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자산시장에 퍼펙트 스톰(동시다발적 악재)이 불면서 공포가 커지고 있다. 물가가 고공 행진하는 한편 경기 둔화 신호는 나날이 강해지고, '매의 발톱'을 드러낸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놀란 투자자들은 신흥국에서 대거 이탈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 최대 컨테이너항인 상하이를 전면 봉쇄하며 물가를 지금보다 더 밀어 올릴 기세다.
세계은행은 이미 공식적으로 스태그플레이션(경기 둔화와 물가 상승)을 경고하고 나섰다. 1970년대 이후 반세기 만의 일이다. 끊이지 않는 겹악재에 우리 증시도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코스피지수가 올해 들어 12%나 떨어졌지만, 증시 전문가들은 당분간 반등은 어렵다는 비관론을 쏟아내고 있다.
◇ 하루 만에 4% 무너진 나스닥…"인플레이션이 가장 큰 문제"
27일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29.25포인트(1.1%) 내린 2639.06에 마감했다. 장중 한때는 2600선을 내줄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코스닥지수는 14.98포인트(1.64%) 내린 896.18로 마감했다.
이날 우리 증시에 '파란 불'이 들어온 이유는 지난 밤 미 뉴욕 증시의 급락에서 찾을 수 있다. 26일(현지 시각)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전날보다 514.11포인트(3.95%) 내린 1만2490.74에 마감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와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각각 2.81%, 2.38% 내렸다.
미 3대 주가지수는 올 들어 꾸준히 하락곡선을 그리고 있다. 특히 나스닥지수는 연초 이후 20% 넘게 떨어졌다. 전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 애플의 몸값은 3500억달러(약 442조원) 증발했다. 콜롬비아나 파키스탄의 국내총생산(GDP)과 맞먹는 수준이다.
미 증시를 둘러싼 악재들은 금방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먼저 인플레이션은 연일 고점을 경신하고 있다. 지난 12일(현지 시각) 미 노동부에 따르면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 8.5% 상승했다. 1981년 2월 이후 약 40년 만의 최대 상승폭이다. 부동산 가격 및 임대료, 대학 등록금 등이 치솟은 상태다. 임금 상승은 그 중에도 특히 심각한 문제다.
지난달 자본시장연구원 주최로 인터뷰를 진행했던 앤드류 레빈 다트머스대 경제학과 교수(전 연준 특별보좌관)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미국의 명목임금 상승률이 6.5%를 기록했으나, 인플레이션을 고려한 실질임금을 따져 보면 근로자들이 생활비를 겨우 감당하는 수준이라고 말한 바 있다. 치솟는 물가를 고려하면 임금 수준이 앞으로 더 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레빈 교수는 명목임금 상승률이 7~9%까지 오를 가능성도 염두에 뒀다.
최석원 SK증권 지식서비스부문장은 "인플레이션이 너무 높아 긴축을 해도 효과가 없는 지경까지 간다면, 이제는 경기도 같이 침체되는 최악의 상황이 나타날 것"이라며 "일단 물가가 안정돼야 경기의 연착륙도 함께 달성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용구 삼성증권 연구원도 "인플레이션이 고점을 지나 하락세로 돌아선다면, 미 연준도 통화 정책의 속도 조절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며 투자 심리 회복을 위해서는 물가의 진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지속되는 한, 미국의 통화 정책에 대한 공포는 완화되기 어렵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미국 증시 폭락의 직접적인 요인은 연준의 긴축이었기 때문에, 긴축과 관련된 불확실성이 해소돼야 투자 심리도 개선될 수밖에 없다"며 "5월 4일 FOMC를 앞둔 지금 시장에서 확인 할 것(지표나 시그널)이 없다 보니, 시장은 당분간 횡보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美 '자이언트 스텝' 우리 증시에 직격탄…스태그플레이션 우려도
연준의 긴축은 미 증시뿐 아니라 신흥국 증시에도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리고 채권 매입 규모를 줄여 전세계에 흩어진 달러화를 회수하면, 달러화 가치는 오르고 신흥국 통화 가치는 현 수준보다 더 낮아진다. 이는 우리나라와 중국 같은 신흥국에서의 외자 이탈을 가속화하는 요인이 된다.
당초 시장에서는 미 연준이 다음 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인상하는 '빅스텝'에 나설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봤다. 최근에는 0.5%포인트를 넘어 0.75%포인트를 올릴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우려에 신흥국 통화 가치는 대폭 하락한 상태다. 27일 장중 한때 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원·달러 환율)은 1260원을 넘었다. 위안·달러 환율은 약 8개월 만에 6.5위안을 넘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우리나라와 대만은 제조업 기반이 탄탄하기 때문에 브라질이나 터키처럼 통화 가치가 한없이 낮아질 위험은 없으나, 현재 환율 수준은 저점 이하로 내려간 상태라 향후 전망을 가늠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치솟는 물가와 더불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와 상하이·베이징 봉쇄로 인한 공급망의 차질은 글로벌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까지 키우고 있다. 28일 미국의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발표되는데, 시장에서는 전분기 대비 1%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4분기 성장률(6.9%)과 비교해 대폭 낮아진 수치다. 코로나19 유행 초기인 2020년 2분기와 비슷한 수준이다.
김학균 센터장은 "인플레이션 때문에 미국 내 소비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타났고, 여기에 중국의 봉쇄 장기화라는 악재까지 더해지며 경기 둔화 가능성이 점점 커지는 상황"이라며 올 하반기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경제를 위협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는 이미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신흥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행이 26일 발표한 올해 1분기 실질 GDP 성장률은 0.7%에 불과했다. 작년 4분기 성장률은 1.2%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현재 우리나라 수출의 28%를 차지하는 중국이 주요 대도시를 봉쇄하고 있는 만큼, 무역 흑자가 지탱해온 우리 경제는 현 수준보다 더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 "5월까진 자금 이탈 지속…中 봉쇄 해제, 반도체 업황 봐야"
증시 전문가들은 당분간 우리나라에서 외국계 자금이 계속 빠져나갈 가능성이 크다며, 보수적인 투자 전략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학균 센터장은 코스피지수가 다우지수와 비슷한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나스닥지수는 그간 지나치게 상승해 낙폭도 워낙 큰 만큼, 우리 증시가 나스닥과 동조화(커플링)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최석원 부문장은 "우리 증시는 지금 국내외 기관들의 대량 매도세에 맞서는 개인 투자자들 덕에 버티고 있다"며 "고물가 등 근본적인 핵심 악재가 사라지지 않는 한,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공포 매물이 쏟아지는 현 상황이 쉽게 나아지긴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화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지난해 우리 시장에서 국채를 약 40조원어치 샀는데, 지난 달부터 매수세가 확연히 줄어들고 있다"며 "글로벌 금융 시장이 불안정해지면 우리 시장에 투자할 여력이 작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대준 연구원은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해소된 다음에 주식을 사는 것이 좋으나, 현 시점에서 꼭 (투자를) 해야만 한다면 고배당주나 부채 비율이 낮은 기업에 보수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이자 비용이 높지 않거나 부채 비율이 낮은 기업을 골라 투자하는 것이 현 시점에서 가장 나은 선택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우리 증시의 반등 시점을 가늠하려면 중국의 대도시 봉쇄 해제, 반도체 업황의 개선 등을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다. 이르면 다음 달에는 일시적 반등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문남중 대신증권 연구원은 "우리나라와 대만 같은 아시아 공업 국가들은 반도체 업황 개선이 확인돼야 반등할 수 있을 것"이라며 "또 연준이 5~6월 기준금리 인상을 공식화하고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이 본격화한다면, 우리 증시도 상승 동력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도 "현재 국채 금리에는 인플레이션과 연준의 긴축 우려 등이 어느 정도 반영된 상태"라며 "중국의 셧다운 우려까지 해소된다면, 5~6월에는 '안도 랠리'가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