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랜드의 유동화기업어음(ABCP)발 자금 경색으로 금융 시장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기업어음(CP) 금리는 4%를 넘었고 국채와 우량 회사채 간 금리 차(스프레드)는 약 1.3%까지 벌어졌다.

‘돈맥경화’에 대한 공포가 시장을 뒤덮고 있으나, 증권 전문가들은 사태의 조기 해결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일부 기관의 문제일 뿐, 시스템리스크(개별 금융회사의 손실이 다른 금융사의 손실로 전이되고 금융시장 전체의 변동성이 확대될 위험)까지 번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낙관적 시각이 우세하다.

레고랜드 호텔 (레고랜드 코리아 제공) 2022.6.16/뉴스1

2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날 3개월 만기 CP 91일물 금리는 4.25%로 마감했다. CP 금리는 지난 19일 4.02%를 기록했는데, 4%를 넘은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였던 2009년 1월 28일 이후 13년 9개월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신용스프레드(3년물 AA-등급 회사채 금리에서 국채 3년물 금리를 뺀 값)도 점점 벌어지고 있다. 20일 기준 신용스프레드는 1.27%포인트로, 한 달 전(1%포인트)과 비교해 27bp 확대됐다.

이른바 ‘레고랜드 사태’는 강원도가 지급 보증을 약속했던 ABCP가 부도 처리되며 단기자금 시장이 경색된 사건이다. 레고랜드 건설을 위해 설립된 특수목적법인(SPC)이 부동산 PF 대출을 기반으로 2050억원 규모의 ABCP를 발행했는데, 만기(9월 29일)가 다가오자 차환을 하는 대신 기관 투자자들에 대출채권 상환이 불가능하다고 통보한 것이다.

지방자치단체(강원도)가 지급 보증을 서 국고채나 다름 없는 기업어음(CP)마저 신뢰할 수 없다는 우려가 확산되자, 위기감은 금융시장 전반에 퍼지게 됐다. CP와 회사채 금리가 치솟았고 기업들의 자금조달 창구가 사라질 것이라는 공포가 커졌다. 업계 일각에서는 부동산 PF에 손댄 증권사들이 연쇄 부실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다올투자증권과 한양증권은 매각설까지 나오며 회사가 직접 금융감독원 단속반에 신고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큰 후폭풍 없이 이른 시일 내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시스템리스크의 가능성까지 논할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상무)는 “레고랜드 사태에서 지급보증 및 신용보강을 한 주체는 모두 증권사들이다”라며 “시스템리스크의 핵심은 은행인데, 은행 자금 조달의 안정성에는 별 지장이 없는 상황인 만큼 개별 기관들의 문제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정 상무는 이번 사태가 증권사들의 유동성이 유독 부족한 시기에 발생해 타격이 더 컸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ABCP는 만기가 도래할 때마다 롤오버(만기 연장)를 해야 한다. 새로운 투자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신용보강을 맡은 증권사 등이 부족한 자금을 채워야 한다.

그런데 레고랜드 사태로 ABCP 시장 전반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됐고, ABCP 금리를 대폭 끌어올려서라도 새로운 투자자를 찾아 나서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지난달부터 신용등급 AAA의 은행들이 금융채를 대량 발행해 시중자금을 빨아들인 것도 유동성 축소에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여러 악재가 겹쳐서 발생한 사태일뿐, 시스템리스크로 번질 만한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정 상무는 “정부가 문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단기간 유동성의 고리를 조금만 이완해주면 사태 확산을 막을 수 있는 상황”이라며 “특히 지자체에서 지급보증을 선 만큼, 채권안정기금(채안기금)을 투입할 명분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가 1조6000억원 규모의 채안펀드 가동, 추가 캐피탈콜뿐 아니라 여러 추가 조치를 내놓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경록 신영증권 연구원은 “채안펀드의 신속 가동, 은행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 정상화의 6개월 유예 등 조치가 나오고 있지만, 한번 무너진 투자 심리를 되돌리기 위해서는 좀 더 강력한 추가 안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설명했다.

2020년 초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처럼 적격담보증권의 전향적 확대 조치를 취하는 한편 단기자금 시장의 안정을 위해 증권사 유동성을 세심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이 연구원은 덧붙였다.

앞서 한국은행은 유동성 확대를 위해 2020년 5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은행채 및 한국전력·한국토지주택공사·한국가스공사 등 9개 공공기관이 발행한 채권을 대출 적격담보증권에 포함하는 조치를 시행한 바 있다.

이화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 팬데믹 직후와 같이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를 통한 저신용등급 회사채 직매입 등 추가 지원 방안을 재가동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은기 삼성증권 연구원은 “올 연말(11~12월) 예년의 2배 규모 CD의 만기가 도래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단기자금 시장 안정을 위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증권사 유동성 공급과 일반기업의 CP 매입이 선행돼야 하며, 이번 회사채·CP 매입 프로그램 지원 대상에서 빠져있는 여전채에 대한 차환도 지원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