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준비생 A씨는 취업 시즌을 앞두고 이래저래 나가는 돈이 늘던 차에 우연히 지하철에서 ‘휴대폰 개통 시 즉시 100만원 지급’이라고 적힌 명함 광고를 봤다. A씨가 광고에 적힌 카카오톡 아이디로 연락하자 ‘정해준 휴대폰 가게에 가서 최신형 휴대폰을 개통해 유심칩과 함께 가져오면 그 자리에서 현금을 주겠다’고 했다. A씨가 할부원금 159만9000원짜리 새 스마트폰을 새로 개통해 광고에 적힌 주소로 퀵서비스를 보내자, 바로 선이자를 뗀 100만원이 계좌로 들어왔다. A씨는 ‘160만원짜리 스마트폰이니, 기껏해야 160만원만 갚으면 되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이 안일함이 곧 화를 불렀다. 바로 A씨 앞으로 휴대폰 요금이 7만9900원씩 청구됐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첫 달 통신비 영수증에는 국제 로밍 서비스 요금이 50만원 넘게 찍혔다. 다음 달에는 ‘해당 전화번호가 범죄에 사용됐다’며 경찰 조사까지 받았다.

‘삼포 세대(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청년 세대)’의 경제적 어려움을 악용하는 불법 변종 대출에 청년들이 시달리고 있다. 20대가 가장 많이 쓰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불법 대출 광고 수십만 건이 난무한다. 이달 기준 20대가 가장 많이 쓰는 SNS 인스타그램에서 ‘내구제’ 해시태그(#)를 입력하면 게시물 35만개가 나온다.

모르는 사람은 좀처럼 검색하지 않을 내구제라는 단어는 ‘나를 구제해주는 대출’ 혹은 ‘스스로를 대출로 구제하자’는 뜻이다. 그러나 그 의미와 달리 내구제는 자신을 스스로 구덩이로 몰아넣는 족쇄가 되는 경우가 훨씬 잦다.

SNS에서 모집 중인 내구제 대출 안내문

◇ 진화하는 불법 ‘내구제’ 대출… 소액이라고 얕봤다가는 날벼락

대부업계에서는 내구제라는 말이 2010년 후반부터 쓰인 것으로 추정한다. 초기 내구제 대출은 카드깡이나 폰테크 형태에 가까웠다. 대출 희망자가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같은 고가 전자제품을 할부로 사서 넘기면, 대부업자가 물건값 일부를 수수료로 떼고 현금으로 입금해주는 식이다.

A씨처럼 150만원대 최신형 스마트폰을 개통하면 내구제 대출 업자는 A씨 계좌로 현금 100만원을 입금해준다. 대신 A씨는 단말기 값(160만원)을 24개월 할부로 낸다. 요금제도 월 8만원짜리를 최소 6개월간 써야 한다. 100만원을 빌리는 대신 최소 208만원을 내는 셈이다. 여기에 단말기 약정 구매 할부 이자와 통신요금 부가세(10%)는 별도다. 모두 합치면 6개월간 이자는 120%에 달한다. 100만원이 없어 내구제 대출에 손을 댄 A씨가 6개월 뒤 200만원을 갚기란 쉽지 않다. 결국 A씨는 또 다른 대출에 손을 벌려야 하는 처지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법률구조공단 관계자는 “초기에는 불법 대부업계에서는 내구제 대출을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을 끌어들인다’는 뜻에서 ‘컴배트(바퀴를 유인해 죽이는 약)’라는 은어로 불렀다”며 “업자에게 넘긴 스마트폰은 대포폰으로 바뀌어 보이스피싱 같은 범죄에 쓰이고, 이 때문에 명의도용으로 벌금형을 받는 청년들도 상당수”라고 말했다.

2021등록금반환운동본부 주최로 열린 ‘코로나 대학생 피해사례 증언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대학생이 겪고있는 어려움을 표현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내구제 대출은 명백한 불법이다. 내구제 대출 업자처럼 신청자에게 물품을 사도록 유도하고, 이를 매입한 경우 여신전문금융업법이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같은 법령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타인 명의로 휴대전화를 개통하고 매입·유통하는 행위 역시 현행법상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있다.

그러나 내구제 대출은 현행법에 아랑곳하지 않고 슬금슬금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제 내구제 대출 업체들은 SNS 뿐 아니라 어플리케이션(앱)까지 동원해 대상을 적극적으로 물색한다. 이들에게 중고거래 앱이나 커뮤니티 중고 장터는 사냥터다. 최근 불법사금융 피해자 사례를 종합해보면 일부 내구제 대출 업자들은 ‘급전(急錢)이 필요해 판다’는 글이 올라오면, 해당 작성자의 지난 게시물과 작성자 아이디를 모아 구글링 하는 방식으로 실명과 학력, 주소, 전화번호 같은 개인 신상 정보를 추려냈다.

지난해에는 정수기, 스타일러, 라텍스침대, 안마의자 같은 고가 렌털 제품을 이용한 내구제 대출이 나타났다. 방식은 스마트폰 내구제 대출과 비슷하다. 대출 희망자가 렌털 업체에서 가전제품을 빌리면, 불법 대부업자는 인터넷에 이 제품을 시세보다 싸게 올려 최대한 빠르게 처분한다. 매달 렌털 업체에 내야 할 요금은 대출 희망자가 이자 대신 지불한다.

이 과정에서 대출 희망자가 렌털 요금을 연체하면 엉뚱한 피해자를 낳기도 한다. 불법 대부업자가 올린 물건을 산 구매자다. 대출 희망자가 이자 대신 내야 할 렌털 요금을 계속 연체하면 렌털 업체는 제품 반납을 요구하거나, 연체한 채권을 추심업체에 넘긴다. 렌털제품인 줄도 모르고 그저 시세보다 싸서 제품을 구매한 구매자까지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의미다.

불법사금융 피해자들에 대한 무료 법률 상담을 지원하는 법무법인 바른미래의 이영석 변호사는 “대출자들이 렌털 요금을 미납해도 렌털 업체는 대출자를 고소하기 때문에 내구제 대출 업자들은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다”며 “최근에는 인터넷 서비스나 선불유심을 이용한 내구제 대출도 등장했다”고 말했다.

◇ 정부 사칭하고 새내기 사업주 노려… 연이율 ‘3500%’ 받기도

“귀하께서는 당행과 정부협약에 의한 정부 지원 특례보증 긴급 대출 신청대상이지만, 현재까지 신청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됩니다. 이 상품은 민생경제 회복을 위해 청년 소상공인을 위해 마련한 한시적 지원 상품으로 정부의 특별보증재단에서 지원됩니다. 지원기한은 ○월△△일 16시까지니 아래 내용을 확인하신 후 신청접수 바랍니다.”
지난해 대학가에서 가정식 식당을 차린 30살 A씨는 최근 한 대형금융그룹 B은행으로부터 ‘함께 이겨내요! 코로나19’라는 제목으로 대출안내 문자를 받았다. B은행는 최대 2억3000만원까지 2.8% 고정 금리로 대출이 가능하다는 파격적인 대출 조건을 내세웠다. A씨는 B은행 대출을 받기 위해 전달받은 인터넷주소(URL)로 들어가 앱을 설치했다. 신분 확인 차원에서 본인 명의 계좌번호도 알려주고, 그 계좌와 연동된 체크카드 사진도 찍어 보냈다.
그러나 A씨가 연락했던 B은행은 없었다. A씨 계좌는 스미싱(문자를 이용한 금융사기) 조직에 넘어가 다른 피해자 돈을 빼돌리는 대포통장으로 전락했다.

한 번도 장사를 해보지 않은 ‘젊은 사장님’은 불법 대부업자뿐 아니라, 금융 사기 조직의 가장 만만한 먹잇감이다. 일반 직장인이라면 받아도 거들떠보지도 않을 문구에도, 금융 거래나 대출 경험이 없는 신규 사업자들은 설마 하며 속아 넘어간다.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소상공인 매출이 급감하면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신규 사업자를 노린 금융 사기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달 법정 최고금리가 연 24%에서 20%로 인하되면서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개점 초기에는 추가 대출이 어려울 수 있다’는 신규 사업자의 불안심리를 이용한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5일 정부의 긴급자금대출이나 특별보증대출을 빙자한 보이스피싱 사기 문자메시지 발송이 급격히 늘어나자 이례적으로 ‘소비자 경보(주의)’ 조치를 발령했다.

신규 사업자를 노린 금융 사기 조직은 ‘정부특례보증대출 지원’을 사칭하고 KB국민, 신한 같은 유명 시중은행 상호를 그대로 사용해 오인을 유도한다. ‘금융위원회’, ‘신용보증재단’, 국민행복기금’, ‘버팀목 자금 플러스’ 같은 문구로 현혹하기도 한다. 대출 신청기한을 임박하게 기재하고, ‘대출이자를 모두 정부에서 지원한다’는 문구로 소상공인 심리를 교묘하게 자극하는 한층 진화된 수법을 쓰는 경우도 있다.

금융소비자연맹 관계자는 “공공기관인 ‘서민금융진흥원’과 유사한 ‘서민금융원’ 같은 명칭을 사용하거나, ‘자금 지원 대출’, ‘저금리 대환대출’이란 단어로 금융기관인 척을 한다”며 “물정을 모르는 신규 사업자 관련 전화번호 데이터베이스를 따로 모아 보이스피싱 업체끼리 공유하는 사례도 나타났다”고 말했다.

일러스트=정다운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나듯, 신규 사업자들은 금융 사기 조직의 유혹을 넘겨도 ‘제도권 대출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돈을 빌려주겠다’는 불법 대부 업체에 발목을 잡히기 쉽다.

이들 불법 대부업자는 코로나 상황에서 급전이 필요한 사업주에게 접근한 뒤, 법정 최고 이자율(20%)을 훌쩍 넘긴 수백 퍼센트(%)대 ‘이자 폭탄’을 떠안긴다. 주로 대출 직거래 사이트에 ‘돈이 필요하다’며 글을 올리는 사업주가 대상이다.

대출 직거래 사이트란 급전이 필요한 이들이 올린 글을 대부업체가 보고 연락해 대출이 성사되는 일종의 대부 중개 사이트다. 오프라인보다 대출 자격이 느슨하고, 심사 문턱도 낮아서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신용도 낮은 사업주들도 쉽게 돈을 빌릴 수 있다. 유명 대출 직거래 사이트에는 ‘대출을 원한다’는 개인 금융 소비자나 사업주들의 글이 하루에 300개 넘게 올라온다.

그러나 이곳에서 연결해주는 대부업체 중에는 법정금리보다 훨씬 높은 고리를 받는 경우가 많다. 무등록 불법 사금융 업체도 부지기수다.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에는 이런 식으로 소액을 빌렸다가 이자 더미를 떠안는 사업주들의 피해 접수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한 해 서울시에서만 376건이 접수됐다. 예를 들면 300만원을 빌려주면서 일주일 뒤 500만원(연이율 3476%)을 갚으라고 하거나, 100만원을 빌려주면서 10일 뒤 150만원(1825%)을 갚으라는 식이다.

한국금융투자자보호재단 관계자는 “광고에 적힌 안내 번호로 전화를 유도하고 나서 ‘정확한 상담에 필요하다’며 개인 주민등록번호와 소득, 업장명과 부채 현황 같은 개인정보를 요구해 2차 피해를 양산하는 사례도 나타났다”며 “불법 사금융 업체 광고는 엄연히 법적 제재 대상이지만, 광고를 적발해 실제 처벌하기까지 과정이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