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연합회가 최근 금융위원회에 금융지주사의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허용해달라는 의견서를 전달한 가운데, 기존 인터넷은행 사업자는 물론 일부 지방은행과 금융노조 등이 반발하는 분위기다. ICT(정보통신기술) 사업자들이 금융업에 진출해 혁신을 가속하라는 당초 인터넷은행 도입 취지에도 맞지 않고, 단순히 전통 금융사들에 판로를 하나 더 열어주는 것에 불과하다는 이유에서다.

13일 은행권에 따르면, 은행연합회는 지난 11일 은행전략부를 중심으로 한 부서장 회의를 열어 지주사의 인터넷은행 설립에 대한 의견을 정리하고 나서 금융위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은행연합회는 그간 한국금융연구원과 함께 금융지주를 상대로 인터넷은행 설립과 관련한 수요 조사와 연구 용역을 진행해 왔다.

은행연합회.

해당 의견서에는 8개 금융지주사(KB·신한·하나·우리·NH농협·BNK·JB·DGB금융지주)의 인터넷은행 설립에 대한 입장을 비롯해, 해외 사례·기대 효과·당위성 등이 담겼다. 해외 사례로는 이스라엘 르미은행의 ‘페퍼뱅크’, 유럽 BNP파리바의 ‘헬로뱅크’, 일본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의 ‘페이페이뱅크’, 미국 골드만삭스 ‘마커스’ 등이 언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분량은 총 10~20페이지 규모다.

금융권에서는 급변하는 금융 환경에서의 차기 경쟁력을 고민해야 하는 금융지주의 경영진을 제외하고는 이런 소식이 달갑지 않다는 분위기가 짙다. 우선 기존 인터넷은행 사업자들은 대형 금융지주의 인터넷은행 진출 시도가 도입 당시 취지에 어긋나는 행위라며 비판하고 있다.

금융위는 2015년 6월 ‘인터넷전문은행 도입 방안’ 발표 당시 “ICT 기업 등을 비롯한 혁신성 있는 경영주체의 금융 산업 진입을 활성화할 것”이라며 “은행산업 입장에서는 새로운 경쟁자 혹은 차별화된 사업모델이 출현함으로써 은행간 경쟁 촉진, 기존 은행의 인터넷뱅킹 서비스 개선 등이 촉발돼 전반적인 경쟁력이 향상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인터넷은행에 한해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었다. 기존 ICT 기업 등 비금융주력자는 은행 지분의 4%를 초과 보유할 수 없게 돼 있었지만, 이를 50%까지 상향 조정하기로 한 것이다. 다만 추후 입법 과정을 통해 이 지분 한도는 결국 최대 34%로 결정됐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ICT 플레이어가 금융 판에 들어와서 휘젓고 혁신을 주도하라는 것이 인터넷은행 도입 취지인데, 지금 금융지주의 인터넷은행 설립 구상은 사실 금융 소비자의 편익이라든가, 금융 혁신이라는 차원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다”라며 “기득권 대형 은행에다가 판로 하나를 더 열어주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도규상 당시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국장이 2015년 6월 '인터넷전문은행 도입 방안'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홈페이지 캡처

일부 지방은행 입장에서는 이것이 현실화하면 이미 진행 중인 은행 간 빈부격차 현상이 더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한 은행 관계자는 “현재 은행연합회가 추구하는 인터넷은행 설립 논의는 대형 금융지주 중심으로 이뤄졌다”며 “빅테크 사업자의 금융업 진출을 허용하는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 논란과 마찬가지로 대형 금융지주 산하 은행의 인터넷은행 설립 역시 지역 자금의 역외 유출을 심화시키고, 지방은행은 더는 버티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금융노조 측은 인터넷은행 설립 논의가 시작되자 벌써 인력 활용 문제를 걱정하고 있다. 한 은행권 노조 관계자는 “은행에서는 점포·인력 축소와 명예퇴직의 바람이 일고 있다”며 “이런 분위기와 맞물려 인터넷은행 도입 시 무작정 새로운 직원을 뽑을 것이 아니라, 기존 인력을 재교육하는 방안에 대해 사측과 논의해보려고 시도 중”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은행연합회가 이번에 제출한 것은 단순한 ‘의견서’로 이에 따라 금융당국이 일정 답변을 내놓거나 조처를 할 의무는 없다. 다만 일각에서는 금융위가 올 하반기 금융산업 경쟁도 평가를 진행하면서, 인터넷은행 추가 인가 여부를 결정할 수도 있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현재 국내 인터넷은행은 케이뱅크·카카오뱅크 두곳이다. 토스뱅크의 본인가는 이달 중 결정될 예정으로, 오는 7월 공식 출범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