스는 토스뱅크 출범을 앞두고 고객 확보를 위해 송금 수수료도 없앴다. 출범 후에는 연 2.5% 금융권 최저 신용대출 상품을 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 중금리 대출 공략 강화… 기업금융 공략은 숙제

인터넷은행은 고객층 확대를 위해 중·저신용자를 대상으로 한 중금리 대출 서비스를 확장하고 있다. 새로운 자체 신용평가시스템(CSS)을 구축해 중금리대출 시장을 공략한다는 방침이다.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토스뱅크 등 인터넷은행 3사는 올해 중·저신용자 대상 신용대출 잔액을 지난해 말보다 2조5470억원가량 더 늘려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금융위원회에 제출했다. 또 모바일 앱으로 고객이 신청하고 나서 결과까지 확인하는 등 전 과정을 비대면으로 처리하는 주택담보대출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업계 일각에선 인터넷은행이 마냥 장밋빛이 지속할 수 없다는 전망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시중은행이 마이데이터 사업 등을 통해 디지털경쟁력을 빠르게 따라잡고 있다”며 “인터넷은행이 가진 상품 차별성이 사라질 경우 고객들이 흩어지고 거품도 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인터넷은행이 주력하는 소매금융 시장 공략만으로는 성장의 한계가 뚜렷하다는 의견도 있다. 향후 기업금융 분야에 진출할 경우 시중은행에 우위를 보일지 의문이란 게 일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서 선임연구위원은 “기업금융은 기본적으로 대면 비즈니스로, 금액도 많고 복잡한 정형화되지 않은 서비스”라며 “표준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터넷은행 모델과 다른 측면이 있어 소매금융과 달리 공략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도 “인터넷은행이 소비자 금융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었지만, 기업금융 시장에서는 아직 뚜렷한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