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 중소 벤처캐피털(VC)들이 신규 펀드 결성에 난항을 겪고 있다. 모태펀드(정부 부처에서 출자해 조성하는 펀드로, VC의 벤처 펀드에 재출자된다)로부터 시드머니를 받아도 다른 출자자(LP)를 모집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금리 인상으로 유동성이 축소된 데다 정부가 모태펀드 예산을 대폭 삭감하며 LP들의 투자 심리가 위축되는 분위기다.

이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정부의 출자금이 LP로부터 자금을 조달하기 수월한 대형 VC로 쏠리는 편중 현상이 심해질 것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전망한다. VC들 사이의 양극화가 심해지면 최악의 경우 신생 투자사들이 줄줄이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3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최근 VC들이 모태펀드 출자 사업 대상으로 선정되고도 정해진 기한 내에 펀드 결성을 하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모태펀드란 '자(子)펀드'에 투자하는 '모(母)펀드' 개념이다. 정부가 일정 금액을 출자해주고, VC는 이를 토대로 나머지 LP들을 모아 벤처펀드를 결성해 스타트업 투자 자금으로 활용한다.

중소벤처기업부와 한국벤처투자는 지난 3월 4일 모태펀드 1차 정시 출자 사업을 통해 1조3181억원 규모의 벤처 펀드 운용사들을 선정했다. 총 81개사가 신청한 결과 그 중 28개사가 선발됐다.

이들은 정해진 펀드 결성 기한(3개월)에 더해 3개월을 추가로 부여 받았는데, 오는 9월 4일 이 기한이 최종 만료된다. 그런데 최종 기한이 나흘 밖에 남지 않은 현재까지도 다수의 운용사들이 펀드를 결성을 완료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벤처투자 관계자는 "선정 후 3개월까지는 자진 반납이 가능하나 3개월을 연장한 현 상황에서는 스스로 자격 반납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기한 내에 펀드를 결성하지 못하면 향후 1년 간 모태펀드 출자 사업에 참여할 수 없다는 패널티가 부여된다. 다만 자진 반납을 택할 경우에는 이 패널티를 피할 수 있다.

일부 VC의 펀드 결성이 어려워진 이유는 모태펀드 출자 사업에 선정되더라도 나머지 LP를 모으는 데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VC는 보통 모태펀드의 시드머니를 받은 뒤 연기금이나 공제회, 은행, 증권사 자기자본투자(PI) 사업부, 캐피털 업체 등으로부터 추가 자금을 출자 받아 펀드를 결성한다.

한 VC 관계자는 "은행과 증권사의 경우 금리가 오르고 있으니 벤처펀드에 출자하는 대신 인수금융을 통해 돈을 버는 게 훨씬 낫고, 캐피털은 금융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해서 벤처펀드에 출자해야 하는데 금리 부담으로 조달이 매우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모태펀드 같은 정책자금은 LP를 모을 여력이 되는 대형 VC나 규모가 작더라도 트랙레코드(과거 투자 이력)가 좋은 일부 VC에 몰릴 수밖에 없다.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연기금이나 공제회의 돈도 대형 VC에 편중될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현상이 지속된다면 최근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신생 중소형 VC들은 존속이 어려울 수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으로 국내에 등록된 창업투자사는 총 220개에 달한다. 2020년 말(165개)과 비교해 55개나 증가한 것이다.

한 VC 임원은 "일부 VC는 개업하고 펀드를 한 개도 못 만들어본 채 문을 닫을 수도 있다"며 "재작년부터 시장이 워낙 과열돼서 VC가 비정상적으로 늘었던 것이지, 지금 같은 하락기에는 이 같은 구조조정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LP가 출자를 꺼리는 것이 벤처·스타트업 육성에 대한 정부의 미온한 태도 때문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전 정부에서는 중소 벤처기업을 육성하겠다며 여러 정책을 내놨는데, 이번 정부는 창업 투자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다"며 "내년 모태펀드 예산도 올해와 비교해 40%나 줄었는데, 어떤 은행이나 증권사가 발 벗고 나서 출자를 하려 하겠냐"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