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자본시장을 움직이는 초대형 기관들이 투자 바구니에 앞다퉈 ‘미국’을 담고 있다. 인공지능(AI) 등 미래 혁신 산업의 주도권을 움켜쥐고 사실상 홀로 질주 중인 경제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흐름이다. 겉으로는 미국과 제재 공방을 벌이며 기 싸움 중인 중국의 국부펀드조차도 수익률 극대화를 위해 포트폴리오 내 미국 주식 비중을 60%(지난해 말 기준)까지 확대했다.
◇ 제재 난타전 뒤에선 “Buy America”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세계 최대 국부펀드 중 한 곳인 중국투자공사(CIC)의 올해 자산 규모는 1조3320억달러(약 1838조원)로 추정된다. CIC는 중국 정부가 자국 외환보유고를 운용하고자 2007년 설립한 조직이다. 유안타증권이 발간한 ‘2024년 국내외 기관투자자 투자전략 분석’ 리포트에 따르면 2012년 43.8%였던 CIC의 미국 투자 자산 비중은 지난해 60.3%로 늘어났다.
중국은 미국과 오랜 시간 갈등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최근에는 미 정부가 대(對)중국 제재 범위를 반도체에서 디스플레이 등으로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맞불’ 성격으로 미국 기업 다수를 제재 대상에 넣기도 했다. 중국 정부의 제재 명분은 대만에 무기를 팔았다는 것이다. 시에라네바다·스틱루더·큐빅 등 미국 군사기업의 중국 내 재산이 동결됐다.
정치의 맥락에서는 이처럼 살벌한 힘겨루기가 계속되고 있지만, 수익률을 우선시하는 투자시장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미·중 갈등이 고조된 이후로도 미국 투자 비중을 꾸준히 늘린 CIC의 행보가 이를 잘 설명한다. CIC의 미 자산 투자 규모는 1000조원 이상일 것으로 예상된다. 김후정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미 주식 성과가 너무 좋다 보니 미국과 갈등을 겪고 있는 중국 국부펀드도 미 자산 비중을 늘리는 것”이라고 했다.
◇ 개도국처럼 잠재성장률 올라가는 미국
미국에 적대적인 중국이 이 정도면 다른 나라 큰손은 말할 것도 없다. 주요 기관 투자자들은 정보기술(IT) 산업 비중이 작고 전통 제조업 비중이 높은 유럽·일본 등을 바구니에서 덜어내고, AI 혁신을 등에 업고 독주 중인 미국으로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세계 최대 국부펀드인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2010년 이후 미국 투자 비중을 적극 키우기 시작했다. 구글·애플·페이스북 등의 혁신 IT 기업이 세상을 놀라게 하던 시기와 맞물린다. 2015년을 기점으로는 전체 투자에서 미국 비중이 유럽을 넘어섰다. 노르웨이 국부펀드 자산 규모는 1조7960억달러(약 2477조원)다. 현재 이 펀드의 미국 투자 비중은 50%를 웃돈다.
싱가포르 국부펀드(GIC)도 노르웨이 국부펀드와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 GIC의 국가별 투자 비중을 보면 2018년 39%이던 미국 비중은 지난해 43%로 늘어난다. 같은 기간 GIC는 아시아 투자 비중을 32%에서 26%로 줄였다. 특히 일본에 대한 투자를 13%에서 4%로 확 낮췄다. 김후정 연구원은 “성장률이 정체된 기업이나 국가 투자 비중을 적극 조정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글로벌 큰손의 미국 사랑은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미국 경제의 순항이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보여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미국의 올해 잠재성장률은 2.1%로 전망된다. 미국 잠재성장률은 2021년 1.9%에서 2022년 2.0%로 오르는 등 계속해서 상승 추세다. 미국의 경제 규모를 고려하면 이례적인 현상이다. 경제의 기초 체력이 날로 튼튼해지고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