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자이언트 스텝’은 지난주 미국 뿐 아니라 국내 증시를 짓밟았다. 코스피지수는 19개월 만에 2500선과 2400선을 연달아 내줬다.
동학개미에게 꾸준하게 사랑받는 종목이자,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005930)도 처참히 무너졌다. 지난 17일 삼성전자는 전날보다 1.81% 내린 5만98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삼성전자가 6만원 아래에서 마감한 것은 2020년 11월 4일(5만8500원) 이후 19개월 만에 처음이다.
한때 ‘10만 전자’ 기대를 받던 삼성전자가 5만원 대로 내려앉자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기대와 원성이 섞인 논쟁이 오가고 있다. 주식 커뮤니티에는 ‘6만원 대일 때 저점인 줄 알고 샀는데 더 떨어졌다. 이제 물타기 할 돈도 없다’는 반응과 ‘지금이 바겐세일 기간인 것 같아서 더 사뒀다. 그래도 삼성전자인데 언젠가는 오르지 않겠냐’는 반응으로 나뉘고 있다.
삼성전자 주가는 올해 들어서만 24% 하락했다. 6개월 만에 주가 4분의 1이 날아간 것이다. 이 기간 시가총액만 113조원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그래도 삼성전자는 간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주가 그래프가 우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음에도 개미들은 연초부터 계속해서 삼성전자에 베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개장 날(1월3일)부터 이달 17일까지 개인은 삼성전자 주식 14조4184억원 어치를 순매수했으며, 삼성전자는 이 기간 개인의 순매수 종목 1위에 올랐다.
반면, 외국인은 포트폴리오에서 삼성전자를 지우고 있다. 같은 기간 외국인은 삼성전자 주식을 8조90억원 어치 순매도했다. 이에 외국인의 삼성전자 지분 보유율은 6년 만에 50%를 하회했다. 지난 17일 기준 외국인의 삼성전자 보유율은 49.97%로 기록됐다. 외국인 보유율이 50% 미만으로 떨어진 것은 2016년 4월28일(49.59%) 이후 6년 만에 처음이다.
증권가에서는 글로벌 경기침체 현상을 이유로 최근 잇달아 삼성전자 목표 주가를 하향 조정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금의 매크로(거시경제) 환경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전대미문의 상황”이라면서 “점점 높아지는 금리는 결국 누적돼 올해 하반기 후반부터는 세계 경제에 더욱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수요 둔화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시간이 갈수록 기업들의 투자 계획에 대한 의구심이 커질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김장열 상상인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이익 전망은 단기적으로 주가에 아무 소용이 없다”면서 “인플레이션이 지속되고 소비가 예상보다 빠르게 축소되면 일시적으로 큰 폭의 주가 하락이 일어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삼성전자 주가가 최대 5만3000원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목표가는 낮췄지만 현재 주가는 이미 선반영됐다면서 매수를 추천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전자의 실적은 계속해서 견고하다는 이유에서다.
20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들은 올해 2분기 삼성전자 평균 매출과 영업이익을 각각 78조4510억원, 15조2820억원으로 전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했을 때 각각 23%, 22% 증가한 금액이며, 매출은 분기 기준 역대 최고 기록이다. 앞서 삼성전자는 1분기에도 역대 최고 분기 기록을 달성한 바 있다.
어규진 DB금융투자 연구원은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따른 경기침체 우려로 삼성전자 주가는 52주 신저가를 기록하고 있으나, 데이터센터 중심의 견조한 수요로 삼성전자 실적은 좋은 상황”이라면서 “현재 삼성전자 주가는 어려운 업황을 선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민희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삼성전자 주가 급락은 급격한 금융긴축 이후의 경기침체 리스크까지 선반영하는 과정으로 보인다”면서 “주가는 5만원 이하로는 하락하지 않을 것이며, 현재 저점 매수 전략을 취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1년 8개월 만에 다녀온 12일 간의 유럽 출장을 마치고 지난 18일 귀국했다. 이 부회장은 귀국 후 만난 취재진에게 “시장의 혼동과 불확실성이 많은데, 우리가 할 일은 좋은 사람을 모셔오고 유연한 문화를 만드는 것”이라며 “그 다음에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첫 번째도 기술, 두 번째도 기술, 세 번째도 기술 같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강조한대로 반도체와 배터리, 전장 등 사업 분야에서 삼성의 기술력 강화 움직임이 앞으로 거세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