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증시가 인플레이션에 따른 경기둔화 공포와 주요 기업들의 실적 발표를 앞둔 경계감에 큰 폭 하락하면서 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000660) 등 국내 반도체 대장주에 대한 우려도 확산하고 있다. 특히 외국인들은 이달 들어서만 삼성전자를 3조원 가까이 순매도했다. 반도체 업황 우려에 대한 공포감은 미국 시장을 넘어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도 짓누르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반도체 기업의 주가가 안정을 찾고 반등하기 위해서는 거시경제 환경이 개선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2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국내 반도체 대장주인 삼성전자는 1100원(1.66%) 내린 6만5000원에 마감했다. 장중 6만4900원까지 떨어지며 52주 신저가를 새로 썼다. 올해 들어 삼성전자는 이날까지 약 17% 하락했다. SK하이닉스도 이날 2% 넘게 빠졌다. SK하이닉스 연초 이후 주가 하락률은 -17.2%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센터장은 “양호한 실적과 긍정적인 반도체 가격 전망에도 주가가 밀리는 건 경기가 둔화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며 “당장 주요 기업들의 실적 발표가 예정됐지만, 기업들의 괜찮다는 말보다 인플레이션이 안정될 수 있다는 구체적인 시그널들이 더 간절해 보인다”고 말했다.
최유준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국내 반도체주 실적 대비 밸류에이션이 낮다는 점에서는 대체로 이견이 없다”면서도 “반도체주 추세가 상승으로 전환되려면 경기 둔화 우려 등 매크로 변수가 사라져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올해 들어 매물을 쏟아내는 외국인의 의미있는 수급 변화가 나타날 때 주가가 반등 탄력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들어 이날까지 외국인이 국내 증시에서 가장 많이 순매도한 종목 1, 2위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다. 이 기간 외국인은 삼성전자 주식 2조9326억원어치, SK하이닉스 주식은 4474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반면 개인은 삼성전자를 4조 넘게 순매수했고, SK하이닉스도 7403억원 이상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인들이 계속 국내 반도체 기업 주식을 파는 것은 미국 시장에서 반도체 업황 악화와 관련이 크다. 26일(현지 시각)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전거래일보다 133.28포인트(4.38%) 내린 2909.12에 마감했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반도체 설계·공급·제조·판매 관련 기업 주가를 추종한다. 엔비디아, AMD, 인텔,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등이 주요 구성 종목이다. 이날 엔비디아는 11.14달러(5.6%) 하락한 187.88에 거래를 마쳤다. 연초 이후 거시경제의 불확실성이 부각되며 약세를 이어가던 엔비디아는 최근에는 그래픽칩(GPU) 수요 감소 우려 전망 등이 나오면서 낙폭을 확대했다. AMD는 6.1%, 마이크론과 인텔은 각각 4.34%, 3.27% 하락했다.
미국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가 급락한 것은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가 확산해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중국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주요 도시들을 봉쇄하면서 공급망 차질이 심화하고 있다. 이런 공급망 차질은 지금도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인플레이션(물가 인상)을 더욱 심화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한편 국내 반도체 기업의 올해 이익률 추정치가 너무 높게 산정돼 있어 향후 조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반도체주 이익률은 경기 사이클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며 “애널리스트들이 제시한 올해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률은 30%에 달한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사이클이 둔화할 때 이익률이 꺾이지 않은 적이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다소 높게 추정됐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