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공단의 해외주식과 국내주식 투자 비중 격차가 내년에 처음으로 20%포인트(P) 이상 벌어진다. 국민연금이 장기 목표 수익률 달성을 위해 해외 투자를 지속해서 늘리고, 국내 투자는 줄여가고 있어서다. 시장 일각에선 지수 하락으로 국민연금의 국내 투자 여력이 생긴 만큼 ‘큰손’이 구원투수로 등판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 내년 해외주식 비중 35.9%… 국내주식은 14.9%
29일 국민연금의 기금운용 중기자산배분안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올해 말 15.4%인 국내주식 목표 비중을 2025년 말 14.9%로 줄인다. 같은 기간 해외주식 비중은 33.0%에서 35.9%로 늘린다. 두 자산 비중 격차가 올해 17.6%P에서 내년에 처음으로 20%P를 넘어서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국내·해외 주식 비중이 벌어지는 건 수년 전부터 기금운용 정책의 방향성을 ‘해외 투자 강화를 통한 수익률 극대화’에 두고 있어서다. 국민연금 기금은 올해 9월 말 기준 1146조원에 달하지만, 이 돈은 불과 30년 후인 2054년이면 사라진다. 보험료를 내는 사람보다 연금 수령자가 훨씬 많아지는 인구 구조 변화 탓이다.
이에 국민연금은 기대수익률이 국내보다 좋은 해외 시장으로 적극 눈을 돌리고 있다. 올해만 하더라도 1~9월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수익률은 0.46%인데 반해 해외주식 수익률은 21.35%에 달한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운용 수익률을 1%P만 높여도 기금 고갈 시기를 6년 정도 늦출 수 있다. 국민연금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해외 투자 비중은 지난해 51.6%였는데, 이 비중은 오는 2028년 60%까지 확대된다.
문제는 최근 국내 증시가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시장에선 국민연금과 같은 큰손이 소방수 역할을 해줄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는 점이다. 2023년을 2655.28로 마친 코스피 지수는 올해 12월 27일 종가 기준 2404.77로 9.43% 주저앉았다. 같은 기간 미국 나스닥종합지수와 S&P500지수가 30%가량 치솟은 점을 고려하면 국내 투자자로선 허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시장 분위기가 나빠지자 정치권을 중심으로 국민연금이 한국 주식 비중을 늘려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달 1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임광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소셜미디어(SNS)에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소하고 환율 방어를 위한 긴급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국민연금이 해외 부분의 수익 일부를 실현해 국내에 투자한다면 얼마나 좋겠나”라고 적었다.
◇ 이론적으론 국내주식 7%P 이상 늘릴 수 있어
시장 일각에선 코스피 지수가 연초 대비 10% 가까이 빠지긴 했으나 그 덕에 국민연금이 국내주식을 더 담을 여력이 생겼다고 말한다. 올해 9월 말 기준 국민연금 기금 적립금(1146조원)에서 국내주식 투자 비중은 12.7%(145조7660억원)이다. 지수가 현 수준을 유지한다는 전제하에 2025년 목표 비중인 14.9%와 비교하면 2.2%P만큼의 투자 여유가 생긴 셈이다.
여기에 국민연금은 시장 환경에 따른 자산 배분의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주식의 경우 ±5% 범위에서 목표 비중 초과·미달을 허용하고 있다. 이 부분까지 고려하면 이론적으로는 국민연금이 지금보다 국내주식 비중을 7.2%P 더 늘릴 수 있다는 의미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지금 같은 시기에 국민연금이 전략적으로 저가매수 포지션을 취해준다면 신년 효과와 맞물려 국내 증시가 힘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다만 국민연금이 투자 허용 범위를 가득 채우면서까지 국내 증시 지원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역 출신인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는 “코스피 지수가 3300까지 올랐던 2021년 4월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투자 비중은 20%에 달했다”며 “국민연금으로선 차익 실현 타이밍이었지만 시위대까지 찾아와 ‘팔면 안 된다’고 주장했고, 당시 정부도 여론에 떠밀려 매도를 막았다”고 했다.
홍 대표는 “이후 지수가 급락하면서 국민연금은 대규모 손실을 봤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며 “이런 일을 반복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