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증시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중국 정부의 플랫폼 규제, 미중 갈등 우려 등이 맞물리며 외국인 투자자 자금이 홍콩 증시에서 줄줄이 빠져나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불확실성까지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11일 홍콩증시 주요 지수는 일제히 급락했다. 항셍지수는 전날보다 306.55포인트(1.47%) 하락한 2만583.71에 거래를 마쳤다. 홍콩H지수는 195.22포인트(2.69%) 내린 7060.60에 장을 마감했고, 장중에는 5.5% 넘게 하락하며 7000선을 밑돌았다. 항셍테크지수도 장중 8% 넘게 하락했다.
앞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전날 외국기업책임법(HFCAA)에 따라 미국에 상장된 베이진, 얌차이나, 자이랩, ACM리서치, 허치슨차이나 등 중국 기업 5개의 주식예탁증서(ADR)를 예비 상장폐지 명단에 올렸다. 미국의 회계 감독 요건 일부를 충족하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가 됐다.
장재영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상장 기업은 미 감리 기관인 상장회사 회계감독위원회(PCAOB)의 감사 요건을 3년 연속 거부했을 때 상폐될 수 있다"며 "3년 연속 거부라는 점에서 사실상 상폐는 2024년 초에나 가능하지만, 올해 외국기업책임법 시행이 빨라지면 그 시점은 내년 초로 앞당겨질 수 있다"고 했다.
최근 홍콩 증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낙폭을 키워왔다. 홍콩증시는 외국인 투자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50%로 중국 본토증시(6%)보다 훨씬 더 높은 편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같은 대외 리스크가 불거졌을 때 수급 불안에 따른 증시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여기에 중국 정부가 지난 2020년부터 지속하는 플랫폼 규제도 홍콩증시 발목을 붙잡고 있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정부의 규제가 게임 판호(서비스 허가증) 승인 중단, 배달 플랫폼 수수료 인하 등으로 구체화하면서, 이제는 기업들의 실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박수현 KB증권 연구원은 "처음에는 투자심리를 약화시키는 정도였던 규제 리스크가 점차 기업들의 펀더멘탈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현재 실적 시즌에 진입하면서 홍콩증시 주요 지수들은 밸류에이션 멀티플(수익성 대비 기업가치)과 주당순이익(EPS) 레벨이 동시에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 상황도 증시 고민거리다. 11일(현지 시각) 로이터 등은 홍콩에서 코로나19 강제 검사, 전면 봉쇄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시민들이 패닉 바잉에 나선 상황을 보도했다. 지난달 홍콩 정부는 3월 중 중국 본토처럼 코로나 전수 검사를 실시한다고 밝혔고, 보름 만에 사망률 낮추는 게 우선이라며 전수 검사 일정을 미뤘다.
증권가에서는 언급된 대부분의 악재들이 단기간에 해소되긴 어려운 만큼 홍콩 증시 약세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에 상장된 중국 기업들이 설령 상폐된다고 하더라도 홍콩 증시 상장 기업에 미치는 영향 자체는 제한적이지만, 미중 갈등 심화 가능성을 고려해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연구원은 "당장은 상폐 가능성이 언급된 종목이 5개에 불과했지만, 이후에는 미국에 상장된 중국 ADR 전체가 포함될 수 있다"며 "올해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중 갈등이 심화할 수도 있기 때문에 홍콩 증시는 미국 제재에 따른 리스크에 노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일각에선 3월 중 증시가 저점을 기록하고 나면, 이후부터는 반발 매수세가 나타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김경환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우크라이나 이슈로 인한 외국인 수급 충격과 훼손된 투자심리는 단기간에 완전히 극복하기는 어려운 변수"라면서도 "3월 중 지지선이 구축되고, 완만한 반등이 시작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연구원은 "올해 중국의 경제 및 실적, 경기 부양 중심의 정책 방향성에 따른 수혜도 유효하다"며 "홍콩증시가 과거부터 미국 긴축 사이클에 내성을 쌓아온 가운데, 올해 예상 EPS 증가율이 5년 만에 두자릿 수로 반등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성도 있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홍콩 증시가 출렁이면서 홍콩 증시 주요 지수를 추종하는 국내 파생상품 가입자들은 불안감이 큰 상태다. 실제 항셍테크지수를 추종하는 국내 상장지수펀드(ETF)들은 줄줄이 급락했고, 주가연계증권(ELS) 상품 중에서는 이미 원금손실구간(Knock In·낙인)에 진입한 경우도 있다.
ELS는 주요국 지수 등을 기초자산으로 삼고, 계약 기간에 기초자산 가격이 설정 시점보다 40~50% 이상 떨어지면 낙인에 진입한다. 다만 최종만기일까지 기초자산 가격이 정해진 수준 이상으로 회복하면 원금 손실은 피할 수 있다. 하이투자증권이 지난해 2월 발행한 ELS 2473호는 지난 10일 낙인 구간에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