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부 기업들이 기관 수요예측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두고 공모가를 대폭 낮추면서도 상장을 강행하고 있다. 지속된 금리 인상으로 자금 시장이 경색되면서 많은 기업들이 한계 상황에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가 큰 만큼, 공모를 철회하기보다는 일단 상장부터 해서 기대에 못 미치는 적은 자금이라도 받겠다는 의도다.

그래픽=이은현

15일 금융 투자 업계에 따르면, 탈모 치료제 등을 만드는 인벤티지랩은 지난 8~9일 국내외 기관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수요예측을 실시한 결과 14.37대1의 저조한 경쟁률을 기록했다.

당초 회사가 제시한 희망 공모가 범위(밴드)는 1만9000~2만6000원이었다. 그러나 수요예측에 참여한 기관 중 90%가 밴드 하단보다 낮은 가격을 적어 냈고, 의무보유 확약이 걸린 주식도 15일 확약 물량(전체 수량의 2.7%) 뿐이었다. 결국 공모가는 밴드 하단에 못 미치는 1만2000원으로 확정됐다.

공모가가 밴드 하단을 크게 하회함에 따라, 회사에 들어오는 공모금은 최대 338억원(밴드 상단 기준)에서 124억8000만원으로 급감하게 됐다. 그럼에도 인벤티지랩은 11일과 14일 이틀 간 일반 공모 청약을 거쳐 코스닥시장에 입성할 예정이다.

초정밀 잉크젯 프린팅 전문 기업 엔젯 역시 지난 3~4일 진행된 기관 수요예측에서 42.15대1의 낮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공모가는 밴드(1만2000~1만5200원) 하단보다 낮은 1만원으로 확정됐다. 이에 따라 회사에 유입될 공모금은 최대 319억2000만원에서 210만원으로 급감하게 됐다.

그 외에도 윤성에프앤씨(67.49대1), 디티앤씨알오(74.53대1), 큐알티(86.97대1), 플라즈맵(39.78대1) 등이 모두 기관 수요예측에서 저조한 경쟁률을 기록하고 공모가를 밴드 하단보다 낮게 책정하면서도 상장을 강행했다.

이들 기업은 일반 공모청약 경쟁률도 매우 낮았다. 엔젯은 1.86대1, 윤성에프앤씨는 1.73대1, 디티앤씨알오는 5.73대1, 큐알티는 7.44대1 수준이었다. 1대1을 간신히 넘거나 한자릿수에 그친 것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저조한 성적에 공모를 철회하는 기업들과 반대되는 양상이다. 자금력이 있는 회사들은 원하는 수준의 공모가를 인정 받을 수 있을 때 다시 상장에 나서도록 공모를 철회하는 경우가 많으나, 그마저도 여력이 안되는 기업들은 기대에 못 미치는 기업가치에도 일단 상장부터 강행하고 있다.

한 증권사 기업공개(IPO) 담당 임원은 "코스닥 상장을 추진하는 기업들은 웬만하면 기회가 왔을 때 상장을 강행하려 한다"며 "공모금 규모가 큰 기업들은 수요예측에서 미달이 나는 경우가 많지만, 규모가 작은 회사들은 공모 물량이 시장에서 소화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임원은 또 "기관 수요예측 경쟁률이 수천대 1에 달했을 때는 '허수 청약'이었던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실수요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 벤처캐피털(VC) 대표이사 역시 "내년 금융 시장이 지금보다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지 않냐"며 "지금 수요예측 경쟁률이 낮은 회사가 이번에 철회하고 나중에 다시 수요예측에 나선다 한들, 상황이 드라마틱하게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