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불법 대부업 관련 기사에 실제 달린 댓글이다. 불법 대출(사채) 피해자 관련한 댓글은 대체로 비슷하다. 절반 정도는 불법 대부업자들을 욕한다. 나머지 절반은 피해자를 비난한다.
셰익스피어의 1600년작 ‘베니스의 상인’에 악랄한 유태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 등장하듯, 대부업 역사는 자본주의보다 훨씬 오래됐다. 그동안 불법 대부업자들은 거부감을 줄이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돈 빌려줄 대상을 찾는 법을 연구해왔다. 그럴듯한 영어 이름, 귀여운 캐릭터가 등장하는 미디어 광고가 그 예다.
신용회복위원회 관계자는 “1990년대 후반 일본계 대형 대부업체들이 국내 시장에 들어오면서 ‘쓰면 안 될 것 같다’는 꺼림칙함을 줄이는 데 상당한 자본을 투자했다”며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서 처음 돈을 빌리면 수십만원 단위까지 무이자, 30일 동안 무이자 같은 프로모션을 전국적으로 벌인 것도 이 무렵”이라고 말했다.
◇ 20대 이용자 열에 일곱은 불법 사채인 줄 알고도 쓴다
10대를 노린 대리입금 역시 거부감을 없애기 위해 처음은 단돈 1만원에서 시작한다. 이 액수는 점차 3만~10만원으로 불어난다. 거래를 오래 할수록 빌릴 수 있는 금액을 늘어나는 사채와 유사하다.
채무자가 한 번에 관계를 끊을 수 없도록 꾸준히, 갈수록 더 많은 자금을 공급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 관계는 ‘지급 불능’에 빠질 때까지 이어진다.
돈을 융통해주는 불법 대부업자들 사이에서 금과옥조처럼 내려오는 지침은 다음과 같다.
* 돈 달라고 사정하는 사람에게는 절대 돈을 빌려주지 마라.* 한 번에 털어먹을 생각일랑 하지 마라.* 영원한 손님이란 없다. 끊어야 할 시점에 과감히 끊어라.* 한 번 끊은 손님은 쳐다보지도 마라. 설령 다른 업자를 찾아가도 아쉬워 마라.
20대를 노린 외제 중고차 대출 역시 기본적인 영업 전략은 전형적인 중고차 거래 공식을 따른다. 처음부터 수천만원을 빌리려는 20대 미취업자 수요는 드물다. 이들은 인터넷에 ‘중고차, 500만원대부터 있습니다’는 글을 올려놓고서 20대 희생양을 일단 끌어들인다.
일단 유인에 성공하면, 불법 대부업의 지침을 얹는다. ‘조금 더 대출을 받으면 차 급(級)이 높아지고, 여유 생활비까지 챙겨 가실 수 있다’고 꼬드기는 식이다. ‘앞으로 외제차 끄실 텐데, 이 정도 빚은 타시면서 갚아 나가면 됩니다’ 같은 말로 안심을 시키는 것도 거부감을 줄이려는 술수다.
그러나 불법 대부업체를 찾는 모든 채무자가 다 달콤한 꼬임에 넘어가 사채에 발을 들이는 것은 아니다. 20대 중에서도 ‘먹고 살기 어려워서’, 사채에 손대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빌리는 경우가 더 많다. 열에 일곱이 그렇다. 생활비나 학자금 대출에 허덕이는 청년들은 급한 마음에 사채에 손을 댄다.
강원도 OO발전소에서 특수경비 보안직으로 일하던 20대 남성 김모씨는 생활비가 부족해 인터넷 카페에서 ‘메리트’라는 닉네임을 쓰는 사채업자에게 대출을 받았다. 30만원을 빌리면 일주일 후 40만원으로 갚고, 상환하지 못하면 하루 2만원씩 이자가 더 붙는 조건이었다. 김씨는 그렇게 사채업자로부터 2020년 4월 2일부터 7월 25일까지 여러 차례 급전을 빌렸다. 김씨가 받은 원금은 총 180만원으로, 그간 김씨는 총 239만원을 냈다. 빌린 돈보다 59만원을 더 냈지만, 정작 원금은 줄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사채업자가 회사 전화로 수시로 전화를 해 빚 독촉을 하는 바람에 김씨는 회사도 그만두었다.
경기도에서 택배 회사에 다니던 20대 남성 안모씨는 생활비가 부족해 대출 직거래사이트를 찾았다. ‘OO파이낸스’ A실장이라는 사람은 초기에는 소액 대출만 가능하다면서 안씨에게 주민등록등초본, 가족관계증명서, 인감증명서를 보내달라고 했다. 안씨는 일단 30만원을 대출받아 일주일 후 50만원으로 상환했다. 그러자 A실장은 ‘이 정도 금액을 갚기 어려워 보이지 않으니, 빌리는 금액을 늘리면 생활이 나아지지 않겠느냐’고 권장했다. 안씨는 다시 50만원을 대출받아 일주일 후 80만원을 상환하는 급전을 추가로 끌어 썼다. 그러나 안씨 수입으로 일주일 만에 80만원을 마련하기는 벅찼다. 안씨는 매주 이자를 내며 상환 기한을 연장했지만, A실장은 상환이 안 된다는 이유로 안씨 부모에게 전화로 협박해 이자를 받아냈다.
한국대부금융협회 소비자보호센터를 찾아온 실제 20대 불법 사금융 피해자 사례다. 이후 김씨와 안씨는 센터가 주도한 채무조정에서 사채업자에게 각각 86만원, 133만원을 지불했다.
서민금융연구원이 2016∼2018년 대부업·불법 사금융 이용 경험이 있는 3792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20대 응답자 10명 중 7명(71%)은 주거비 등 기초생활비를 목적으로 제 3금융권을 찾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마지막 제도권 금융’으로 불리는 3금융권은 한국대부금융협회에 등록된 공식 대부업체를 말한다. 대체로 시중은행이나, 2금융권에 해당하는 카드사, 저축은행에서 대출을 거절당한 사람들이 찾는다. 그러나 이들 20대 가운데 절반(50.4%, 2018년 기준) 이상은 3금융권에서조차 대출에 실패했다.
3금융권에서 퇴짜를 맞은 이들은 불법 사채의 늪으로 밀려난다. 지난해 기준 3금융권에서 대출을 거부당한 후 불법 대부업자를 찾은 이들 가운데 73.5%는 ‘불법 사금융이라는 것을 알고도 돈을 빌렸다’고 답했다. 서민금융연구원은 지난해 1년 동안 3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지 못해 불법 사금융으로 이동한 금융 소비자 수가 8만9000∼13만명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전문가들은 올해 법정 최고금리가 연 24%에서 연 20%로 낮아지면서, 불법 대부업자를 찾는 20대 청년들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난 10월 한국대부금융협회가 주최한 ‘제11회 소비자금융 콘퍼런스’에서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대부금융시장의 최고금리가 연 20%로 낮아질 경우, 자산 100억원 이상의 대부업체를 기준으로 3조원의 초과 수요가 발생한다”며 “3조원의 초과 수요를 대부업 이용자 1인당 평균 대출액(524만원)으로 환산하면 약 57만명이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초과 수요란 대출할 재원보다 대출받고 싶어하는 금액이 더 많다는 얘기다. 초과 수요가 발생할 경우 대부업체는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높은 사람들 위주로 선별해서 대출에 나설 수밖에 없다. 자금 회수율이 떨어지는 저신용자는 그만큼 대출을 받기가 어려워진다.
◇ 연리 20% 넘으면 무효… 피해 보았다면 1332로 신고
불법 사채의 늪에 한번 빠진 사람들은 헤어날 방법이 없을까. 아니다. 먼저 미등록 대부업 자체가 불법이다. 한국대부금융협회에 등록하지 않은 미등록 대부업체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특히 미등록 대부업자가 최고이자율(20%) 제한 규정을 위반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을 가중 처벌한다.
연 20%가 넘는 이자를 지급한 경우, 초과한 이자는 원금에 충당되고 원금을 넘어선 이자는 다시 돌려받을 수도 있다. 3금융권 대부업체뿐 아니라 불법 사채에도 적용되는 규정이다. 대부업자가 이를 초과해 받은 이자는 법적으로 무효다. 이때 이미 지불한 이자는 원금을 갚은 것으로 보며, 갚은 이자가 원금을 초과하게 된다면 민사상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을 통해 반환을 요구할 수도 있다.
한국대부금융협회는 지난 2015년부터 수사기관과 피해자를 대상으로 정당한 이자율 계산을 지원하고 있다. 불법사채 피해를 당한 경우 대부거래 상환내역과 계약관련 서류를 준비해 대부금융협회 소비자보호센터로 연락하면 상담을 통해 구제해준다.
가족을 건드리거나, 회사로 찾아오는 불법 추심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면 경찰의 힘을 빌리는 방법이 가장 적절하다. 채권추심행위를 규제하는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채무자에 대한 폭행이나 협박, 반복적으로 야간에 채무자를 방문하거나 전화·문자발송으로 불안감을 유발하는 행위, ‘돈을 더 빌리거나 보증을 세우라’는 강요, 채무자 직장에서 채무자 외의 사람에게 채무 내용을 공공연히 알리는 행위, 채무자 신용정보, 개인정보를 누설하는 행위는 처벌대상이다.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 관계자는 “불법사금융으로 피해를 보았다면 금융감독원(1332) 또는 시 불법사금융신고센터나 관할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으로 문의하는 방법이 가장 확실하다”며 “3금융권에서 대출에 실패했을 경우, 정부에서 마련한 햇살론이나 미소금융 같은 합법적 구제책을 먼저 신청해보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절박한 입장에서 덥석 움켜잡은 불법 대부업자의 손길은 위기 탈출이 아니라, 살인적인 이자율의 늪에 빠지는 썩은 동아줄이라는 뜻이다.
정 돈이 필요한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서민금융진흥원(서금원)을 찾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서금원은 금융위원회 산하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으로, 대출을 포함해 서민 금융에 관한 전반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상담은 직접 센터를 찾지 않고 1397 콜센터나 모바일 앱을 통해 편리하게 진행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만약 이미 불법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렸거나, 불법 추심으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라면 정부가 지난해 3월부터 시작한 ‘채무자대리인 제도’를 이용하라고 추천했다. 이 제도는 불법사금융 피해자를 대리해 대한법률구조공단 변호사가 채권자를 직접 상대하고, 필요할 경우 소송까지 대리해 준다. 비용은 정부(금융위원회)가 지원한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불법 대부나 사채로 피해를 봤을 경우, 금감원 불법사금융 피해신고센터(1332)로 신고하면 수사 의뢰 및 법률구조공단 변호사를 연계해 지원해준다”며 “불법 대부업체인지 아닌지 의심스러울 경우에는 금융소비자 정보포털에서 제도권 금융회사와 등록대부업체 여부를 검색해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