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카드사에서 기업과 제휴를 맺고 혜택을 제공하는 '상업자 표시 신용카드(PLCC·Private Label Credit Card)'를 너 나 할 것 없이 내놓는 가운데, PLCC가 너무 흔해지면서 카드사의 출혈경쟁이 심해지고 있다. 각 카드사의 혜택 또한 비슷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브랜드에만 혜택을 집중한 프리미엄 효과는 사라지고, 상표만 앞세운 일종의 브랜드 광고판 수준으로 전락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여러 회사들의 실명이 나오기에 조심스러워 침묵하고 있었지만, 비슷한 오해가 가끔 있기에 바로 잡겠다"며 "PLCC를 만드는 브랜드들은 카드 안내에 적혀 있는 디폴트 혜택을 더 넣고 말고가 아니라, 데이터 분석에 의해 뒷단의 선별적 혜택 수준을 도약시키는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현대카드는 그동안 PLCC 시장을 주도적으로 개척해왔다. 현대카드는 2015년 이마트 전용 카드를 시작으로 배달의민족, 코스트코, 대한항공 같은 14개 업체와 PLCC를 출시했다. 현대카드와 손잡은 특정 브랜드에 충성도가 높은 금융 소비자들이 몰려들자 올해 들어 PLCC를 따로 내놓지 않던 다른 카드사들은 연달아 이 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PLCC 인기가 높아지고 판이 커지자, 카드사는 다른데 같은 브랜드를 사용하는 PLCC도 나타났다.
정 부회장의 글 역시 지난달 현대카드가 선보인 'SK브로드밴드 현대카드'와 이달 14일 롯데카드에서 출시한 '오션 에디션(OCEAN Edition) 카드'가 시장에서 비교되기 시작하자 올라왔다.
이 두 카드는 카드사는 다르지만, 주로 제공하는 혜택은 거의 비슷하다. 롯데카드가 내건 '오션'이라는 이름은 SK브로드밴드의 영화·해외 드라마 무제한 서비스를 말한다. 두 카드 모두 SK브로드밴드가 운영하는 IPTV(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인 비티비(Btv) 요금을 자동이체하면 월정액 상품 한 종류를 무료로 제공한다. 사실상 이름만 다른 같은 카드다.
두 카드는 세부 혜택에서 다소 차이가 난다. 롯데카드는 롯데백화점·롯데마트·롯데슈퍼·롯데홈쇼핑·롯데ON 등 롯데 계열사 5곳에서 이용 금액의 5%를 할인해준다. 반면 현대카드는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카드 이용자의 개별 소비 패턴을 고려한 맞춤형 서비스 '3층 시스템'을 제공한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SK브로드밴드와 현대카드는 이번 SK브로드밴드 현대카드를 기점으로 포괄적인 분야에서 사업 제휴를 추진하기로 했다"며 "현대카드를 이용하는 법인이나 개인사업자에 SK브로드밴드가 제공하는 보안·인터넷 혜택을 탑재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회장이 말하는 '디폴트 혜택'에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기업과 제휴해 '뒷단의 선별적 혜택'을 제공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롯데카드는 SK브로드밴드 PLCC 뿐 아니라 KB국민카드와도 인터넷 쇼핑몰 '위메프' PLCC를 놓고 자리다툼을 하고 있다. 롯데카드는 지난해 위메프와 제휴를 맺고 '위메프페이 롯데카드'를 선보였다. 뒤이어 지난달에는 KB국민카드가 같은 이름으로 위메프 PLCC를 내놨다. 두 상품은 연회비와 기본혜택이 같다. 전월 실적과 상관없이 위메프에서 위메프페이로 결제 시 최대 5만점까지 2% 포인트를 적립해준다. 이 두 카드는 이름까지 같은 '위메프페이 카드'다. 실물 카드 디자인과 주로 사용한 색깔까지 유사해 카드사 이름을 제외하면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일부 전문가들은 카드사들이 줄지어 PLCC를 내놓기 시작할 때부터 이런 '유사 브랜드 카드' 범람이 예견됐다고 지적했다. PLCC는 특정한 하나의 브랜드에만 혜택이 집중되기 때문에 불리하다는 지적이 있지만, 특정 브랜드에 충성도가 높은 소비자들이 몰리기 때문에 카드 회사 입장에서는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제휴 기업 팬을 자처하는 충성 소비자층은 독점 제휴에 따른 집중적인 혜택과 특화한 실물 카드 디자인에 쉽게 끌리고, 지속적으로 혜택을 이용하기 위해 카드 소비를 늘릴 가능성이 크다. 장기적으로 휴면카드가 될 확률이 낮고, 카드당 평균 결제금액도 일반 카드 가입자보다 높아질 여력이 크다는 의미다.
그러나 올해 들어 엇비슷한 카드들이 이름만 바꿔 나오기 시작하자 이미 일각에서는 'PLCC와 일반 제휴카드 간에 큰 차이를 느낄 수 없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신용카드학회 관계자는 "PLCC는 카드사와 제휴 기업이 협약을 맺고, 카드 설계단계부터 마케팅 단계까지 함께 논의하고 비용을 같이 부담해 만든 카드라 애초에 다른 제휴 카드들과 비슷한 혜택 대신 제휴 기업에 특화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며 "이렇게 같은 소비자를 대상으로 혜택도 동일한 PLCC가 나오면 카드사끼리 출혈 경쟁이 한층 심해질 뿐 아니라, 소비자에게 차별화한 혜택을 주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카드업계에서는 카드사들이 PLCC를 남발하면 제휴 기업과 단독으로 카드를 출시하고 싶을 경우, 카드사가 해당 기업보다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구조로 바뀔 수 있다고 우려했다. 카드사 비용 부담이 늘어나면, 카드사는 연회비 형태로 소비자에게 이 비용을 떠넘길 수 있다. 카드사가 더 큰 비용을 들인 만큼 혜택을 줄일 가능성도 있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주요 카드사 가운데 한 곳은 올해 하반기에만 PLCC를 10개 정도 내놓을 계획을 갖고 있다고 들었다"며 "이미 브랜드 파워가 강한 기업과 PLCC를 출시하기 위해 마케팅 비용을 과도하게 부담하는 사례도 있지만, 카드사 입장에서는 PLCC만큼 새로운 이용자를 확보하기 적절한 마케팅을 수단을 찾지 못한 게 현실"이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