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 정부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도입하면서 기업들이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 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중략) 윈스는 이번 공개매수를 통해 발행주식의 10%를 취득하고, 이를 소각해 궁극적으로 기업가치 및 주가에 긍정적 영향을 미쳐 다시 한번 주주가치를 제고하고자 한다.”

사이버 보안기업 윈스(136540)는 올해 11월 진행한 자사주 공개매수의 목적을 이같이 밝혔다. 윈스는 지난 3월에도 보유한 자사주를 소각했다. 보통 자사주 매입·소각은 유통 주식 수를 줄여 기업 가치를 제고하는 효과가 있다. 한 해에 두 차례나 자사주 소각을 한 윈스는 우수 밸류업 기업으로 꼽혀야 할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소액주주들의 볼멘소리가 나왔다.

윈스의 최대주주인 금양통신이 자사주 공개매수에 응한 탓이다. 금양통신은 이번 공개매수를 통해 보유한 윈스 주식 513만4084주(지분율 37.63%) 가운데 58만458주를 처분했다. 윈스의 이번 공개매수가는 1주당 1만6000원으로 금양통신은 약 93억원을 확보했다.

윈스 주주들이 금양통신의 행보에 반발하는 배경은 크게 2가지다. 먼저 금양통신이 공개매수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다른 일반 주주들은 공개매수를 통해 원하는 만큼 주식을 처분할 수 있었다.

윈스는 이번 공개매수 때 자사주 136만4416주를 사기로 했다. 공개매수 발표 전 주가보다 20%가량 높은 가격에 공개매수에 나선 만큼, 응모 주식수는 223만3056주에 달했다. 63.7% 초과 응모가 나왔다. 윈스가 응모 물량이 계획보다 많으면 응모 주식 수를 기준으로 안분비례해 매수하기로 했던 점을 고려할 때 금양통신은 이번 자사주 공개매수에 91만여주를 내놓았다. 이 물량이 없었다면 응모 물량은 매입 계획보다 적었고, 윈스가 모두 사들이는 것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윈스 일부 주주들은 최대주주가 보유 지분을 매도하는 것을 ‘밸류업’으로 포장했다고 본다. 최대주주가 보유 지분을 줄이는 와중에 기업가치가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라 주장하는 일은 앞뒤가 안 맞는다. 주가가 더 오를 것으로 예상할 경우 최대주주가 주식을 대규모로 팔 이유가 없어서다. 금양통상뿐만 아니라 김대연 윈스 전 대표도 자사주 공개매수 발표 뒤 보유한 윈스 주식 53만2000주 가운데 5만2000주를 장내 매도했다. 김 전 대표는 김을재 금양통신 회장의 조카이고, 현 김보연 윈스 대표와 사촌 관계다.

금양통신에 사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금양통신은 지난 9월 말 KCGI 브이에스 디 윈스 글로벌 신성장 신기술사업투자조합(펀드)이 보유하던 윈스 주식 213만3331주를 1주당 2만812원에 사들였다. 약 444억원어치로, 금양통상은 지분 매입금액 가운데 200억원을 BNK부산은행에서 주식을 담보로 빌렸다. 이 대출 만기가 2025년 1월이다. 금양통신은 여윳돈이 없어 대출금 상환을 위한 자금을 마련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윈스가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진행한 이번 자사주 공개매수는 단기 효과에 그쳤다. 지난달 자사주 매입 기간 장 중 1만5750원에 머물렀던 윈스 주가는 이달 2일 종가 기준 1만2770원까지 24%(3980원)가량 빠졌다. 네이버페이 ‘내자산 서비스’에 따르면 윈스 투자자의 평균 손실률은 17.97%다.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 이후에도 물적 분할 후 재상장, 기습 유상증자, 알짜 자회사 넘겨주기 등 소수 주주가 동의하지 못할 일이 반복돼 왔다. 그때마다 기업들은 장기적으로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조처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한국식 밸류업인가 싶다.

일반 투자자 보호를 위해 정부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상법 개정안을 꺼냈다. 법 통과 이후에 한국식 밸류업이 사라질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그전까지는 투자자들이 주주환원 공시까지 예민하게 살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