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반도체 대장주 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000660)가 낙폭을 거듭하면서 투자자들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올해 주식시장이 하반기로 접어든 가운데 국내 증시를 이끄는 대형 반도체주의 회복 시기가 늦춰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회계 부정·부당합병' 관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4일 삼성전자는 전날보다 900원(1.60%) 오른 5만71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삼성전자 주가는 장중 한때 5만5700원까지 떨어지며 52주 신저가를 기록했지만 반등하며 낙폭을 만회했다. 지난 5월 말 기준 6만7400원이었던 주가는 지난달 중순에는 5만원대로 하락했다. 6월 한 달 기준 주가 등락률은 -15.4%다.

최근 인플레이션, 금리 인상에 따른 경기 침체 우려로 국내 증시가 전반적으로 부진했던 만큼 시가총액 상위 종목인 반도체주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달에만 코스피지수는 13.2% 떨어졌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특수한 경제 구조, 원화 약세 등이 해외 주요 지수 대비 저평가로 이어졌다.

실제 외국인 투자자의 ‘셀 코리아’(순매도)는 계속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지난달 한 달 동안 유가증권 시장에서만 5조3813억원을 팔아치웠다. 이때 외국인 자금은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빠져나갔는데, 그 규모는 3조5509억원으로 집계됐다. 비율로 보면 66% 수준이다.

여기에 하반기 반도체 업황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이 더해지며 삼성전자 주가를 한층 더 끌어내렸다. 통상 경기 침체 우려는 PC, 스마트폰, 노트북 등 반도체가 필요한 IT 제품에 대한 구매력을 둔화시킬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 번진다. IT 제품 수요 악화가 반도체 재고 증가와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스포드는 올해 3분기 D램 가격이 전분기보다 평균 3~8%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글로벌 D램 시장에서 국내 반도체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70%를 웃돈다. D램 가격이 하락은 점유율 1, 2위에 이름을 올리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실적에 악재가 될 수밖에 없다.

같은 날 SK하이닉스는 전날보다 1600원(1.83%) 오른 8만91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삼성전자와 마찬가지로 장중 주가는 8만6300원까지 떨어지며 신저가를 새로 썼다. 지난 1일 SK하이닉스는 지난달 23일 이후 6거래일 만에 9만원대 아래로 밀렸다. 6월 한 달 동안 주가는 15.7% 하락했다.

최근 반도체 업황의 풍향계 역할을 하는 미국 반도체회사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는 부진한 실적 전망을 내놨다. 30일(현지 시각) 마이크론은 다음 분기(6~8월) 매출이 72억달러(한화 9조3000억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기존 시장 전망치(91억5000만달러)를 20% 이상 밑도는 수치다.

반도체 기업들에 이익 전망치에 대한 기대가 낮아지면서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목표주가를 연달아 하향 조정했다. 유진투자증권(8만8000원→7만9000원), 다올투자증권(8만8000원→7만7000원), NH투자증권(8만7000원→7만8000원)은 삼성전자 목표가를 7만원대로 제시했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금리 인상, 유럽 전쟁, 중국 봉쇄 등 매크로(거시경제) 영향으로 IT 제품 수요가 둔화하고 있다”며 “당초 하반기부터 시작될 것으로 예상한 메모리 반도체 수급 개선이 내년 초로 지연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주요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최근 판매 부진으로 인한 재고 축소를 위해 부품 구매를 줄이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점점 높아지는 금리가 결국 누적돼 하반기 후반부터는 세계 경제에 더욱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아직까지는 주로 소비자 수요 둔화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기업들의 투자 계획에 대한 의구심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기 침체 우려를 반영해 올해와 내년 삼성전자 영업이익 추정치를 각각 4%, 18% 하향 조정했다.

다만 일각에선 삼성전자 주가가 장기 투자를 위한 저점 매수가 가능한 가격대에 진입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최근 삼성전자가 최저 주가 수준으로 떨어졌을 당시 주가순자산비율(P/B)은 1.14배를 기록했는데,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미중 무역전쟁 등 과거 주가 급락기의 최저점 배수들의 평균치인 1.1배에 거의 근접한 수준이다.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만약 향후 삼성전자 주가의 락바텀(최저가)이 1.1배(5만5000원)에서 형성된다면 추가 하락률은 4%로 계산된다”며 “최악의 경우 역사적 최저 배수인 0.94배(4만7000원)에서 최저점이 형성된다면, 18%의 추가 주가 하락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반면 향후 경기 부양 효과 및 도시 봉쇄 해제에 따라 중국 IT 제품 수요의 전년동기대비 증감률이 상승 반전할 가능성이 있다”며 “중국 IT 수요 증감률은 역사적으로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와 가장 연관성이 높은 지표로, 삼성전자 주가가 베어마켓랠리에 진입하는 트리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