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강서구 부산신항에서 컨테이너선들이 수출 화물을 싣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백신 보급으로 전 세계 소비 심리가 회복되며, 올해 한국경제는 ‘자산 주도’에서 ‘수출 주도’로 국면 전환이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수출을 주도할 대표 산업으로 반도체와 2차전지를 선정했다. 석유화학, 철강, 조선, 금융 등 가치주 업종도 주목할 분야로 거론했다.

조선비즈가 국내 거시경제 전문가 2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올해 가장 전망이 밝은 산업으로 한국의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를 선정했다. 반도체는 5점 만점을 기준으로 평균 4.7점을 받았다.

그래픽=박길우

이어 ▲2차전지(4.3점) ▲석유화학(4점) ▲철강 및 금속(4점) ▲IT(3.9점) ▲금융(3.9점) ▲조선(3.8점) ▲완성차(3.8점) ▲콘텐츠(3.6점) ▲기계(3.6점) ▲바이오(3.6점) ▲건설(3.6점) ▲자동차부품(3.5점) ▲섬유의료(3.3점) ▲식품 (3.2점) 순으로 전망이 밝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도체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은 통계로 증명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반도체 수출액이 10개월 연속 증가하며 전체 수출액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올해 3~4월 반도체 수출액은 2018년 11월 이후 처음으로 2개월 연속 90억달러(약 10조1700억원)를 넘어섰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내부 모습. /조선DB

◇ 코로나로 직격탄 맞았던 석유화학·조선업의 부활

반도체와 함께 2차전지와 석유화학 업종에도 훈풍이 불고 있다. 전기차(EV) 시장이 열리면서 2차 전지는 최근 8개월 연속 수출 호조를 보였다. 지난달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28.0% 오른 7억3000만달러(약 8240억원)를 달성했다. 석유화학도 지난달 46억6000만달러(약 5조2600억원) 수출을 기록하며 역대 4월 중 최대치를 달성했다.

한범호 신한은행 투자자산전략부 부부장은 “반도체 부족 심화로 ‘D램’ 가격이 상승하고 글로벌 공급망이 재구축이 되는 과정에서 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000660) 등 국내 기업들의 역할이 기대된다”며 “석유화학의 정유 부분도 선진국을 중심으로 항공 수요가 늘면서 내년까지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지난해 12월 7일 석유화학 업체가 밀집해 있는 전남 여수시 여수국가산업단지에서 하얀 수증기가 올라오고 있다. /연합뉴스

오랜 침체기를 견뎌온 조선업도 성장 기회를 잡을 수 있을 전망이다. 조선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달 말까지 국내 조선업계 매출액 상위 3사의 수주금액은 145억1000만달러(약 16조4000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21억7000만달러)보다 7배 증가했다. 해운운임 상승 등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다양한 선종에 걸쳐 문의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박종훈 SC제일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반도체, 석유화학, 조선 산업 모두 경기 회복으로 인한 수요 증가 덕에 당분간 유망하다”라며 “자동차의 경우 반도체 공급문제가 해결되면 하반기부터 수출 증가가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수출 5500~6000억달러, 경제성장률 3.53% 전망

이번 설문 응답자의 70%는 올해 한국 수출 전망치를 5500~6000억달러(약 621조~677조원)로, 나머지 30%는 6000억달러 이상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5100억달러(약 576조원)를 넘어 3년 만에 역대 최대치(6049억달러)를 넘어설지 기대가 모인다.

수출 훈풍 효과로 경제성장률 예상치도 상향 조정됐다. 설문 응답자의 올해 국내 경제성장률 전망치 평균은 3.53%로 나타났다. 13명이 3.5% 이상, 8명이 3.5% 미만으로 예측했다. 정부가 최근 목표치로 잡은 4%대보다는 하회하는 수준이지만, 올해 초 예상치였던 3% 초반대보다 높은 수치다. 설문 조사 시점이 지난달 말이었던 만큼 일부 전문가는 이달 들어 성장률 예상치를 3% 후반대로 올려 잡았다.

그래픽=박길우

김완중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백신 보급으로 주요 선진국의 규제가 풀리고 수출이 증가하며 성장률 전망을 3.4%에서 3.8%로 상향 조정했다”며 “미국의 재정 확장 정책과 미·중 갈등에 대처하는 정부의 역량에 따라 4%대 성장률까지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예상 경제 성장률이 높아지면서 물가상승률 예상치도 높아졌다. 설문 응답자들은 올해 물가상승률을 1.55%로 전망했다. 지난해 물가상승률은 0.5%로, 2019년에 이어 2년 연속 0%대를 기록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달 월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년 5개월 만에 2%를 넘어서는 등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 물가 상승 공포에 금리 상승 현실화 우려 부각

지속적인 물가 상승은 금리 상승으로 이어진다. 박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내년 하반기로 봤던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시기가 생각보다 빨라져 늦어도 내년 초에는 금리 인상이 예상된다”라고 말했다. 한국은행 내부에서도 연내 기준금리 인상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지금부터 금리 인상을 대비해야 할 시점이란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금리 인상은 은행권의 대출 금리를 높이며, 이미 높아진 부동산 가격에 더 부담을 준다. 만약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전후로 한국은행이 선제적인 금리인상 조치를 취하면 일명 ‘영끌족’들의 부담은 더욱 늘어난다.

하나로마트 양재점 채소 코너에서 장 보는 시민들. 통계청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4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7.39(2015년=100)로 한 해 전보다 2.3% 올랐다. /연합뉴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권 가계대출은 16조1000억원 증가해 2004년 속보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많이 불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주택담보대출과 함께 주식과 가상화폐 투자 열풍으로 신용대출, 마이너스통장 대출(신용한도 대출)이 모두 증가세다.

금리 상승 가능성에 따라 금융 산업을 투자 분야로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한 부부장은 “미국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탓에 연말부터 금리 인상이 논의되면 금융 분야가 새로운 투자처로 떠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