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현재 대한민국에 등록된 대부업체 수는 약 8500여개. 이 가운데 자산이 100억원을 넘는 곳은 고작 8%에 그친다. 나머지는 수억원을 돌려가며 이자놀이를 하는 영세업체가 대부분이다. 2011년만 하더라도 44%였던 합법적인 최고 금리가 올해 20% 수준으로 반 토막 나자, 이 영세 대부업체들 가운데 일부는 법정이자보다 높은 이자를 갈취하는 악덕대부업체로 전락했다. 아예 등록조차 하지 않은 무등록 대부업체들도 부지기수다. 이들은 사업 확장이라는 명목 아래 불법대출 대상을 경제적 기반이 있는 중장년층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10대와 20대로 넓히고 있다. 미래 금융 소비자의 주축이 돼야 할 10대와 20대가 눈먼 돈을 끌어 쓰다 신용 불량자나 개인 파산자로 전락하는 위태로운 현실을 조명해봤다. [편집자주]
학교 친구들과 같이 해외축구 팬 블로그를 운영하던 고등학생 A군은 밤새 외국 경기를 보다가 나이를 확인하지 않아도 가입을 시켜주는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에 빠졌다. 처음에는 매주 3만원 남짓한 용돈만 쓰다가, 자금이 떨어지자 A군은 자주 찾던 인터넷 커뮤니티에 ‘댈입(대리입금) 구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10만원 남짓한 돈에 붙은 이율은 일주일 기준 50%(연이율 2600%). 3년 동안 도박 빚은 3700만원으로 불었다. 결국 이 빚은 A군의 부모님이 갚았다.
B양은 분기마다 새 노래를 내놓는 인기 아이돌의 사진집과 CD, 응원봉과 같은 굿즈(goods·상품)를 모조리 사고 싶었지만 용돈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러자 주변 친구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댈입’을 구하라고 권유했다. ‘여러 명에게 2~10만원씩을 빌리고 돈이 생기는 대로 갚으면 된다’는 조언이 이어졌다. B양은 한번도 본 적 없고, 이름도 모르는 3명에게 5만원씩 15만원을 빌렸다. 그러나 1시간 단위로 늘어나는 이자를 감당할 수는 없었다. 돌려막기를 시도했지만, 결국 400만원의 빚을 졌다.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생활하는 20대 대학생 C씨. 생활비가 부족해 편의점 아르바이트 임금이 들어올 때까지 3일만 대리입금으로 10만원을 빌리기로 했다. 그러나 임금이 하루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36시간을 연체했다. C씨는 3일치 이자를 포함해 총 14만원을 넣었지만, 대리입급 업체는 ‘36시간에 해당하는 지각비 5만원(시간당 1500원)을 더 입금하라’고 요구했다. C씨가 이 요구를 무시했다. 그러자 해당 업체는 한밤 중에 협박 전화를 하고, C씨 학교 앞에 찾아와 협박하며 불법 추심 행위를 저질렀다.
이제 학교마저 고리대금업의 안전지대가 아니다. 대학교는 물론 중·고등학교 역시 별반 다를 바 없다. 이른바 ‘댈입’이라 불리는 불법사금융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10대와 20대 사이에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처럼 10~20대가 자주 쓰는 SNS에서 ‘대리입금’ 혹은 ‘댈입’으로 검색하면 돈을 빌려주는 사람과 대리입금을 찾는 사람의 포스트가 수백개 넘게 나타난다. 누가 누구에게 돈을 얼마나 빌려 주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거래는 돈을 찾는 개인과 돈을 빌려주는 개인끼리 SNS 메시지를 통해 은밀하게 이뤄진다.
최근에는 은행 실명 계좌를 이용하지 않고 코인거래소를 이용하는 사례도 많다. 정상적인 금융 거래를 넘어 빌려주는 사람과 빌리는 사람 둘만이 거래를 진행하기 때문에 금융당국 차원에서 실태를 파악하기도 어렵다. 피해가 발생해도 적발하거나, 법적 제재를 가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 대리입금 이용해 10만원 빌렸더니 3일 만에 22만원
‘급전(急錢)이 필요한 곳에 대신 돈을 지불해준다’는 대리입금은 주로 소액(1만~10만원) 대출에 악용된다. 콘서트 티켓이나 연예인 굿즈, 게임 아이템 등을 구입하기 위해 돈이 필요한 청소년과 급전이 필요한 대학생을 유인해 1만~10만원 수준의 소액을 2~7일간 단기로 빌려주는 식이다.
최근에는 ‘첫 이용자는 3만원까지만 빌려 드립니다’는 암묵적인 규칙도 생겼다. 그만큼 제때 돈을 못 갚는 이용자가 많다는 방증이다. 남자 이용자는 ‘원금 회수가 어렵다’며 받지 않는 경우도 많다. 3만원만 빌려주고, 여학생만 상대해도 될만큼 수요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돈을 못 받을 경우, 주변인에게 채무 사실을 알릴 수 있도록 실제로 활동 중인 친구가 많은 계정에 한해 대리입금 신청을 받는 치밀함마저 엿보인다.
금융개발원 관계자는 “대부업 이외 개인 간의 금전 거래에 대해서는 연간이자를 규정하는 ‘이자제한법’에 따라 대차 원금이 10만원 미만일 경우에는 이자 제한을 적용하지 않는다”며 “이런 법률의 사각지대를 악용해 미성년자나 대학생을 상대로 사실상의 사채업을 영유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대리입금 업자들은 이 과정에서 연 이자율 기준 1000%가 넘는 이자를 ‘수고비’ 명목으로 받아 챙긴다. 여러 번 거래를 해도 최소 대출이자는 최소 하루 기준 30%부터 시작한다. 만약 갚기로 약속한 시간을 일분이라도 넘기면 ‘지각비(연체료)’ 명목으로 한시간당 이자를 500원에서 1만원까지 붙인다. 대출액수가 크면 이자와 연체료도 커진다. 10만원을 하루동안 빌리면 13만원으로, 3일 동안 빌린다면 21만9700원으로 갚아야 한다. 어지간한 사채업자도 울고 갈 폭리다.
대리입금 업체는 연체에 대비해 급전을 빌리려는 본인과 부모, SNS 계정에서 가장 교류가 많았던 친구나 친·인척 등의 개인정보를 따로 받는다. 이전에 연체했던 이용자는 ‘다시는 늦게 입금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고 대출을 해준다. 약정한 돈과 이자를 갚지 못하면 SNS를 통해 주변인에게 모욕적인 개인정보를 퍼뜨리고, 관련 정보를 팔아 치운다.
개인정보 공개는 보이스피싱이나 명의 도용 같은 2차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작지 않다. 충청북도지방경찰청 관계자는 “금융관련 법과 이자제한법을 적용하기 애매한 부분이 있지만 연체 시 개인정보를 공개하는 등의 행위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심지어 용돈 벌이 목적으로 청소년이 대리입금업을 하면서 같은 학교 친구 돈을 고리대금 형태로 갈취하는 학교폭력 형태가 나타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 수입차 꿈꾸다 신용불량자로… 100배 불법 대출도
요즘 SNS에서 범람하는 중고차 할부대출 광고 문구다. 저(低)신용자에 속하는 신용등급 7~8급, 20세 청년이 전액 할부 대출을 받아 고급 외제차를 인수했다는 식이다.
광고를 올린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해당 청년의 신분증과 1억원을 호가하는 외제차 앞에서 웃고 있는 신분증 속 청년 사진이 올라와 있다. 이들이 인수한 차량은 독일차 가운데서도 비싸기로 유명한 P사 모델, 드라마 속에서 유명 연예인이 타고 나와 인기를 끈 이탈리아 M사 모델 등이다. 이들 신차 출고가는 1억원에 육박한다.
광고를 올린 중고차 딜러의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같은 방식으로 중고차를 매매했다는 글이 즐비했다. 1990년 후반에서 2000년대에 태어나 이제 막 운전면허를 딴 청년들이 비슷한 전액 할부 방식으로 중고 외제차를 구입한 사례가 7월 이후 스무 건을 넘겼다. 해당 딜러는 ‘군(軍) 미필자도 전액 할부로 중고 외제차를 구입할 수 있다’며 ‘상위 모델을 고르면 생활비 등으로 쓸 수 있는 여유자금까지 생긴다’고 대출을 부추겼다.
서울 가양모터리움 김소형 대표는 “흔히 ‘작업대출’로 불리는 사기”라며 “말이 중고 외제차 딜러지, 사채 브로커인 사람들이 대출 희망자 명의로 가짜 재직증명서나 급여명세서를 만들어 금융사 심사를 속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또 “갓 성인이 된 이들에게 임대차계약서나 사업자등록증를 위·변조해 1억원에 달하는 전세자금이나 사업자금 같은 고액 대출을 알선해주고, 이 돈을 중고차 판매에 유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모두 사문서 위조를 통한 사기고, 범죄다. 소득·채무 확인 의무가 면제되는 합법적인 대출 한도액이 100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불법적인 방법으로 100배에 가까운 대출을 받아내는 셈이다.
이렇게 불법 대출로 동원해 겨우 산 외제 중고차의 운명은 대체로 비루하다. 3개월 이상 할부금을 갚지 못하면 차는 즉시 압류된다. 애초에 1억원에 육박하는 돈을 불법 대출로 빌려 차를 산 사람이 정상적인 상환 능력이 있을 가능성은 극히 낮다. 압류된 차량은 더 싼 값으로 다시 중고차 시장에 흘러 들어온다. 판매상은 이전보다 저렴한 가격에 이 차를 매입해 다시 사갈 희생양을 찾거나, 제 3자에게 팔아 재차 이익을 취한다.
한 중고차 업계 관계자는 “대규모 중고차 판매단지에 가보면 간판은 ‘중고차 판매’라고 달아놓고, 안에서는 ‘자체 할부시스템을 적용합니다’라는 식으로 대부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20대는 차를 사본 경험이 없을 뿐 아니라, 허영심이 큰 편이라 40~50대보다 대출 유도에 쉽게 빠지는 편”이라고 귀띔했다.
자동차 딜러가 받을 수 있는 캐피탈 상품 판매 수수료는 현행법 상 5%가 상한선이다. 하지만 ‘설정대행 수수료’처럼 실제 소비자가 납부할 의무가 없는 수수료를 멋대로 추가해 얼마든지 판매금을 부풀릴 수 있다. 차값이 비싸지면 그만큼 대출을 더 받아야 하니, 딜러가 가져갈 이자도 늘어난다.
일부 업자들은 신용등급이 6~7급인 사회 초년생에게 ‘대출 한도조회를 해주겠다’는 명목으로 수차례 신용을 조회한 뒤 신용도가 떨어지면 고금리로 사채를 쓰도록 유도한다. 단기간에 여러 대부업체가 일제히 신용조회를 하면 조회만 해도 신용도가 떨어진다는 점을 악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금융당국 차원에서 단속하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 페이스북 페이지처럼 SNS를 통해 영업하는 방식이라 판매자는 가명을 쓴다. 업체명 역시 공개하지 않는다. 영업은 대포폰이나 카카오톡, 텔레그램 상담을 통해 이뤄진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6월 중고차 대출 사기가 증가하자 소비자 경보 ‘주의’를 발령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실제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중고차 매매 계약을 맺고 대출금을 받아 챙긴 다음, 다른 차량을 넘기거나 해당 차량을 인도하지 않는 식으로 사기 수법이 대담해지고 있다”며 “사기범들은 주로 금융 경험이 적은 사회초년생과 취업준비생을 타깃으로 삼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