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외 주식시장에서 현대엔지니어링과 보로노이가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두 회사 모두 올해 상장을 추진하다 중도 철회했는데, 현대엔지니어링은 연내 상장이 물 건너간 상황임에도 당초 제시했던 희망 공모가 범위(밴드)와 비슷한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는 반면, 보로노이 주가는 밴드 하단에도 훨씬 못 미친다.
두 회사 모두 기업공개(IPO) 절차를 중단했지만, 증권가에서는 둘의 문제를 다르게 바라보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의 공모 철회는 HDC현대산업개발의 인명 사고 등 건설업의 일시적 악재 때문이었다면, 보로노이는 바이오 산업과 회사 자체의 펀더멘털(기초체력)에 대한 투자자들의 회의적 시각으로 공모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보로노이는 다음 달 기관 수요예측을 재실시하며 IPO에 다시 나서는데, 이 과정에서 밴드를 하향 조정하는 등 조치를 취할 것으로 증권 업계에서는 전망한다.
22일 비상장 주식 거래 플랫폼 증권플러스비상장에 따르면, 현대엔지니어링 주식은 지난 이틀 간 6만5000~7만1000원선에서 거래됐다. 매도호가는 8만5000원까지 나온 상황이다.
또 다른 장외 주식 거래 업체 38커뮤니케이션의 상황도 비슷하다. 이틀 간 6만9000~7만1000원선의 매도호가가 올라왔다. 매수호가는 6만5000원선으로 매도호가보다는 낮았지만, 현대엔지니어링에서 당초 제시했던 공모가 밴드(5만7900~7만5700원)의 중간 값에 해당되는 가격이다.
지난 1월 말 현대엔지니어링이 기관 수요예측을 실시했을 때 경쟁률은 100대1에 그쳤다. 연초 상장한 LG에너지솔루션(2023대1)은 커녕 지난해 부진한 성적을 낸 크래프톤(234대1)보다도 훨씬 저조한 수준의 '흥행 참패'였다. 이에 회사측은 "회사의 가치를 적절히 평가 받기 어려운 측면 등 제반 여건을 고려해 잔여 일정을 취소하고 철회신고서를 제출한다"고 밝혔다.
한국거래소의 예비심사 승인 후 6개월 안에(올해 6월 6일까지) 상장을 완료해야 하는 만큼 연내 IPO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임에도, 장외 주가는 회사 측의 희망 공모가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는 그만큼 기업의 펀더멘털에 대한 기대치가 높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앞서 현대엔지니어링이 밴드를 제시하기 전, 증권 업계에서는 회사의 예상 시가총액을 적게는 6~8조원, 많게는 10조원까지 추산한 바 있다. 공모가 밴드를 토대로 계산한 시가총액(4조6300억~6조500억)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현대엔지니어링의 기업 가치에 '프리미엄'을 반영해야 한다고 봤다. 회사는 IPO 과정에서 총 1600만주를 공모주로 내놓았는데, 그 중 75%인 1200만주가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과 정의선 회장이 보유한 구주 매출이었다. 이 때문에 오너 일가의 지분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평가 시가총액을 높게 산정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그 외에 2조원 규모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초소형모듈원전(MMR) 사업에 진출했다는 점도 현대엔지니어링의 펀더멘털에 유리한 요소다. 이 때문에 일부 증권 전문가들은 현대엔지니어링의 적정 시가총액을 경쟁사 삼성엔지니어링보다 2~4조원 높게 산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놓은 바 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현대엔지니어링은 기업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하필 수요예측을 진행하던 시기에 HDC현대산업개발의 인명 사고가 발생하며 덩달아 투자심리가 위축된 케이스"라며 "결국 기업가치가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라는 기대감에 아직 장외가가 쌀 때 미리 주식을 사두려는 수요가 많다"고 말했다.
현대엔지니어링과 달리, 지난달 공모를 철회한 약물 설계 업체 보로노이는 증권플러스비상장에서 공모가 밴드(5만~6만5000원)보다 한참 낮은 3만5000~3만8000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38커뮤니케이션에서는 4만~4만1000원 수준의 매도호가, 3만~3만8500원의 매수호가가 형성돼있다. 보유 주식을 4만원에 내놓은 한 주주는 "급전이 필요해 주식을 팔려 하는데, 더 낮은 가격을 원한다면 얼마든지 협의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보로노이는 앞서 '시장평가 우수 기업(유니콘) 특례 제도'로 상장 예비심사를 승인 받은 첫 번째 기업인데, 이 제도에 따르면 시가총액이 5000억원 이상인 기업은 전문 평가기관 한 곳에서만 A등급을 받으면 코스닥 상장 심사를 청구할 수 있다. 따라서 보로노이는 3만7500원 이상의 공모가를 인정 받아야 증시에 입성할 수 있는데, 기관 수요예측에서 저조한 경쟁률을 기록하자 공모 일정을 철회한 바 있다.
보로노이는 다음 달 기관 수요예측을 다시 실시해 공모가를 책정할 계획이다. 3만7500원 이상의 공모가를 인정 받기 위해서는 공모 규모를 줄이거나 공모가 밴드를 낮춰서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
보로노이에 투자한 벤처캐피털(VC) 관계자는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고 홍콩 증시가 폭락하던 때 수요예측을 실시하는 바람에, 많은 기관 투자자들이 참여할 겨를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보로노이의 투자 심리 악화가 일시적인 요인 때문은 아니라고 말한다. 증시에 상장한 바이오 기업들의 주가가 연일 하락하고 비상장 바이오 스타트업들은 한국거래소의 상장 예비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하는 만큼, 보로노이의 수요예측도 성공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닥시장 제약업종지수는 올 들어 16% 넘게 하락했다. 코스닥150 헬스케어지수는 같은 기간 24% 넘게 떨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에는 보로노이가 기술을 수출한 미국 바이오 기업이 최근 주요 파이프라인의 임상에 실패하며 투자자들의 우려가 가중되고 있다. 오릭파마슈티컬스는 지난 22일(현지 시각) 'ORIC-101′의 임상에 실패하며 개발을 중단했다. 보로노이는 지난해 10월 자체 개발한 항암제 후보물질 'ORIC-114′에 대한 라이선스아웃(기술 수출) 계약을 오릭파마슈티컬스와 체결한 바 있다.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보로노이의 장외 주가가 3만5000~3만8000원대에 형성된 것은, 회사가 향후 IPO에 성공한다 해도 상장 조건인 5000억원보다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 때문일 것"이라며 "보로노이가 공모가를 시가총액 조건(3만7500원)만 간신히 맞출 정도로 책정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에 보수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