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년 전이던 2023년 8월 10일 중국 문화여유부는 중국인 단체 관광객(유커)의 한국 관광을 전면 재개한다고 발표했다. 2017년 3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한국행 단체 비자 발급을 중단한 이후 6년 5개월 만이었다. ‘큰손’ 유커의 귀환 소식은 엔데믹(endemic·감염병의 풍토병화) 기대감과 맞물려 국내 호텔·면세·카지노 관련주 주가를 끌어올렸다.

장밋빛 전망과 함께 반등했던 중국인 관광객 수혜주는 그러나 2024년 7월 현재 바닥을 기고 있다. 작년 이맘때 9만원을 돌파했던 호텔신라(008770)는 5만400원(이하 7월 24일 종가)으로 추락했고, 파라다이스(034230) 주가도 같은 기간 1만8000원대에서 1만2050원으로 뚝 떨어졌다. 롯데관광개발(032350), GKL(114090) 등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공항이나 국내 주요 관광지에 가면 중국인 관광객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관련주 주가는 왜 상승 탄력을 받지 못할까. 그 배경을 3가지로 분석해 봤다.

서울 명동의 상가 외벽에 한자 등 외국어로 쓴 간판과 안내문이 붙어있다. / 뉴스1

① 나라 안팎으로 약해진 중국인 씀씀이

우선 중국 경제가 정상 궤도에 오르지 못했다. 한때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25%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컸던 부동산 시장이 2021년 하반기 위기를 겪으면서 그 충격이 중국 경제 전반으로 번졌다. 자산 가치 급락을 맛본 가계 주체들은 지갑을 닫았다. 올해 6월 중국 소매판매가 2022년 12월 이후 17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이유다. 중국의 올해 2분기 경제 성장률은 4.7%로 시장 예상치를 밑돌았다.

중국인의 약해진 씀씀이는 여행지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중국 문화여유부에 따르면 올해 노동절(5월 1~5일) 연휴에 여행을 떠난 중국인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직전이던 2019년 노동절 연휴 때보다 28.2% 늘었다. 하지만 같은 기간 1인당 지출은 6%가량 줄었다.

올해 노동절 연휴는 5일로 2019년(4일)보다 하루 길었다. 이를 고려해 1일 인당 평균 소비를 따져보면, 2024년은 113.1위안으로 2019년(150.9위안)의 75% 수준에 불과했던 것이다. 5년 전보다 물가가 올랐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행을 가긴 가더라도 소비는 크게 줄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박수현 KB증권 연구원은 “중국 소비 심리가 여전히 회복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다”고 했다.

중국인의 긴축 소비 기조는 해외 여행지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올해 5월 국내 면세점을 이용한 외국인 수는 82만명이다. 51만명이던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60.4% 증가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외국인 이용객 객단가는 184만원에서 120만원으로 34.5% 감소했다. 허제나 DB금융투자 연구원은 호텔신라 목표주가를 7만5000원에서 7만원으로 하향 조정하면서 “객단가가 높은 유커 회복 효과가 미미해 의미 있는 면세 매출 반등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소비자들이 서울 시내 한 면세점을 둘러보고 있다. / 뉴스1

② “여행객 티 안 나네”… 성수·한남동 찾는 중국 MZ들

여행 스타일이 기성세대와 전혀 다른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가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의 중심축으로 부상한 점도 우리나라 면세·카지노 업계 주가에 악재라는 분석이 나온다. 소셜미디어(SNS)에 익숙한 중국 MZ세대는 단체보다 개별여행을 선호하고, 백화점·면세점 쇼핑에만 집착하지 않는다. 이들은 한국의 평범한 대학생처럼 맛집이나 개성 넘치는 편집숍을 찾아다닌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을 찾는 중국인의 개별여행 비중은 2019년 82.5%에서 2023년 97.9%로 커졌다. 같은 기간 동반 인원도 5.1명에서 2.1명으로 줄었다. 수십명씩 무리지어 가이드 깃발을 쫓아가는 유커가 예전처럼 눈에 안 띄는 이유다. 방한 중국인 관광객 중 2030 비중은 2019년 56.2%에서 지난해 57.9%로 증가했다. 40~70대 이상은 35%에서 31.8%로 작아졌다.

한국관광공사가 외국인 관광객의 소비 경향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한국을 찾은 중국인 가운데 35.9%는 2030 여성 MZ세대였다. 일본인 역시 MZ 비중이 전체 일본인 관광객의 36%였다. 이들은 시내 면세점과 외국인 전용 카지노 대신 한국인에게도 트렌디한 동네로 여겨지는 성수동·한남동·압구정동 등을 찾았다. 작년 1분기 대비 방문율은 성수동 863.5%, 한남동 144.1%, 압구정동 136.7% 급증했다.

외국인 MZ들은 현지 스타일로 꾸미고 전문가와 사진을 찍는 ‘스냅사진 투어’를 즐기거나 액세서리 편집숍, 미용실 등을 주로 찾았다. 또 인기 아이돌의 콘서트를 즐겼다. 중국관광연구원은 중국인의 해외여행 스타일이 인기 관광지를 구경하는 주유(周遊)와 쇼핑에서 현지 생활과 문화·음식 등을 직접 체험해 보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장맛비가 내린 7월 22일 서울 경복궁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우산으로 비를 피하고 있다. / 뉴스1

③ “면세 쇼핑? 하이난 가면 돼”

내수를 살리려는 중국 정부의 공격적인 면세 산업 육성 기조가 한국 관련 업계에 직·간접적인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있다. 중국 당국은 ‘중국의 하와이’로 불리는 하이난성을 면세 천국으로 만들고 있다. 1인당 면세 한도를 10만위안(약 1900만원)으로 늘렸고, 기존 구매자에 대해서는 6개월 동안 온라인으로 면세품을 추가 구매해 택배로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덕분에 지난해 하이난성 면세품 매출액은 전년 대비 25% 넘게 증가한 8조3700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방문객 수도 675만명으로 같은 기간 60%가량 늘었다. 하이난 면세 사업자들은 자국민뿐 아니라 외국인 여행객을 상대로도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당국은 이달부터 홍콩과 마카오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18세 이상 본토 여행객에 대한 면세 한도를 1회 여행당 5000위안(약 95만원)에서 1만2000위안(약 228만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코로나19 등을 거치며 침체한 홍콩 관광업계를 살리려는 의도에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중국인이 하이난이나 홍콩이 아닌 해외로 나가더라도 엔화 약세를 누릴 수 있는 일본 면세점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한국 면세점이 설 자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