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올인베스트먼트는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들에게 생소한 이름이다. 국내 5위권 벤처캐피털(VC)인 KTB네트워크의 새 사명으로, 지난 달 모회사인 다올투자증권(옛 KTB투자증권)과 함께 간판을 바꿔 달았다.
다올인베스트먼트의 뿌리는 1981년 정부 주도로 설립된 공기업 한국기술개발이다. 국내 최초의 VC인 셈이다. 1992년에는 한국종합기술금융으로 재편됐고, 1999년 권성문 전 회장이 인수한 후 민영화돼 KTB네트워크로 사명을 변경했다.
현재 다올인베스트먼트를 이끌고 있는 김창규 대표는 회사가 아직 공기업이던 1994년 합류해 역사를 함께 한 산 증인이다. 이른바 'KTB 오비(OB)'로 불리는 안상준 코오롱인베스트먼트 대표, 박희덕 트랜스링크인베스트먼트 대표, 정성인 프리미어파트너스 대표 등이 회사를 떠난 동안 한자리에서 약 30년을 근무해왔다. 지난해에는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하며 운용 자산(AUM)이 1조2000억원에 달하는 대형 VC의 수장이 됐다.
김 대표는 "벤처캐피털리스트는 훈수는 잘 둬도 사업가는 절대 못 된다"고 말하는 천생 투자가다. 400개 넘는 포트폴리오를 꿰고 있으며, 끝없이 신산업과 신기술을 직접 공부한다. 지난 7일, 경기 분당 판교의 다올인베스트먼트 사무실에서 김 대표를 만나 올해 스타트업 시장의 전망과 VC의 새 먹거리 등을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해 투자 실적을 간략히 소개한다면.
"벤처 펀드를 통해 1810억원을 신규 투자했고, 그 중 약 20%인 385억원이 해외 기업에 투자됐다. 회수 금액은 2864억원이었다. 투자원금 557억원에 대한 회수금이다.
특히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의 엑시트(투자금 회수) 성적이 좋았다. 앞서 2019년 우아한형제들이 독일 딜리버리히어로에 인수될 당시 절반은 현금으로, 나머지 절반은 딜리버리히어로 주식으로 회수했는데, 그 때 받았던 딜리버리히어로 주식을 작년 3월에야 완전히 청산했다. 투자원금은 총 23억원이었고, 약 30배의 수익을 냈다.
반도체 검사 장비 업체 넥스틴도 작년 회수 실적에 크게 기여했다. 이 회사는 재작년 상장했고, 지난해 보유 지분을 팔아 14배를 회수하는데 성공했다. 그 외에 산업용 로봇을 만드는 레인보우로보틱스를 통해서도 투자금의 4~5배를 회수했다. 아직 팔지는 않았지만, 홍콩 증시에 상장한 바이오 기업 칼스젠에도 1500만달러를 투자해 작년 말 기준으로 지분 가치가 약 10배 올랐다."
'토스'의 운영사 비바리퍼블리카에도 초기에 투자하지 않았나.
"4~5번에 걸쳐 112억원을 투자했다. 최초로 투자했을 때 기업 가치가 700억~800억원 정도 됐으니, 이를 기준으로 단순 계산하면 (희석을 고려하지 않고) 지분 가치가 100배 가까이 올랐다."
요즘 어떤 산업을 특히 관심 갖고 지켜보나.
"지난해까지는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 이커머스(전자상거래)와 엔터테인먼트, 바이오 산업에 많이 투자했다면, 올해의 화두는 메타버스(가상세계)와 NFT(대체불가능토큰·Non-Fungible Token) 등이다. 특히 저뿐 아니라 최근 젊은 펀드 매니저들도 메타버스에 관심이 많다. 가장 좋아하는 투자의 키워드가 뭐냐고 물으면 대부분 메타버스라고 답한다."
가상자산 생태계에서 특히 메타버스와 NFT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요즘은 '가상자산(Cryptocurrency)' 대신 '디지털 에셋(자산)'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디지털 에셋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탈중앙화'와 '웹3.0′이다. 플랫폼을 중심으로 중앙화된 시스템이 웹2.0이었다면, 웹3.0에서는 개인이 블록체인 기술을 토대로 데이터를 직접 소유하고 수익화한다. 디파이(Defi·탈중앙화 금융 서비스) 코인이 웹3.0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NFT는 웹3.0 시스템에서 개인이 디지털 자산을 교환할 수 있는 유일한 매개이자 화폐다. 우리나라는 위메이드(112040) 등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NFT 시장 발전을 위해 노력 중이다. 아직까지는 과세를 어떻게 할지에 대해 명확히 정해지지 않지만, 지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NFT에 대한 관심이 워낙 높은 만큼 규제 완화는 불가피한 흐름이라고 본다."
김 대표가 언급한 대로 정부 부처간 NFT 과세를 놓고 의견이 갈린다. 지난해 기획재정부는 NFT가 과세 대상이 아니라고 본 반면 금융위원회는 과세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분산과 탈중앙화가 디지털 에셋의 키워드라면, 그 안에서 VC가 투자할 만한 분야는.
"서로 다른 코인을 교환해 환전할 수 있는 '크로스체인'을 눈여겨보고 있다. 아직 누가 1등이 될 지 알 수 없는, 덜 성숙한 시장이라 매력이 크다. 현재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서나가는 업체가 인도 스타트업 폴리곤이다. 현재 기업가치가 14조~15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폴리곤에 투자는 하지 못했다. 그러나 풀리곤과는 협업해서 함께 다른 회사에 투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블록체인 경제를 활성화하려면 거래량을 많이 늘려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게임 등 여러 애플리케이션(앱)에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해야 한다. 현재 게임이나 앱 등에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는 회사에 폴리곤과 함께 투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 외에 국내에서 크로스체인 거래소를 만드는 스타트업에도 진지하게 투자를 검토 중이다. 어딘지는 말해줄 수 없다. 여러 곳에서 검토 중이라는 소문이 나면 우리가 투자할 기회가 없어질 수도 있으니까(웃음)."
디지털 에셋 외에 또 관심 있는 산업은.
"모빌리티 관련 산업에 관심이 많다. 우리는 이미 포티투닷(현대·기아차가 초기부터 투자한 자율주행 스타트업으로, 송창현 현대차 사장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의 첫 기관투자자로서 지분을 투자했고, 미국의 에어택시(도심항공모빌리티) 스타트업 조비에비에이션에도 3년 전에 투자했다."
조비에비에이션에 투자하게 된 계기는.
"지금 전세계에서는 매년 100개가 넘는 유니콘(기업 가치가 1조원 이상인 비상장사)이 나오고 있다. 그 중 가장 많은 유니콘을 배출하는 나라가 미국과 중국이다. 두 나라의 유니콘은 성격이 다른데, 중국에서는 10개 중 8개가 이커머스 등 플랫폼 기업이다. 내수 시장이 워낙 커 엄청난 수요가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반면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유니콘 기업은 대부분 미국에서 나온다. 미국은 유니콘 10개 중 6개가 기술 기업이다.
모빌리티 산업을 살펴보다 에어택시가 유망하다고 느꼈고, 기술력이 가장 앞선 미국 스타트업들 중 조비에비에이션을 찾아내 투자하게 됐다. 우리가 미국 법인을 운영하고 있어 좋은 회사를 빨리 알아보고 투자할 수 있었다. 다만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과 합병된 후 주가가 많이 오르지 않아 아직 엑시트(투자금 회수)할 만한 시기는 아니다.
뉴욕 존F 케네디국제공항에서 맨해튼까지 에어택시로 이동하면 시간은 25분 밖에 걸리지 않으며, 전기로 운행하기 때문에 비용도 저렴하다. 현재 도요타가 조비에비에이션의 주요 투자자인데, 빠르면 내년이나 내후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한다.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기업 가치도 자연스럽게 오를 것이라 믿는다. 아직까지는 눈에 보이는 게 별로 없지 않나."
에어택시는 혁신적인 기술인데, 그만큼 규제와의 충돌도 불가피하지 않나.
"미 항공당국인 연방항공청(FAA)의 정책 규제를 받는다. 에어택시가 도심 빌딩 꼭대기에 설치된 터미널에서 운항하는데, 주변에 장애물이 없어야 한다는 등 엄격한 법적 제한이 있다. 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관련된 규제를 정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기존 제도권의 규제를 받아온 많은 스타트업들이 제약만 해소되면 기업 가치가 수십, 수백배로 오르는 사례가 많다. 핀테크 업체인 토스가 대표적인 예다. 아직 규제의 대상이 되고 있는 스타트업에 투자한다면 높은 수익률을 기록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사용자의 수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 아주 많은 사람이 사용해야만 규제를 풀 명분도 생기기 때문이다. 이용자도 많지 않고 편하지도 않은 서비스는 규제를 풀어줄 리가 없다."
올해 스타트업 시장에 대해 어떻게 보는지. 전세계적으로 긴축 정책이 본격화하며 비상장 시장의 투자 심리도 약해지지 않겠나.
"매크로(거시) 환경이 제일 중요할 것 같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한 마디 할 때마다 증시가 휘청거린다. 우리도 올해는 좀 보수적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IT 버블이 터졌을 때도 수많은 인터넷 기업들이 사라져갔지만 결코 '섹터'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다. 각 섹터의 1~2등 기업은 모두 살아 남아 나머지 회사들의 멀티플(기업 밸류에이션을 산정하는 배수)을 가져가지 않았나."
이런 시기에 VC는 어떤 전략으로 투자해야 하나.
"이럴 때일수록 초심으로 투자해야 하고, 후기 투자보다는 씨드(seed)부터 시리즈A까지 초기 투자에 집중해야 한다. 시리즈B까지는 투자해도 되겠지만 그보다 뒷단은 될 수 있으면 투자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변동성이 큰 시장에서는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해야 실패할 확률이 낮아진다. 뛰어난 창업자와 기술만 있다면 얼마든지 버틸 수 있다. VC의 본질은 초기 투자자다. 두번, 세번, 다섯번이고 스타트업이 성공할 때까지 밀어주는 게 VC 본연의 역할이다.
또 흑자를 낼 수 있는 회사를 빨리 알아보고 투자할 필요가 있다. 이익을 창출하지 못하고 계속 외부 자금만 받아 규모를 확장하는 사업 모델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본다. 소비자만 이익을 보는 구조며, 회사는 비용만 과도하게 많이 쓸뿐이다.
실제로 올해 대부분의 이커머스 플랫폼 업체들이 흑자 전환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 쿠팡도 딜리버리,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사업 분야를 확장하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이 제대로 인정 받으려면 본업에서 흑자를 내야 한다. 많은 투자자들이 '옥석 가리기'에 나설 것이다."
다올인베스트먼트에서 투자한 토스도 흑자를 내야 하지 않겠나. 핀테크가 흑자 전환하기 위해서는 어디에 집중해야 할까.
"일단 이용자 수를 충분히 확보해야 하고, 토스처럼 충분한 이용자를 모았다면 이제는 광고비 등 비용을 줄이고 효율화에 나서야 한다. 토스는 성장 지표가 굉장히 좋은데 증권과 뱅크 등 신사업 때문에 연결 기준으로 손실이 많이 나는 상태다. 점차 손실을 줄여나갈 수 있을 것이다."
요즘 많은 바이오 스타트업들이 한국거래소의 상장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보는지.
"상장한 바이오 기업 중 많은 회사들이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니, 거래소 입장에서도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수급 조절에 나선 것 같다. 이른바 '소부장'으로 불리는 소재·부품·장비 기업에는 문을 열어주고 바이오 스타트업의 상장 심사 기준은 많이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 바이오 기업의 수급 조절 차원에서는 어느 정도 필요한 방책이라고 생각한다."
VC 입장에서는 바이오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어떻게 해야 할까. 줄이는 게 맞을까.
"투자는 계속 해야 한다. VC가 투자를 줄이는 건 재고자산을 줄이는 일이다. 다만, 우리도 심사를 강화해야 한다. 라이선스아웃(기술이전) 가능성이 더 큰 회사를 위주로 엄격하게 심사해야 한다. 또 지금처럼 바이오 스타트업의 기업가치가 전반적으로 조정 받을 때 투자하는 것이 VC 입장에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그 외에 투자할 때 특히 고려하는 점이 있다면.
"해당 기업에 어떤 VC들이 투자했는지, 혹은 우리와 함께 투자하는 VC가 어떤 곳인지 늘 신경써서 살펴본다. 우리와 같은 투자 철학을 갖고 있으며 시너지를 낼 수 있는 VC가 투자한 스타트업이라면, 긍정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그래야만 후속 투자를 결정할 때도 수월하게 합의할 수 있다."
다올인베스트먼트만의 강점은 무엇일까.
"우리 회사는 이직률이 매우 낮고 심사역의 근속 연수가 경쟁사들에 비해 매우 높다. 그만큼 투자 성과가 좋으니 받을 성과보수가 많아 회사에 오래 다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강점은 해외에 진출한지 오래 됐다는 것이다. 미국에 진출한 지는 30년, 중국에 진출한 지는 15년이 됐다. 지금은 중국 비중을 줄이고 동남아시아 시장에 많이 투자하고 있어, 세계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역으로 한국 시장에서 성공한 사업모델을 참고해 해외 스타트업에 투자한 사례도 있다. 일례로 메가스터디가 국내에서 성공한 뒤, 중국 쉐얼쓰에듀에 투자해 미 뉴욕 증시에 상장시켜 4.3배의 수익을 올렸다."
중국 투자는 계속 활발히 하고 있는지.
"중국은 미국과 패권 경쟁을 계속 하고 있는 등 투자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이다. 중국 차량 공유 업체 디디추싱만 해도 나스닥에서 자진 상장폐지해버리지 않았나. 원래는 해외 투자금 가운데 중국 비중이 50%를 넘었는데, 이제는 10~20%수준까지 줄었다. 그 대신 인도와 동남아시아 스타트업에 많이 투자하고 있다."
인도 스타트업 시장은 어떤가. 중국으로 흘러들어가던 자본이 대신 인도로 유입돼 반사이익을 얻고 있나.
"반사이익이 있는 건 맞다. 재밌는 건 그동안 인도에 가장 많이 투자한 회사가 바이두와 텐센트, 알리바바 등 중국 기업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인도와 중국 간 사이가 나빠지자 중국계 자금 유입이 대폭 감소했고, '차이나 머니'가 빠진 자리에 우리 같은 한국계 VC가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요즘 인도 스타트업들은 한국 VC들을 상대로 투자 유치를 하러 다닌다."
인도 스타트업 중에는 어떤 회사들이 가장 각광 받는지.
"앞에서 얘기했듯 디지털 에셋 분야도 발달했고, 중국처럼 내수 시장이 워낙 크기 때문에 이커머스 사업도 잘 되고 있다. 배달의민족과 비슷한 '조마토'라는 플랫폼이 대표적인 예다. 우리는 조마토에 인수된 식료품 배달 업체 그로퍼스에 투자했다."
동남아시아 시장은 어떤가.
"인도네시아가 단연 앞선다. 우리도 최근 2개 회사에 투자했다. 한 곳은 온라인 가구 커머스 업체 데코르마, 또 한 곳은 에듀테크 업체 코런이다."
다올인베스트먼트의 올해 목표는.
"최대 3000억원 규모의 신규 펀드를 결성 중이다. 1500억원은 상반기 중 모을 수 있을 것 같다. 빠르면 내년, 늦으면 내후년까지 AUM을 2조원으로 만드는 게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