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톤브릿지벤처스는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만한 스타트업에 두루 투자한 벤처캐피털(VC)이다.

부동산 중개 플랫폼 업체 직방에 2014년부터 지속적으로 투자했는데,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최근 회사의 기업가치는 당시와 비교해 약 180배 높은 2조원까지 오른 상태다. 지난해 몸값 1조원을 인정 받고 카카오에 매각된 여성복 쇼핑 플랫폼 ‘지그재그’, 커플용 애플리케이션(앱) ‘비트윈’ 개발사로 시작해 현재는 차량 공유 플랫폼 쏘카에 인수돼 상장을 바라보고 있는 VCNC도 일찍이 스톤브릿지벤처스의 선택을 받은 유니콘(기업 가치가 1조원 이상인 비상장사)들이다.

4년 째 회사를 이끌고 있는 유승운 대표이사는 소위 ‘메이저’ VC 두 곳의 수장을 잇달아 역임한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지난 2015년부터 카카오벤처스(옛 케이큐브벤처스)의 대표이사를 맡았으며, 2019년에는 스톤브릿지벤처스로 적을 옮겼다. 카카오벤처스 전에는 타임와이즈인베스트먼트(옛 CJ창업투자)와 소프트뱅크벤처스, 솔마인유한회사를 거쳤다. 덕분에 VC 업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마당발’로도 유명하다.

유승운 스톤브릿지벤처스 대표이사. /스톤브릿지벤처스 제공

지난 달 27일, 서울 역삼동 스톤브릿지벤처스 본사에서 유 대표를 만났다. 운용자산 1조1000억원의 대형 VC를 이끌고 있는 그는 보기 드문 열정과 활기를 지닌 CEO였다. 인터뷰 도중 개념 설명이 필요할 때는 돌연 자리에서 일어나 화이트보드 앞에 서 그래프를 그리며 ‘일타 강사’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틈틈이 회사에 대한 자랑과 넘치는 애정도 아끼지 않고 표현했다.

유 대표는 올해 스타트업 시장의 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VC 대표들의 전망에 동참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정국에서 몸값이 크게 오른 비대면 플랫폼이 더 큰 폭으로 조정 받을 가능성이 있다며, 올해는 인공지능(AI) 기술을 적극 활용하는 스타트업과 반도체 및 2차전자 관련 기업, 디지털 헬스케어 및 치료제를 만드는 스타트업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해 투자 성과를 간략히 소개한다면.

“한해 동안 투자는 1600억원 집행했으며, 2000억원을 회수했다. 먼저 벤처 펀드 2개를 청산해 좋은 성적을 냈다. ‘미래창조네이버스톤브릿지초기기업투자조합’이 250억원으로 결성돼 총 858억원을 회수했다. 내부수익률(IRR)은 33.3%를 달성했다. 특히 ‘배달의 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을 통해 9.1배 수익을, 부동산 거래 플랫폼 업체 직방을 통해 11.5배의 수익을 냈다. 원티드랩과 펄어비스를 통해서는 각각 16.4배, 7.1배의 투자 수익을 올렸다.

지난해 4월 중소기업벤처부에서 발표한 2016~2020년 벤처 펀드 청산 실적을 살펴보면, 이 기간 누적 회수금 총액과 개별 펀드의 수익률에서 우리 회사가 모두 1등을 차지했다. 4~5년 간 투자를 잘 해뒀기 때문에 좋은 성과를 냈다고 생각한다.

M&A를 통한 엑시트(투자금 회수)도 활발했다. 스타일쉐어가 무신사에 인수되며 6.5배 수익을 안겨줬고, ‘지그재그’를 운영하는 크로키닷컴은 카카오스타일에 팔리며 11.3배 수익을 냈다. AI를 이용해 맞춤형 뉴스를 추천해주는 스타트업 데이블은 야놀자에 인수돼 7.7배 수익을 가져다줬다.

올해는 펀드 2개를 청산할 계획이다. 펀드 한 개는 400억원 규모인데 이미 900억원을 출자자(LP)들에게 분배해줬고, 여전히 두나무 지분이 남아 있어 높은 수익률이 기대된다. 또 다른 펀드는 직방에만 투자하기 위해 결성한 프로젝트 펀드다. 차량 공유 업체 쏘카도 상장을 앞두고 있어 상당히 높은 수익률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요즘은 어떤 산업을 눈여겨보고 있는지.

“먼저 AI를 기반으로 한 기술 기업을 많이 검토하고 있다. 내가 카카오벤처스에 근무하던 2015년 회사에서 루닛(AI 기반 질병 진단·치료 스타트업)에 투자한 적이 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AI 알고리즘을 이용해 엑스레이에서 암을 판독해내는 것이 굉장히 혁신적인 기술이었다. 그러나 7년이 지난 지금은 AI 기술이 많이 상용화·보편화됐다. 사회 및 경제 분야 전반에서 보다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스톤브릿지에 와서 투자한 회사 중에는 노타라는 곳이 있다. AI 엣지 컴퓨팅 기술을 보유한 업체다. 도로 교통량을 분석해 특정 도로가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붐비는지 예측하고, 신호등이 교통량에 맞춰 최적화돼 작동될 수 있도록 한다. 상용화만 된다면 교통 흐름을 크게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원프레딕트라는 회사에도 투자했다. 이 회사는 발전소 등에서 가동되는 터빈의 부속품이 내는 소음을 분석해, 해당 부속품을 언제 교체해야 할지 예측하는 기술을 제공한다.”

인공지능(AI) 기술을 기반으로 도로 통행량을 분석하는 노타의 엣지컴퓨팅 기술. /노타 제공

AI 기술 기업 외에 또 유망한 회사는.

“디지털 치료제 및 헬스케어 관련 기업을 유망하다고 본다. 디지털 치료제의 대표적인 예로는 치매의 전조증상을 살피고 병의 경과를 최대한 늦추거나 억제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우리가 투자한 이모코그가 그런 사업을 한다. 디지털 애플케이션(앱)을 통해서 뇌의 시냅스를 자극하는 치료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지난 한해 동안 이모코그를 포함해 3~4개 디지털 치료제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마인즈AI라는 회사는 우울증과 소아 난시를 치료하는 기술을 보유했다. 우리나라는 특히 인터넷 네트워크가 잘 발달돼있고 디지털 기기 사용률이 높아, 디지털 치료제가 발전하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사실 스톤브릿지벤처스는 원래 인터넷 플랫폼의 강자 아닌가. 헬스케어와 AI 같은 기술 기반 스타트업에 많이 투자하는지 몰랐다.

“다른 메이저 VC들에 비해서는 바이오나 기술 기업에 투자를 많이 안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3~4년 전부터는 좋은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에 초기 투자해 육성하는 일을 활발히 하고 있다.

반도체와 2차전지 같은 기술 분야도 열심히 살펴보고 있다. 일례로 가온칩스는 삼성전자의 가장 큰 디자인하우스(팹리스 회사에서 설계한 반도체를 파운드리 업체에서 잘 제조할 수 있도록 설계를 최적화하는 기업) 협력사다. 대만 TSMC와 가장 협업을 많이 하는 디자인하우스도 대만 증시에 상장돼있듯, 가온칩스도 상장을 추진 중이다. 현재 한국거래소의 상장 예비심사를 통과해 다음 단계를 기다리고 있다.

그 외에도 엣지컴퓨팅에 관련된 지적재산권(IP) 라이선싱 업체 오픈엣지테크놀로지, 2차전지 분리막을 만드는 에너에버배터리솔루션에도 투자했다.”

초기 투자한 쏘카가 연내 상장을 앞두고 있지 않나. 동종 업계에서는 최초의 기업공개(IPO) 사례라 부담이 있을 것 같은데(’카카오T’를 운영하는 카카오모빌리티는 연내 상장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특정 분야에서 가장 먼저 상장하는 것은 유리한 일이다. 동종 업계의 다른 기업이 먼저 상장한다면, 해당 기업은 자연스럽게 쏘카의 비교기업이 돼서 몸값을 산정하는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먼저 상장해서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는 것이 낫다.”

올해 스타트업 시장의 전망은 어떻게 보는지. 미국과 우리나라 등이 본격적인 긴축에 돌입하며 시장이 조정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많이 나온다.

“VC 업계에 20년 이상 종사한 사람들은 대부분 큰 굴곡을 한두번 이상 경험해봤다. 마지막에 투자 받은 몸값보다 낮은 기업가치로 상장하는 사례도 많이 봤다. 이번에도 어느 정도 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에서 ‘드라이파우더(투자 재원)은 굉장히 많지만 그 드라이파우더가 모든 스타트업을 살려주지는 못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고 한다. 의미심장한 말이다. 예전 같으면 4~5위 기업에도 투자금이 들어갔다면, 이제는 1~2등을 제외한 나머지 회사들은 쳐다도 보지 않는 VC가 늘어날 것이다.

다만 업종에 따라 조정의 편차는 있을 것이다. 단기간에 몸값이 급상승한 업종일수록 그만큼 많이 조정 받을 것이다. 지금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어느 정도 끝나가다보니 벌써 미국에서 음식 배달이나 밀키트 사업을 하는 회사들의 주가가 하락하고 있다. 특히 차입을 통해 몸집만 키우고 이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들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반면 에어비앤비 같은 여행 관련 기업의 주가는 얼마나 오르겠나.”

디지털 헬스케어나 AI 기술과 관련된 기업은 조정을 덜 받을까.

“상대적으로 호흡이 긴 산업이기 때문에 단기 조정은 덜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 오히려 밸류에이션(기업 가치 대비 주가 수준)이 하향 조정되면 VC 입장에서는 더 편하게 투자할 수 있을 것이다.”

VC 입장에서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면 어떤 회사에 투자해야 할까.

“아무래도 시장 지배력을 가진 회사가 안전할 수밖에 없다. 또 어려운 시기가 왔을 때 개선과 피봇(스타트업이 신제품을 출시 한 후 시장 반응을 보고 다른 사업 모델로 전환하는 것)을 빨리 할 수 있는 경영진이 있어야 한다.”

VC가 코인에 투자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 같이 라이선스를 갖고 있는 VC들은 코인에 투자하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금융당국이나 유관 기관에서 권고하는 사항은 아니다. 다만 암호화폐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들은 골고루 살펴보고 있다.”

기술의 발전 단계를 설명한 '하이프 사이클' 그래프. 유승운 대표는 NFT나 메타버스가 쇠락을 지나 다시 성장하기 시작하는 단계에 있다고 말했다. /위키피디아

암호화폐 산업에서도 특히 어떤 분야를 눈여겨보는지.

“NFT(대체불가능토큰·Non-Fungible Token)이 유망하다고 본다. 기술의 발전 단계를 보여주는 ‘하이프 사이클’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 사이클에 따르면,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이에 대한 기대감이 급격히 고조됐다가 열기가 빠르게 식는다. 이후 ‘계몽 단계’에 도달하면 더 많은 기업들이 해당 기술에 투자하며 시장이 점진적으로 재성장하고, 결국 ‘생산성 안정 단계’에 도달하게 된다.

지금 NFT는 열기가 한번 빠르게 식은 뒤 시장 상황이 다시 좋아지기 시작한 단계에 있다. 비트코인과 메타버스(가상세계)도 마찬가지다.”

메타버스는 코로나19 팬데믹 효과로 뜬 기술이 아닌가. 다시 인기를 얻을 수 있을까.

“메타버스의 인기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요즘 각광 받는 웹 3.0(개인이 블록체인 기술을 토대로 데이터를 직접 소유하고 수익화하는 구조)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 웹3.0에서는 내가 생산한 글이나 콘텐츠를 NFT로 만들어 원작으로서의 가치를 인정 받고 인용될 때마다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메타버스와 맞물려 구현될 수 있는 일이다.”

아직 시장에 투자 재원이 많은 만큼 VC들의 경쟁도 여전히 치열하다. 스톤브릿지가 가진 최고의 강점은 무엇일까.

“요즘 상위권 VC들은 대부분 비슷한 전략을 취한다. 초기 투자를 많이 해서 좋은 씨를 많이 뿌려놓고, 후속 투자를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다. 초기에 투자해 놓지 않으면 회사가 어느 정도 성장한 다음에는 투자 기회를 얻기 굉장히 어렵다. 좋은 씨를 더 많이 뿌리기 위해 초기 투자 전용 펀드도 결성했다. 지난해 2월 결성한 265억원 규모의 ‘스마트대한민국네이버스톤브릿지라이징투자조합’이다.

이 같은 전략을 계속 추진해 기업으로부터 가장 먼저 선택 받을 수 있는 ‘원픽’ VC가 되는 것이 목표다. 올해 실적은 작년보다 훨씬 더 좋을 것이다. 주주들에게도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