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김소영(가명·30)씨는 최근 핸드폰에서 증권사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애플리케이션(앱)을 삭제했다. 지난해부터 보유 중인 국내 주식 손실 규모가 연초 이후 만회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불어났기 때문이다. 김씨는 "몇 달 만에 주식 잔고를 확인했다"며 "당분간은 묻어두고 잊는 편이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발(發) 인플레이션 쇼크로 주식시장이 변동성을 키우면서, 김씨와 같은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선 관조적인 분위기가 생겨났다. 당장 손실을 보고 매도하거나 물타기로 불리는 분할매수를 하기보다 장기적으로 묻어두는 게 수익률 방어에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주식 투자에 나선 개인들은 시가총액 상위주를 중심으로 매수에 나섰다.

일러스트=이은현

1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주식시장의 시총 상위 30개 종목 가운데 14일 종가 기준 지난해보다 주가가 오른 종목은 하나금융지주(086790)S-Oil(010950)(이하 에쓰오일) 2개 뿐이다. 우선주와 상장 기간이 5년이 안 된 종목은 집계 대상에서 제외했다. 하나금융지주와 에쓰오일은 각각 0.6%, 15.6% 상승했다.

연초 이후 글로벌 시장이 전반적으로 매크로(거시경제) 불확실성에 변동성을 키우는 가운데 국내 증시가 유독 부진한 흐름이다. 올해 들어 전날까지 코스피와 코스닥지수는 각각 16.3%, 20.3% 하락했다. 같은 기간 아시아 증시 중에서 가장 큰 낙폭으로, 홍콩 항셍지수(-10%), 중국 상하이종합지수(-9.6%), 일본 닛케이지수(-7.5%) 모두 국내 증시와 비교하면 선방했다.

개인들의 투자심리도 한 해 전보다 위축됐다. 지난 1월 3일부터 전날까지 개인은 시장에서 26조7137억원을 순매수했다. 같은 기간 외국인과 기관이 각각 17조원, 9조원 이상 순매도한 것과 대조적이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58조8170억원)과 비교하면 그 규모는 절반이 넘는 54.6% 감소한 수준이다. 당분간은 시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겠다는 관망세가 짙어진 것으로 풀이됐다.

실제로 지난달(1~30일) 유가증권 시장 시총 회전율은 8%대로 떨어지며, 28개월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시총 회전율은 거래대금을 평균 시총으로 나눈 값으로, 주식 거래가 얼마나 활발히 이뤄지는지를 보여준다. 수치가 클수록 거래가 활발하다는 뜻이다. 코스피 시총 회전율은 지난해 1월 정점(24.87%)을 찍고, 23개월여 만인 지난해 12월 한 자릿수인 9.88%로 떨어졌다. 연초 이후에도 9~10%대를 오르내렸다.

그러나 과거 주가 추이를 보면 시총 상위 30개 종목 중 5년 전과 비교해 주가가 상승한 종목은 절반 수준인 16개 종목(53.3%)에 불과했다. 이 중 2개 종목은 상승률이 5% 미만으로, 사실상 변동이 없었다. 해당 기간 내 액면분할을 실시한 삼성전자(005930), NAVER(035420)(이하 네이버), SK텔레콤(017670)의 경우 액면분할 전 주가에 분할 당시 비율을 적용했다.

2017년과 비교해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종목은 삼성SDI(006400)로 5년 전과 비교해 약 252.8% 뛰었다. 뒤이어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222%), HMM(011200)(212.8%)가 200% 넘게 상승했다. LG화학(051910)은 100.7% 올랐고, 기아(000270), 삼성전기(009150), SK하이닉스(000660)는 순서대로 94.5%, 75.1%, 67.1% 올랐다.

절반에 가까운 나머지 14개 종목은 5년 전보다 오히려 주가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낙폭이 큰 종목은 한국전력(015760)으로 주가가 48.5% 빠졌고, 뒤이어 삼성생명(032830)LG생활건강(051900)이 각각 46.8%, 33.6% 하락했다. KT&G(033780), 카카오(035720), 두산에너빌리티(034020)(전 두산중공업), 현대모비스(012330)는 20% 넘게 하락했다.

다만 증권가에서는 장기투자에 대한 기준이 투자자마다 다를 뿐만 아니라, 과거 주가 추이만을 토대로 미래 주가를 예측하긴 어렵다는 시각이다. 기술적인 통계를 기반으로 접근하는 퀀트 같은 투자 기법도 있긴 하지만, 통상 주가는 기업 실적, 밸류에이션(평가 가치)로 정해지고, 시장 안팎의 여러 변수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래 주가를 전망하는 다양한 방식이 있고, 각자마다 유효한 지점이 다르다"면서도 "주식 투자라는 것은 주가라는 가격 그 자체가 아닌 기업 가치에 베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단순히 5년 전과 지금의 주가만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윤 센터장은 "당장 투자자들이 주가 예측을 위해 가장 주시해야 할 변수는 물가"라며 "시장이 예상했던 것보다 인플레 기대심리가 급격하게 움직이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주식의 가치를 결정하는 요인은 크게 기업의 잉여 현금 흐름과 할인율인데, 현재 물가가 할인율에 크게 반영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