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받지 않는 1억원 이하 신용대출 한도를 연봉보다 적은 금액으로 제한하라고 은행권에 권고한 가운데, 만기 연장을 앞둔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짙어지고 있다.

은행권에선 '신규' 대출 증가세를 잡기 위한 조처인 만큼, '기존' 대출을 연장할 때 이런 권고 사항이 적용될 수는 없으리라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다. 다만 한도 유지 여부는 개별 은행이 판단할 몫이기 때문에 올 상반기처럼 '미사용 마이너스통장 감액' 등을 구실로 연봉 이내로 한도를 줄일 가능성 등은 여전히 남아 있다.

17일 금융당국과 은행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은행 여신 담당 임원들을 모아 현 DSR 규제 대상이 아닌 '1억원 이하 신용대출' 혹은 '전 규제지역의 6억원 이하 주택 구매 시 받는 신용대출'의 한도를 연봉의 2배 수준에서 1배 수준으로 낮추라고 권고했다. 구두 권고 형태이긴 하나 금감원에선 추후 협의를 통해 행정지도나 추가 규제까지 도입할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어 은행들은 따를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다.

대출 안내문이 붙어있는 서울 시내 한 금융기관 모습. /연합뉴스

통상 시중은행의 신용대출 한도는 현재 연 소득의 1.2~2배 수준이다. 신용대출의 일종인 마이너스통장의 경우 주요 시중은행들이 최대 5000만원으로 한도를 제한한 움직임이 올해 초에야 시작됐던 만큼, 연봉보다 많은 한도를 부여받은 기존 차주(대출 고객)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만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일부 차주들은 전전긍긍하는 분위기다. 기존 대출 만기 연장 시 '연봉 이하'란 조건이 즉시 적용된다면, 줄어든 한도만큼을 즉시 상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문의가 잇따르는 것이다.

은행권에선 만기 연장 시 일괄적으로 이런 조건이 적용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난 7월부터 적용된 'DSR 40%' 규제 때도 소급 적용은 되지 않았다"며 "차주들의 반발도 심할 것이고, 금융당국의 취지가 신규 대출 급증을 잡는 데 있는 것인 만큼 기존 대출을 줄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차주의 신용 상태가 변하는 것이 아닌 이상 한도가 깎이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다만 만기 연장 시 일부 사례에 한해 이런 규제의 영향이 미칠 수 있을 거란 의견도 있다. 대출 한도를 연봉 밑으로 깎을 것인지, 기존 한도를 유지할 것인지는 개별 은행 판단에 달렸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마이너스통장의 경우 미사용 시에는 한도가 줄 수 있다는 특약이 포함돼 있다"며 "올해 초 미사용 마이너스통장 감액 제도가 주요 시중은행들에서 속속 시행됐던 만큼, 비슷하게 연봉 이하로 한도를 줄일 가능성이 있다"라고 했다.

기존 대출보다 더 대출을 받거나, 다른 은행으로 갈아탈 때도 신규 대출로 취급돼 연봉 이내라는 새 기준이 적용될 전망이다.

조선DB

금감원의 이번 조처는 지난달부터 시행한 DSR 규제 강화에도 불구하고 가계대출 폭증세가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데 따른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가계대출 증가 폭이 월간 수치로는 역대 최대치인 9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달부터 1억원 이상 신용대출을 받은 고객이라면 연 소득에서 대출 원리금 상환액이 차지하는 비중이 40%를 넘을 수 없는데, 1억원 미만 신용대출자는 이르면 내년 7월부터나 DSR 40% 제한이 적용된다. 이 때문에 금감원은 1억원 미만 신용대출 고객을 중심으로 최근 대출이 많이 늘었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지속하는 대출 조이기에 소비자들의 불만은 극에 달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서민금융 실수요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그간 우대금리 인하, 최대한도 제한 등의 형태로 고소득·고신용자 대상 대출을 주로 겨냥해왔기 때문이다. "갚을 여력이 있는 차주들의 대출을 왜 자꾸 문제 삼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근 대출이 막힌 1금융권 고객군이 2금융권으로 이동하는 '풍선효과'도 뇌관으로 떠올라 설상가상이다. 지난달 2금융권 전체 가계대출은 올해 들어 두 번째로 큰 증가 폭을 보였다. 금융당국은 저축은행·여신전문금융사·보험사들에 가계대출 현황과 추이를 주 단위로 보고하라고 요구하는 등 2금융권의 가계대출 관리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데, 이번 조처로 풍선효과가 더 심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