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의 40대 초반 젊은 직원들의 대거 퇴사가 잇따르고 있다. 최근 6년간 정기 인사 후 한 달 이내 퇴직 신청자 수가 올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해묵은 인사 적체 문제를 비롯해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과거 채용 비리 사건에 연루된 직원 2명을 승진시키는 등 금감원 인사의 공정성 논란이 불거지면서 이에 실망을 느끼고 돌아서는 직원들이 많은 것으로 풀이된다.

3일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감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2월 정기 인사 후 1개월 이내 퇴직 신청자 수는 13명으로 집계됐다. ▲2016년 7명 ▲2017년 3명 ▲2018년 4명 ▲2019년 4명 ▲2020년 5명 등과 비교하면 최근 6년 중 가장 많은 수치다. 올해 연초 퇴직자 수는 1년 전보다 3배가량 늘어난 셈이다.

한해 퇴직자 수도 ▲2017년 49명 ▲2018년 66명 ▲2019년 77명 ▲2020년 93명 등으로 매년 느는 추세다. 올해는 지난 3월 말 기준 벌써 24명이 퇴사 신청서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금감원 제공

◇ 40대 초반 젊은 직원들 금감원 이탈

특히 올해는 선임(4급)·수석(3급) 조사역 등 40대 초반 젊은 직원들의 대거 퇴사가 눈에 띈다. 한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2월 정기 승진 인사 후 채용 비리 연루자 승진에 실망한 젊은 직원들의 퇴사가 이어지고 있다”며 “(부서장·팀장급이 아닌) 미 보임 직원의 퇴사·휴직 소식이 거의 하루에 하나씩 들려올 정도”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앞서 윤 원장은 이번 정기 인사에서 채용 비리 연루자 2명을 각각 부국장과 팀장으로 승진시키면서 금감원은 내홍을 겪었다. 금감원 측은 승진한 연루자들이 징계에 따른 승진·승급 제한 기간이 지나 승진 심사를 진행한 것이라고 공식 해명했다가 내부 반발은 더 커졌다. 금감원 노조 측은 정기 인사를 계기로, 청와대 앞에서 윤 원장에 대한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감찰 청구와 함께 해임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도 이런 실망감을 내비치며 퇴사하겠다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지난달 중순에는 자신을 ’80년대생'이라고 밝힌 한 금감원 직원이 “금감원의 공정성은 훼손됐고, 이 상태에서 다른 금융사를 검사할 자신이 없다”며 “금감원 입사했다고 뿌듯해하던 기억이 허탈하게 만든다”고 썼다. 그는 “도대체 제가 누굴 감독하느냐”라며 “곧 이 회사를 떠나려 한다”고 토로했다.

퇴직을 결정했다고 밝힌 또 다른 직원은 “올해 우리 원의 인사는 채용 비리 직원 구제, 행사 전문 직원 승진, 학연·지연 직원 승진으로 요약된다”며 “감독 당국 본연의 업무를 위해 묵묵히 일하는 일반 직원들은 근무시간 외 수당도 지급되지 않지만 이런 현실을 그저 견뎌낼 뿐”이라고 썼다.

지난달 15일 금융감독원 노동조합이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윤석헌 금감원장의 해임을 요구했다. 또 금감원 노조는 윤 원장에 대한 특별감사를 청구했다. /금감원 노동조합 제공

과잉 징계 논란이 일었던 사모펀드 사태 관련 금감원 제재 업무 담당자의 퇴사도 줄 잇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고위 관계자는 “예탁결제원 중 조치 통보 건 관련, 신한금융 최고경영자(CEO) 제재와 관련해 담당 수석 조사역들이 사표를 던진 것으로 안다”며 “젊은 직원들이 법적 처벌 근거가 약하다고 반론을 제기했는데도, 윤 원장이 소신에 따라 찍어 누르니 담당자들이 중간에서 많이 힘들어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1월 금감원은 옵티머스 사태와 관련 예탁결제원에 사무관리회사로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중징계인 기관경고를 예고한 바 있다. 금융위가 예결원에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법령해석을 내놓은 상황이라, 고강도 제재의 명분이 부족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금감원은 또 진옥동 신한은행장과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에 대해서도 각각 문책경고(중징계)와 주의적 경고를 사전 통보했었다. 결과적으론 소비자 피해 구제 노력이 인정돼 실제 제재심에서 경징계 수준으로 감경됐지만, 민간 금융사 CEO에게 내부통제 부실 책임을 물어 무리한 제재를 가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지난해 11월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리는 '라임 사모펀드 사태' 관련 판매사 제재심의위원회에 신한금융투자 임직원들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 과거엔 ’국포자’ 지금은 ’수포자’ 유행

간부는 나가지 않고 승진 길은 막히는 인사 적체 현상도 해묵은 이슈다. 대졸 공채는 통상 5급 조사역으로 시작해 5~7년(군 복무 경력 인정)을 근무하고 나서 4급(선임 조사역)으로 7~8년을 근무한다. 각 국·팀의 핵심인 수석 조사역, 주니어 팀장, 시니어 팀장으로 각각 3년 정도 근무하는 3급을 거쳐, 2급(국·부국장)으로 승진하는 구조다. 그런데 2018년 이후 4급에서는 10년 이상 근무하고 승진을 하지 못하는 직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금감원 내부에서는 과거에는 ‘국포자’가 대부분이었다면, 지금은 ‘수포자’가 늘어나는 현실이라는 우스갯소리가 흘러나온다. 국포자는 국장급 포기자를, 수포자는 수석 조사역 포기자를 일컫는다. 특히 2000년대 중반 이후 입사한 직원들 사이에서 이런 적체 현상이 심한 상황이다. 젊은 직원의 퇴사가 많아진 최근에는 “수석은 승급 자리도 잘 안 나는데 왜 4급이 나가느냐”는 자조 섞인 농담도 나온다고 한다.

4급 이상부터는 취업제한 규정이 적용돼 퇴사 후 재취업도 어려운 현실이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4급 이상 금감원 직원은 퇴임 후 3년 내 관련 업종 재취업 시 공직자 윤리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재취업 제한이 걸려 있는데도 나가는 젊은 직원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더는 조직에서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걸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2001년 금융감독원 독립성 쟁취를 위한 전직원 총궐기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주완중 기자

윤 원장의 인사 정책이 전반적으로 실패한 것이라고 평가하는 시각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전문 감독관’(스페셜리스트) 제도다.

윤 원장은 지난해 초 검사·조사·감리 등 특정 분야에서 정년(만 60세)까지 일할 수 있는 이 제도를 도입했다. 그런데 1년 새 스페셜리스트 3명이 로펌의 변호사·회계사 등으로 이직했다. 익명을 요구한 금감원 관계자는 “수당을 더 줄 테니 승진 신경 쓰지 말고 전문 영역에서 소신껏 일하라는 것이 도입 취지였다”면서 “전문 감독관이 몸값을 올려서 퇴사하는 경로로 전락해 버렸다”고 지적했다.

금감원 내부 분위기가 뒤숭숭한 가운데, 수장인 윤 원장의 임기 만료는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오는 7일 원장직 임기가 끝나지만, 이례적으로 후임 원장 하마평도 오르내리지 않는 등 불투명한 상황이다. 당분간 김근익 수석부원장 대행 체제로 운영되는 방안이 유력할 것으로 보이나, 일각에선 윤 원장이 유임될 수 있을 거란 시각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윤창현 의원은 “십수년간의 열정과 스펙을 쌓은 끝에 입사하고 십여년 이상 버텨온 직장이지만, 금감원장의 불공정 인사를 마주한 40대 초반 고참 조사역들이 회사를 등지고 있다”며 “신임 원장은 금감원 감독의 중립성 못지않게 인사의 공정성을 재확립하는 일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