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4월 3개월간 국내 증시에서 순매수를 유지했던 국민연금 등 연기금이 5월 들어서는 7000억원가량 순매도로 돌아섰다. 연기금의 수급 방향이 바뀌는 시점만 보면, 2월 금융당국의 기업 밸류업(가치 제고) 프로그램 도입 발표에 맞춰 ‘사자’를 유지하다가 이달 초 당국이 밸류업 가이드라인을 공개하자 ‘팔자’로 변심한 모양새다. ‘큰손’의 주요 매수 종목도 밸류업 관련주에서 조선·게임·화장품 등으로 다양해졌다.
2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5월 들어 연기금은 국내 증시에서 6790억원(5월 20일 종가 기준)을 순매도하고 있다. 지난 1월 6780억원어치를 팔아치웠던 연기금은 2월 금융당국이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 계획을 공개하자 ‘바이 코리아(Buy Korea)’로 전환했다. 순매수 규모도 2월 1100억원에서 3월 2510억원, 4월 7190억원으로 점점 키웠다.
석 달간 3조원 넘게 사들인 연기금은 이달부터 다시 ‘팔자’로 돌아섰다. 연기금의 수급 전환은 지난 2일 금융당국이 밸류업 프로그램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시점과 맞물린다. 당시 가이드라인 내용이 ‘맹탕’이라는 논란과 함께 밸류업 수혜주 주가가 크게 빠졌는데, 연기금도 밸류업주 비중 조절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5월 들어 연기금의 순매도 상위 종목에는 대표적 밸류업 수혜주로 꼽히는 기아(000270)(520억원 순매도)와 현대차(005380)(380억원 순매도)가 올라있다. 연기금은 4월에는 이 두 종목을 각각 1170억원, 510억원 순매수한 바 있다. 또 다른 밸류업 관련주인 KB금융(105560)에 대해서도 연기금은 지난달 490억원 순매수에서 이달 200억원 순매도로 돌아섰다.
현재 연기금은 어떤 종목을 투자 바구니에 담고 있을까. 5월 2~20일 연기금의 순매수 상위 종목 구성을 보면 최상단에는 조선주인 HD현대마린솔루션(443060)이 있다. 다른 조선주인 HMM(011200)과 화장품주인 에이피알(278470)·LG생활건강(051900), 게임주인 엔씨소프트(036570), 에너지주인 한화솔루션(009830) 등도 연기금의 집중 매수 대상이다. 밸류업 관련주 위주로 눈에 띄었던 3~4월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연기금은 사실상 국민연금공단이나 다름없다. 굴리는 돈만 1000조원 이상인 세계 3대 연기금 중 한 곳이어서다. 우리나라 4대 공적연금인 사학연금(20조원)과 비교해도 국민연금 덩치는 사학연금의 50배에 달한다. 연기금 수급 방향성에 투자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연기금 포트폴리오 구성 변화는 증권가의 올해 하반기 전망과도 통하는 측면이 있다. 하나증권은 하반기 중 금리 인하가 시작될 경우 그간 낙폭이 심했던 성장주에 투자 심리가 몰릴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면서 소프트웨어·미디어·화장품·호텔레저 등을 기대 업종으로 제시했다. 신한투자증권은 3분기는 이익 상위(반도체·조선·유틸리티·IT하드웨어), 4분기는 유동성 모멘텀(헬스케어·엔터·미디어) 중심의 투자 전략 구축을 권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하반기에는 실질적인 금리 인하 사이클 시작과 미국 경기 저점 통과, 중국 경기 부양책 효과 등에 힘입어 증시의 강한 상승 흐름이 전개될 것”이라며 “한국 증시도 반도체 업황 개선과 성장주 반등이 가세해 탄력적인 상승을 이어갈 전망”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