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삼성전자(005930)가 올해 1분기(1~3월) 영업이익을 발표한 후 많은 투자자는 “주가가 왜 이렇게 하락하지?”라는 의문을 가졌다. 이날 삼성전자가 공개한 1분기 실적은 매출 77조원, 영업이익 14조1000억원(잠정 기준)으로 매출은 역대 분기 최고치였고 영업이익도 1분기 기준 2번째로 높았다.

그러나 실적 발표 당일 삼성전자 주가는 6만8000원으로 52주 최저가를 경신하며 장을 마쳤다. 다음 날인 8일에도 주가는 다시 내려 6만7800원까지 하락했다.

삼성전자의 세계 최대 규모 반도체 공장 평택 2라인. /뉴스1

역대 최대의 매출과 2번째로 좋은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주가가 이렇게 하락한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투자자들이 많은 것은 주가가 현재 실적을 반영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쉽게 말해 기업이 돈을 잘 버는 게 숫자로까지 확인됐는데 왜 주가가 곤두박질치느냐는 얘기다.

여의도 사람들은 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주가는 현재보다 미래 기업이 얼마나 더 돈을 잘 벌 것인지를 반영해 움직이는데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000660)는 이런 미래 전망이 밝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대표적 근거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력 제품 중 하나인 D램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2분기(4~6월) 팔 D램 가격을 고객사와 협상하고 있다. 보통 협상은 분기 첫 달 말 정도쯤 확정된 후 반영돼 추후 정산된다. 아직 협상이 끝나지 않았지만 2분기에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전보다 더 낮은 가격에 D램을 넘겨야 하는 상황이라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분석이다.

가장 현실에 근접한 예측은 대만의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서 나오는 예상 가격이다. 서버용 D램 가격의 경우 2분기 가격이 전분기보다 최대 5% 더 낮아질 것으로 트렌드포스는 본다. 이미 1분기에도 전분기보다 3~8% 낮은 가격에 D램을 넘겼는데 2분기에도 더 낮은 가격에 D램 반도체를 팔아야 한다는 얘기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재고가 많아 고객사들이 적극적으로 칩을 사려고 하지 않고 가격협상이 오래 이어지는 중으로 안다”라고 했다.

6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북부 도시 체르니히우에서 주민들이 러시아군 폭격으로 파괴된 랜드마크 '호텔 우크라이나' 앞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도 국내 반도체 회사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D램의 주요 수요처 중 하나인 스마트폰은 중국이 가장 큰 수요처다. 그런데 중국의 주요 대도시가 코로나로 인해 봉쇄되면서 중국 스마트폰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1분기 중국 스마트폰 시장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30% 이상 감소한 것으로 업계는 분석한다. 이런 추세가 2분기에도 계속되면 D램 수요는 더욱 감소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각국의 재택근무가 늘면서 PC 수요가 크게 늘었었는데 최근 들어 코로나 상황이 진정되면서 이런 특수도 끝나고 있는 것도 D램 수요가 줄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이민희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고객사들이 전반적으로 수요를 안 좋게 봐서 D램 현물가격이 하락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적어도 상반기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와 같은 국내 반도체 회사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반도체는 국가 간 협력체계를 바탕으로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생산된다. 예를 들어 반도체 집적회로를 만드는 공장인 팹(Fab)을 외국에 건설해 놓고 그곳에서 생산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SK하이닉스도 중국 장쑤성(江苏省) 우시시(无锡市)에 가장 큰 생산능력이 있는 팹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글로벌 공조와 신뢰로 이뤄진 공급망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많은 국가가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똑똑히 확인하게 됐다. 이런 인식이 더 확산하면 지정학적 리스크가 덜한 자국 내에 팹을 짓는 경향이 강화할 수 있다.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는 자국 내 팹에서 월 6만장의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 중이다. 이렇게 자국 내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양상이 확산하면 중국 기업들은 한국 등 다른 국가의 D램 공급자들에게 덜 의존적으로 될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칩에 대한 중국 내 수요가 줄 수 있다는 의미다.

국내 최대 산업인 반도체는 앞으로도 많은 도전과 변화를 겪어 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고의 실적을 찍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하락하는 주가를 다시 끌어올리고 투자자들의 신뢰를 다시 얻기 위해서는 이런 변화를 극복할 혁신을 보여줘야 할 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