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 대선 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 진영에서 청년들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1000만원가량을 빌려주자는 기본대출 관련 행보를 공식화했다. 경기도와 국회의원 20명이 공동 주최 형식으로 토론회를 열고 연 2.8% 금리로 1000만원을 빌려주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법안도 국회에 상정했다. 지역별 신용보증재단을 지방자치단체장이 재량껏 기본대출에 활용할 수 있게끔 하자는 내용이다. 대선 경선을 앞두고 기본대출을 실시하겠다는 행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달 20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대한민국 성장과 공정을 위한 국회 포럼 출범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따라 기본대출을 둘러싼 논쟁도 치열해질 것으로 관측된다. 쟁점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대출 규모다. 만 19~34세 청년은 2019년 현재 1019만명(내국인 기준)에 달한다. 또 11~18세 청년은 1세 평균 47만명이다. 이들이 모두 1000만원씩 기본대출을 받는다면 당장 101조원, 해마다 4조7000억원 소요된다.

두 번째는 저신용자 비중이 높고, 그 결과 대규모 부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대부업체의 평균 연체율은 2020년 상반기 8.0%에 달한다. 세 번째는 지역신보 재원을 은행과 금융기관이 댄다는 것이다. 기본대출에 소요되는 막대한 재원을 은행이 부담하게 되는 양상이다.

◇이재명 조직勢 과시 행사 열고 기본대출 방안 공개

경기도는 2일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경기도 기본금융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는 김병욱·김영진·문정복·민형배·서영석·소병훈·윤후덕·조정식·임종성·안민석·송재호 등 이재명계로 분류되는 국회의원 41명이 공동 주최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재명 지사의 간판 정책인 기본대출을 공개하는 데 의미를 부여하겠다는 포석이다.

이 지사는 당초 토론회에 직접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경기도 의전팀 직원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불참하게 됐다. 이 지사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경기도는 국민 누구나 소득, 자산, 신용도 등 조건에 상관없이 일정 소액을 적정 저리로 장기간 이용할 수 있는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2일 경기도와 국회의원 41명이 공동 주최한 기본금융 국회 토론회가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열렸다. /경기도

경기도는 이날 연 2.8%로 누구나 1000만원씩 은행 등에서 빌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 기본대출 제도를 공개했다. 저신용자에게 연 2.8% 금리로 빌려주기 위해 뒤따르는 신용보강은 지역신용보증재단 등 공적보증기관이 맡는다. 원리금 상환 연체, 상환불능에 따른 대위변제(정부 기관 등이 대신 갚는 것) 등에 뒤따르는 비용도 공적보증기관의 몫이다.

공적보증기관에 필요한 재원은 은행 등 금융기관이 낸다. 한국은행이 금융기관에 연 0.25% 초저금리로 자금을 빌려주면, 이에 다른 금융비용 절감분을 공적보증기관에 출연하는 구조다. 사실상 한은의 발권력을 이용하겠다는 의미인 셈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이재명계 중진인 김병욱 의원(정무위원회 여당 간사)은 관련 법안 개정안을 발의했다. 기본대출의 대상을 만 19~34세로 좁히고, 지방자치단체장이 지역신용보증재단을 재량껏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골자다. 지역신보로 기본대출 재원을 금융기관과 정부가 각출할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도 담겼다. 부실대출 추정치 등 세부 사항에서는 경기도와 약간 다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경기도는 경기도 지역신용보증재단을 활용해 기본대출을 도입할 수 있게 된다.

◇기본대출 부실율 0.89%? 저축은행도 부실 비율 3.6%

이재명 지사의 기본대출 프로그램에 대해 금융업계 안팎에서는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대출 규모는 다른 정책금융 프로그램과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큰데, 부실 비율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A씨는 “그 비용을 결국 은행들이 각출하는 지역신보가 감당해야 한다는 게 더 문제”라며 “부실 대출을 만든 뒤, 그 구멍을 은행 돈으로 메우라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병욱 의원이 기본대출 법안 발의에 맞춰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 지사 측은 기본대출이 도입되면 첫 해 20조원 대출이 발생하고 이후 2년차 10조원, 3년차 5조원을 거쳐 4년차 이후부터 2조5000억원만 감당하면 되는 것으로 가정했다. 도입 첫 해 200만명→2년차 100만명→3년차 50만명 →4년차 이후 25만명이 프로그램을 이용할 것으로 본 셈이다.

주요 저축은행의 부실여신 비율.

하지만 2019년 말 현재 19~34세 인구는 1019만명에 달한다. 경기도만 261만명이다. 그리고 11~18세 인구는 평균 47만명이다. 기본대출 프로그램은 신용등급 심사를 하지 않는 데다, 금융기관 이용이 어려운 저신용자가 몰리게 되는 구조다. 사실상 ‘첫 단추’인 대출 의향자부터 지나치게 적게 추산하는 셈이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연체나 부실 발생 비율에 대한 가정도 비현실적이라고 본다. 경기도는 돈을 빌린 사람이 상환여력이 없어 결국 신용보증재단 등이 대신 갚아줘야 하는 비율인 대위변제율을 0.85%로 가정했다. 그런데 1분기 현재 SBI저축은행·오케이저축은행·페퍼저축은행·웰컴저축은행 등 4대 저축은행에서 6개월 이상 연체가 발생했거나 아예 손실로 회계 처리한 부실여신 비율은 3.6%에 달한다. 3개월 이상 연체한 고정 이상 여신 비율은 4.5%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그나마 저축은행은 어느 정도 신용심사를 하니 부실여신 비율을 억제하는 것”이라며 “상환여력이 없는 사람까지 모두 대출할 경우 부실여신 비율은 껑충 뛸 것”이라고 말했다. 저축은행보다 신용도가 낮은 금융소비자를 상대하는 대부업체의 경우 2020년 상반기 현재 연체율이 8.0%로 집계됐다.

기본대출 시행시 부실대출이 얼마나 발생할 지에 대해서는 이재명 캠프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부실대출이 얼마나 발생할 것인지에 따라 ‘비용'이 달라지기 때문에, 비용 추정치에 따라 기본대출 프로그램 규모와 재원 마련 방식이 달라진다. 김병욱 의원의 경우 1개월 이상 연체율을 10%로 가정했다. “현재 햇살론이 가정하는 연체율을 준용한 것”이라고 김병욱 의원실 관계자는 가정했다.

◇한은 발권력까지 활용

시중 은행 관계자들은 이재명 지사가 도입하는 기본대출이 결국 은행 부담으로 돌아올 것으로 보고 있다. 먼저 지역신보 출연금이 큰 폭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 C씨는 “지역신보의 주된 업무는 소상공인 대출 보증인데, 개인 대출도 보증해주면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금이 필요하다”며 “결국 금융회사들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 D씨는 “서민금융법이 개정되면서 은행들이 연 1000억원씩을 햇살론 보증 기금으로 내는데, 기본대출까지 도입되면 영업이익 중 상당액은 출연금으로 나가게 될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경기도는 지난 2월 기본대출과 관련해 시중은행에 문의하는 공문을 보냈었다. 이 공문에서 경기도는 “경기도 중점 추진사항임을 고려하시어 예외 운용 적용 등 가급적 전방위적인 검토와 의견을 요청 드립니다”라며 사실상 기본대출 도입을 요구했다. 또 지원 대상과 지원 한도, 대출 방식과 기간, 금리 등 기본대출 상품의 모든 항목별로 표를 만들어 은행이 ‘가능 여부’를 표기하도록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출 금액, 연체율 등을 산출할 수 있는 근거가 아무 것도 없는데 무작정 은행에게 하라고 강제하는 식이라 황당하다”며 “당장 기본대출을 도입하면 가계 대출이 폭증할 텐데, 가계대출을 억제하라는 금융 당국의 정책 기조와 충돌하는 것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한 관계자는 말했다.

서울 태평로2가 한국은행. /한국은행

한은의 발권력을 이용하겠다는 계획안도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경기도는 한은이 금융기관에 연 0.25% 금리로 정책자금을 공급한 뒤, 정책자금 금리와 시장에서의 조달금리 차액만큼을 ‘보조금’ 지급으로 간주한다는 계획안을 내놓았다. 그 대가로 금융기관은 기본대출 재원을 내놓으면 된다는 얘기다.

한 전직 한은 고위 임원은 “결국 대통령 공약 시행을 위해 한은의 발권력을 이용하겠다는 것”이라며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임원은 “지난 2016년 박근혜 정부 시절 한은이 산업은행 채권을 사들여 구조조정 자금을 공급하자는 ‘한국형 양적완화’를 새누리당이 내놓자 민주당이 강경하게 반대하던 걸 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한국은행은 16조1000억원 규모로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프로그램을 운영하지만 그 가운데 13조원은 코로나19 피해기업 지원 용도다.

경기연구원은 2일 경기도가 연 기본금융 토론회에서 한국은행이 연 0.25%의 저금리 자금을 금융회사에 공급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차익을 재원으로 삼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경기연구원

연 0.25%의 저리 자금 공급이 실효성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요구불예금 등 저원가성 예금의 금리는 0%에 가까운 데다, 저금리로 인해 그 비율도 큰 폭으로 뛰었기 때문이다. “별 실효성 없는 방안을 내놓고 은행에 몇 천억원씩 내라는 것”이라는 말이 금융권에서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