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싯적 ‘싸이월드’ 좀 해본 8090년대생이라면 ‘포토샵(Photoshop)’ 체험판 정도는 사용해 봤을 것이다. 학교 컴퓨터실이나 집 데스크탑컴퓨터에 깔린 체험판을 열고, 사진을 띄워놓고, 포털사이트에서 ‘포토샵 기본툴 사용방법’ 따위를 검색해 가며 힘겹게 사진을 꾸몄던 기억쯤은 다들 있지 않을까?
이 ‘포토샵’을 만든 회사가 바로 어도비(Adobe)다. 1982년에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설립된 이 회사는 컴퓨터 화면을 그대로 출력해 주는 소프트웨어 ‘포스트스크립트(PostScript)’를 선보이며 시장의 관심을 받았다. 이 ‘포스트스크립트’ 라이선스를 최초로 구매한 기업은 스티브 잡스의 애플이다. 스티브 잡스는 어도비를 인수하려 했으나 거절당한 후 어도비의 약 20% 지분을 대신 사들이기도 했다.
이후 어도비는 이미지·그래픽 관련 소프트웨어 라인업을 늘려나갔다. 컴퓨터로 직접 이미지를 그릴 때 사용하는 ‘일러스트레이터(Illustrator)’, 이미지 합성·편집 소프트웨어 ‘포토샵’, 영상 편집을 위한 ‘프리미어 프로(Premiere Pro)’, 영상 합성에 특화된 ‘애프터 이펙트(After Effects)’ 등 20종이 넘는 소프트웨어를 선보였고, 이들은 모두 명실상부 그래픽·콘텐츠 디자인을 위한 표준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흔히 ‘피뎊’이라고 줄여 말하는 ‘PDF’ 파일 포맷을 처음으로 만든 것도 어도비다.
이런 어도비가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어도비는 지난 3월 그림 인공지능 ‘파이어플라이(Firefly)’를 선보였다. 프로그램에 원하는 이미지를 설명하는 텍스트를 쓰면, 이를 인공지능이 그림으로 변환하는 방식이다. 기존에 어도비가 가진 그래픽 디자인 소프트웨어와 생성형 AI를 결합해 다양한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또 기존에 자사 프로그램이 이미 만들어 낸 이미지를 AI가 학습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업계에 따르면 파이어플라이는 올해 3월 중순 공개된 이후, 10월까지 약 30억개의 이미지를 생성했다. 이 중 약 10억개가 9~10월간 생성된 이미지다. AI는 학습하는 데이터양이 많을수록 더 정교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앞으로 파이어플라이의 성장이 더 빠르게 이뤄질 것이란 예상이 가능하다.
어도비는 모든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 클라우드’ 구독 서비스에 파이어플라이를 추가하고, 이를 근거로 구독 가격을 10%로 인상했다. 고민성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는 2012년 어도비가 클라우드 모델로 전환한 이후 가장 큰 폭의 가격 인상”이라면서 “향후 매출과 수익성이 모두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증권도 “2024년 4분기 크리에이티브 클라우드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0% 이상 증가할 것”이라면서 “파이어플라이의 빠른 상용화가 기대된다”고 했다.
지난 13일(현지시각)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한 어도비 주가는 590.34달러다. 최근 1년 내 최고가 수준으로, 연초 대비 75.22% 상승했다. 이는 미국 소프트웨어기업의 평균 상승률(51.3%)을 크게 웃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