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당선인이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다음날, 개인 투자자와 외국계 기관은 서로 비슷하면서 다른 선택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모두 윤 당선인이 제시한 공약 관련주를 선호한 가운데, 개인은 원자력 발전 관련주를, 외국인은 가상자산 관련 콘텐츠주를 대량 매수했다.
1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0일 국내 주식시장에서 개인이 가장 많이 산 주식은 두산중공업이었다. 하루 만에 1058억원어치를 샀다. 개인 투자자들은 이달 들어 두산중공업 주식을 총 2400억원 순매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국내외 기관이 내놓은 매물을 대거 사들인 것이다.
두산중공업은 윤 당선인의 ‘탈원전 백지화’ 공약의 대표적인 수혜주로 꼽힌다. 지난 2019년 소형모듈원전(SMR) 분야의 선도 기업인 미국 뉴스케일파워에 1억400만달러(약 1300억원)를 투자해 지분을 확보했다. 두산중공업은 원전뿐 아니라 수소와 해상풍력 등 친환경 발전 사업도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있어, 차기 정부에서 추진할 에너지 정책의 직접적인 수혜를 볼 것이라는 전망이 많이 나온다.
최진명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두산중공업은 그동안 성장성 저하와 재무 위험 때문에 기업 가치가 저평가 받아 왔지만, 최근 2년 간 사업 구조조정을 거치며 ‘고성장·첨단’을 무기로 정상화에 나서고 있다”며 “이달 중 나스닥시장에 상장하는 뉴스케일파워가 조달 자금으로 대규모 SMR 프로젝트를 실시할 텐데, 두산중공업은 이에 대한 기자재 우선 공급권을 갖고 있어 실적 개선이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개인 투자자는 두산중공업 외에도 한전기술(052690)과 한전KPS(051600) 주식을 많이 샀다. 대선 다음날 각각 190억원, 116억원어치를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달 누적 순매수액은 총 400억원에 달한다. 한국전력(015760)이 지분 66%를 보유한 한전기술은 원자력발전소 및 플랜트 관련 엔지니어링을 맡은 공기업이다. 대우조선해양과 손잡고 해양용 소형 원전도 개발하고 있다. 한전KPS는 원자력발전소 설비를 정비하는 업체로, 한전기술과 마찬가지로 한국전력 자회사다.
개인은 윤 당선인의 원전 공약 외에도 2차전지 산업 육성 공약을 눈여겨본 것으로 풀이된다. 10일 하루 동안 LG화학(051910)과 SK아이이테크놀로지(361610)를 각각 290억원, 240억원 순매수했다. 삼성SDI(006400)와 SK이노베이션(096770)도 개인 순매수액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전기차를 포함한 차세대 모빌리티 산업 육성은 윤 당선인이 제시한 ‘디지털 경제’ 실현 방안 중 하나다. 선거 유세를 위해 경북 구미를 방문했을 때 “구미를 대한민국의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새로운 첨단 과학기술 단지로 만들겠다”며 “2차전지와 미래형 자율주행차 등 새 모빌리티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윤 당선인은 강원 원주에서 전북 전주를 잇는 거대한 산업벨트를 구축하고 그중 충북 충주를 2차전지 연구의 거점으로 육성하겠다는 공약도 내놓았다.
개인과 달리 외국인의 매수세는 가상자산 관련 종목에 집중됐다. 윤 당선인은 암호화폐 투자 소득의 과세 기준을 5000만원으로 상향 조정하고 NFT(대체불가능토큰·Non-Fungible Token)의 거래를 활성화하는 등 가상자산 산업 육성 공약을 다수 내놓았다.
외국인 투자자는 10일 하루 동안 카카오(035720)와 네이버(NAVER(035420)) 주식을 각각 1400억원, 900억원어치 사들였다. 국내 양대 인터넷 플랫폼인 카카오와 네이버는 가상자산 생태계 성장의 대표적인 수혜주로 꼽힌다. 카카오의 경우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 지분을 15% 넘게 보유하고 있으며, 자회사 그라운드X를 통해 자체 코인 ‘클레이’를 유통하고 있다. 네이버는 일본 자회사 라인을 통해 가상자산 거래소 ‘라인비트맥스’를 운영 중이며 메타버스(가상세계) 플랫폼 ‘제페토’는 누적 이용자 3억명을 돌파했다.
윤 당선인이 인터넷 플랫폼의 규제에 부정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 역시 두 회사에 호재로 작용했을 것으로 해석된다. 현 정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인터넷 플랫폼 사업자를 포괄적으로 규제하는 온라인플랫폼법(온플법) 제정을 추진해왔는데, 윤 당선인과 국민의힘은 이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여왔다.
외국인은 그 외에도 컴투스홀딩스(063080), 크래프톤(259960), 카카오게임즈(293490), 에스엠(041510) 같이 NFT, P2E 등 가상자산 사업을 활발히 하고 있는 게임 및 콘텐츠 회사들의 주식도 많이 사들였다. 컴투스홀딩스는 10일 하루 만에 202억원어치를, 크래프톤은 160억원어치를 샀다.
컴투스의 경우 자체 코인 ‘C2X’를 해외에서 발행했으며, 올해 중 이 코인의 블록체인 생태계를 구축하고 NFT 거래소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카카오게임즈역시 자회사를 통해 자체 코인 ‘보라코인’을 발행하고 있으며 NFT 기반 디지털 자산 거래 플랫폼을 내년 중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김진구 키움증권 연구원은 “높은 퀄리티를 바탕으로 충성도 높은 이용자 중심의 가상자산 플랫폼을 구축한 게임의 경우, 이용자들의 아이템이 NFT를 통해 거래되며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