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업계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강화하는 가운데, 일부 소형 저축은행들은 여전히 방만하고 비상식적인 운영을 해 금융당국 제재를 무더기로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기관이 본업과 전혀 상관없는 인터넷 쇼핑몰을 함께 운영한다거나, 금융당국의 검사를 방해하기 위해 하드디스크를 은폐하는 등 위법 수법과 수위도 다양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현행 솜방망이 규제 대신, 저축은행의 높아진 위상에 맞춰 위법 행위를 저질렀을 때 엄벌을 가할 수 있는 강도 높은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계 금융자본인 오릭스가 운영하는 OSB저축은행은 2018년부터 지난달까지 3년 이상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다 금융당국에 적발됐다. 상호저축은행법 제11조에 따르면 상호저축은행은 영리를 목적으로 정해진 업무만 해야 한다. OSB저축은행은 업무상 전자상거래업을 영위할 수 없는데도, 조직적으로 3년간 쇼핑몰을 운영해 기관주의 조치를 받았다.
금융감독원 저축은행검사국 관계자는 "검사 결과 OSB저축은행이 취득한 라이센스를 가지고 할부금융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이 드러났다"며 "다른 법인명 쇼핑몰 업체랑 계약을 맺고 할부금융업을 진행하면서 사업 확장을 위해 무리를 했고, 법적으로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할부금융은 고가의 소비재를 사들일 때 할부금융사가 구매자금을 대주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국내에서는 주로 자동차를 살 때 캐피탈이나 저축은행, 시중은행을 통해 할부금융을 이용한다. OSB저축은행은 막대한 초기 자본 투자가 필요하고 이미 주요 캐피탈사가 장악해 진입 장벽이 높은 자동차 할부금융 대신 서핑보드나 자전거 같은 레포츠 용품과 고가의 소형 가전 할부 시장을 공략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OSB저축은행이 이 과정에서 인터넷 쇼핑몰을 통한 불법 프로모션에 나섰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OSB저축은행은 푸른2저축은행이 전신이다. 2010년 일본계 오릭스 코퍼레이션이 인수한 후 2011년 '오릭스저축은행'으로 사명을 변경했고, 2013년 스마일저축은행을 자산·부채 이전(P&A) 방식으로 인수하면서 'OSB저축은행'으로 다시 한번 간판을 바꿔 달았다. OSB저축은행은 앞서 2019년 개별 차주에 대한 신용공여 한도를 초과해 금융당국으로부터 과징금 4억4700만원을 부과받았다. 정해진 기준을 벗어나 은행 멋대로 대출 한도를 설정했다는 의미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감사위원회와 준법감시인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OSB 저축은행이 3년 내내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는 동안 이 사실을 몰랐을 리가 없다"며 "금융기관으로서 당연히 갖춰야 할 준법감시 체계가 소홀해 심각한 관리 부실이 벌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올해 4월에는 강원도에 근거를 둔 CK저축은행이 최대주주 특수관계자인 임원에게 보수규정이나 성과평가를 넘어선 임금을 지급하고, '묻지마' 법인카드 사용을 용인해 경영유의 조치를 받았다.
이전 이름이 강원저축은행이었던 CK저축은행의 최대 주주는 지분율 41.99%를 보유한 주식회사 청광이다. 2대 주주는 계열사인 청광종합건설로 36.24%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CK저축은행 3대 주주는 청광종합건설의 허숭 대표다. 허숭 대표는 장남 허찬 청광종합건설 이사와 CK저축은행 기타비상무이사직을 겸임하고 있다. CK저축은행의 비상근이사는 허숭 대표와 허찬 이사 둘 뿐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CK저축은행이 기타비상무이사에게 법인카드를 주고, 이 카드를 정당한 이유 없이 개인적인 용도로 백만원 이상 쓰도록 묵인했다"며 "상호저축은행법 제18조 2항을 위반한 혐의로 임원 주의를 줬다"고 말했다.
CK저축은행은 기타비상무이사의 법인카드 사적 사용을 눈감아줬을 뿐 아니라, 이사로 위촉한다는 별도의 계약서도 쓰지 않고 수억원에 달하는 보수를 임의로 준 것으로 드러났다. 저축은행중앙회 표준규정 지배구조 내부규범 제34조 및 제35조에 의하면 임원에 대한 평가는 정량적인 평가와 정성적인 평가를 병행하고, 평가결과는 임원의 임면과 보수지급에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CK저축은행은 2017년 7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기타비상무이사의 업무 범위와 수행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월 수백만원씩 총 수억원을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우려했던 대로 일부 지방 저축은행이 최대주주와 그 관계자의 사금고(私金庫)였음을 증명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 밖에도 ES저축은행은 최근 불법행위가 무더기로 적발돼 신규 유가증권(주식) 담보 대출 업무 영업정지 6개월, 과징금 91억원·과태료 7400만원 부과, 전(前) 대표이사 해임 권고 등의 제재를 받았다. 이는 2011년 저축은행 부실 사태로 상호저축은행들이 무더기로 영업정지 통보를 받은 이래 가장 무거운 징계다.
ES저축은행은 전신인 라이브저축은행 시절 신용공여한도 초과 취급 혐의를 조사하기 위해 금융감독원 검사반이 검사에 들어가자 대표이사 하드디스크를 교체하는 등 검사 업무 수행을 거부·방해·기피해 큰 논란을 빚었다.
당시 라이브저축은행 시절 경영진은 제3자에게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6600만원을 요구한 것으로도 드러났다. 현행법상 저축은행은 정당한 이유 없이 대주주 등에게 재산상 이익을 제공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
금융감독원 제재 현황을 보면 2017년 5800만원 수준이었던 저축은행 관련 과징금과 과태료는 2019년 83억2500만원으로 140배 넘게 증가했다. 제재가 급증하는 가운데 일부 저축은행업계 관계자들은 여전히 비슷한 문제들이 반복해 나오는 현실에 피로감을 나타내고 있다. 일각에서는 저축은행의 여수신 규모가 갈수록 늘어나는 만큼, 그에 맞게 규제 강도를 높여 부실 운영을 경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예금보험공사 관계자는 "자산규모가 수조원 단위를 넘어가는 일부 저축은행을 제외하면 수천억원 단위 저축은행들은 중소금융기관이라는 본래 특성을 살려 방만한 자산 확대보다 짜임새 있는 경영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그런 측면에서 금감원의 관리감독도 더 면밀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