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의 뜨거운 감자 이차전지를 둘러싼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개인 투자자들은 빠르게 급등한 주가가 잠깐 조정 국면을 맞은 걸로 판단해 저가 매수에 나서는 분위기다. 그러나 단기 성장통으로만 여기기엔 이차전지 업계를 둘러싼 경고음이 심상치 않다. 우리나라의 이차전지 수출은 5개월 연속 전년 동월 대비 감소했고, 그에 맞춰 생산지수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여기에 양극재 수출 단가도 뚝 떨어지면서 관련 기업 실적에 빨간불이 켜졌다. 한국산 이차전지의 지나치게 높은 중국 의존도가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밀어내려는 미국·유럽연합(EU) 등의 정책 기조와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래픽=손민균

◇ 고점 찍고 뚝 떨어진 이차전지주

1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닥 시장 대장주 에코프로비엠(247540)에코프로(086520) 주가는 지난 8일 종가 기준 각각 29만9000원, 102만1000원을 기록했다. 역대 최고를 찍은 지난 7월 25일과 비교해 에코프로비엠은 35.3%(16만3000원), 에코프로는 21.0%(27만2000원) 내렸다.

다른 주요 이차전지 관련 종목도 고점 대비 크게 빠진 상태다. 엘앤에프(066970)는 7월 24일 28만1000원에서 9월 8일 19만7200원으로 떨어졌고, 삼성SDI(006400)는 7월 25일 71만2000원에서 이달 8일 58만9000원으로 주저앉았다. 같은 기간 POSCO홀딩스(005490)는 65만8000원에서 58만3000원으로 내려갔다. 올해 6월 61만원을 돌파했던 LG에너지솔루션(373220) 주가는 현재 간신히 50만원 선을 지키고 있다.

개미들은 이 틈을 타 이차전지 관련주 수집에 나서는 분위기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들어 개인 투자자의 순매수 상위 10개 종목 중 7개가 이차전지주로 집계됐다. 이차전지 주가 조정을 일시적 성장통으로 본 투자자들이 저가 매수에 나서는 것으로 풀이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4월 2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이차전지 국가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뉴스1

◇ 수출·생산지수도 뒷걸음질…양극재 판매가도 뚝

그러나 최근 발표된 각종 지표를 살펴보면 이차전지를 둘러싼 경고음이 제법 세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이차전지 수출은 3월까지만 전년 동월 대비 증가했고, 4월부터 8월까지는 5개월 연속 뒷걸음질쳤다. 게다가 4월 4.4%였던 전년 동월 대비 수출 감소율은 6월 17.0%, 8월 21.3% 등으로 점점 확대되고 있다. 이 여파로 전체 수출에서 이차전지가 차지하는 비중도 연초 1.7%에서 지난달 1.4%로 줄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서 국내 이차전지 생산 실적이 포함된 '일차전지 및 축전지 제조업 생산지수'(계절 조정)를 뽑아봤다. 올해 1월 131.8에서 3월 139.2로 상승한 생산지수는 4월 135.0으로 하락 전환하더니 가장 최신 수치가 나온 7월(113.4)까지 넉 달 연속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차전지 수출이 역성장한 흐름과 일치한다.

이런 상황에서 전기차 배터리의 주원료인 리튬 가격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한국 배터리 소재 기업 실적에도 비상이 걸렸다. 영국 런던금속거래소에서 수산화리튬 가격은 3개월 새 30%가량 급락했다. 국내 업체들은 리튬 가격에 따라 양극재 판매가를 결정하는 연동제를 시행 중이다. 매입 당시 시세보다 리튬 가격이 떨어지면 수익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통상 양극재 1㎏에는 전구체 1㎏과 리튬 0.4~0.5㎏이 들어간다. 전구체와 리튬을 수입해 다시 양극재로 제조해 판매하기까지는 대략 2개월이 걸린다. 다만 양극재 판매가는 파는 달의 원료 가격이 기준이다. 한국무역협회 무역통계에 따르면 양극재 수출 단가는 올해 1월 ㎏당 50.4달러에서 7월 42.4달러로 15.9% 하락했다. 그간 양극재 가격은 ㎏당 50달러 수준을 유지해 왔으나, 원료 가격이 내리면서 함께 약세를 보이고 있다.

전창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올해 3분기 전구체와 리튬 투입 원가가 지난 2분기보다 하락하겠지만, 상대적으로 양극재 판가가 더 큰 폭으로 하락해 스프레드(가공마진)가 축소될 것으로 추정한다"며 "3분기 주요 양극재 기업의 실적 눈높이를 낮출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국의 올해 상반기 리튬과 전구체 무역적자는 각각 50억9000만달러, 21억70000만달러였다. 이 가운데 대(對)중국 무역적자는 각각 30억달러, 21억1000만달러다. / 한국무역협회

◇ 너무 높은 중국 의존도도 리스크 요인

이차전지의 높은 중국 의존도도 언제든 돌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에 수입된 전구체의 97.4%가 중국산이다. 수산화리튬의 경우 82.3%가 중국에서 들어왔다. 미국 정부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구체적인 '해외우려기관(FEOC)' 조건을 아직 발표하지 않았다. 미·중 갈등이 심해지는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높은 중국산 원료 비중이 한국 기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의미다.

IRA 발효 이후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공급망 다변화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완벽한 '탈중국'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또 EU가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디리스킹(de-risking)' 전략의 하나로 추진 중인 핵심원자재법(CRMA) 역시 우리나라 이차전지 기업에 잠재적 리스크 요소다.

중국 이차전지 기업과 경쟁도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중국 외 시장에서 LG에너지솔루션의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 점유율은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28.2%를 기록했다. 지난해 동기보다 0.3%포인트(p) 내렸다. 중국 CATL의 점유율은 같은 기간 7.0%p 늘어난 27.6%로 집계됐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한국 증시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투자자는 이차전지 관련주를 덜어내는 분위기다. 9월 들어 개미들은 이차전지주를 집중적으로 사들였지만, 외국인은 순매도 상위 10개 종목 가운데 6개를 이차전지로 채웠다. 최보영 교보증권 연구원은 이차전지와 관련해 "다음 달 초 발표되는 잠정 실적에서 업황 부진이 확인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