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반도체 기업 주가가 부진한 흐름을 이어가는 가운데 반도체 봄날에 대한 투자자들 기대감은 커지고 있다. 이달 들어 국내와 미국 증시에서 반도체주는 개인투자자가 가장 많이 베팅한 종목에 이름을 올렸다. 각각 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000660), 엔비디아, 디렉시온 데일리 세미컨덕터 불 3X 상장지수펀드(ETF)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에 삼성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 News1

2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2일 삼성전자는 전날보다 700원(1.03%) 내린 6만7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달 말 7만원대 아래로 떨어진 삼성전자는 이달 들어 꾸준히 낙폭을 확대했다. 이후 18일부터 전날까지 4거래일 연속 반등했지만, 7만전자 회복은 여전히 요원한 상황이다. SK하이닉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주가는 연초 12만원 후반대였지만 22일에는 11만원대 초반(종가 11만500원)까지 하락했다. 이달에만 주가는 6.4% 빠졌다.

연초부터 계속되는 매크로(거시경제) 불확실성이 반도체주 주가를 끌어내리는 것으로 풀이됐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중국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까지 맞물리며 공급망 차질, 수요 감소 우려를 키우고 있다. 당장 실적은 좋지만 향후 반도체 가격이 하락할 수 있다는 전망에 약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다.

불안한 건 국내 뿐이 아니다. 21일(현지 시각) 엔비디아는 12.99달러(6.05%) 하락한 201.8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달 말(272.86달러)과 비교하면 26% 하락한 수준이다. 같은 기간 AMD는 17.8% 하락했다. 전날 엔비디아, AMD를 포함한 반도체 기업 주가를 추종하는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는 83.46달러(2.66%) 하락한 3058.74달러에 마감했다.

앞서 지난 11일(현지 시각) 미국 투자은행 베어드는 엔비디아에 대한 투자의견을 기존 '시장 수익률 상회'에서 '중립'으로 하향 조정했다. 목표주가는 360달러에서 225달러로 낮췄다. 트리스탄 게라 베어드 애널리스트는 "과잉 재고, 수요 둔화, 러시아 제재 등으로 소비자용 그래픽처리장치(GPU) 주문 취소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개인들은 국내·외 증시에서 반도체주를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이달 들어 전날까지 국내 증시에서 개인이 가장 순매수한 종목 1, 2위는 각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다. 그 규모는 각각 3조4009억원, 5993억원이다. 반면 외국인은 같은 기간 삼성전자를 2조4126억원, SK하이닉스를 4063억원 순매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증시에서 개인이 가장 많이 사들인 것 역시 반도체주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달 국내 개인투자자는 엔비디아와 디렉시온 데일리 세미콘덕터 불 3X ETF를 각각 5억7180만달러(한화 약 7099억원), 2억8181만달러(약 3499억원) 사들였다. 순매수 규모로 보면 해외 종목 1, 2위다. 디렉시온 데일리 세미콘던터 불 3X는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를 3배로 추종하는 ETF다.

그래픽=손민균

앞으로의 주가 향방에 대한 분석은 엇갈리고 있다. 당장 실적은 좋지만 업황이 둔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이 나오는 반면 악재는 이미 주가에 반영된 만큼 하반기부터는 본격적인 반등에 나설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올해 1분기 삼성전자를 비롯해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은 연달아 어닝 서프라이즈(깜짝 실적)를 이어가는 분위기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매크로 변수가 악화하면서 반도체 수요에 대해 긍정적이었던 전망이 부정적으로 바뀌고 있다"며 "메모리 현물 가격이 7주 연속 떨어지며 반도체 가격 하락 압력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공급차질 우려로 재고 비축을 위한 주문은 계속되고 있지만, 소비자들 세트 수요 둔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원은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은 하나 같이 기대 이상이지만, 주가도 하나 같이 약세"라며 "눈에 보이는 실적보다 아직 보이지는 않지만 느껴지는 경기 둔화 우려가 주가를 지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쟁, 인플레이션, 중국 봉쇄 등이 맞물린 불확실성이 동시에 제거되긴 어려워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일각에선 낙관론에 무게가 실렸다. 오강호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최근 반도체 시장은 수요 불확실성, IT 공급망 차질 등 외부 변수에 따른 우려가 지속되고 있다"면서도 "반도체 시장이 추세적인 하락으로 전환되기는 어렵다고 판단한다"고 했다. 그는 "견조한 서버 수요가 유지되고 동시에 제한된 공급 환경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네덜란드의 반도체 노광장비 제조기업 ASML을 분석하며 반도체 시장에 대한 긍정적 견해를 드러냈다. 박 연구원은 "ASML은 최근 실적 컨퍼런스 콜을 통해 높은 실적 성장률 가이던스(예상)를 유지했다"며 "수주 잔고 급증, 길어진 장비의 리드타임, 증설 계획 상향 등을 고려하면 반도체 중장기 수요 성장에 대한 시장 참여자들 우려가 지나치게 과도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